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몽 Dec 12. 2023

동거동락, 그녀를 만나러 갑니다

동아시아_일본_도쿄


습한 기운이 올라오는 여름. 숨이 턱 막힌다. 여름휴가로 떠난 일본에 첫인상이다. 가깝고 익숙하지만 낯선 나라 일본 도쿄를 방문한 건 지금처럼 엔화가 900원으로 낮았을 때였다. 거리상 가까우니 계속 갈 법도 한데.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이 간다 했던가. 다시 방문하지는 않았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엔화가 1,500원까지 올라가기도 했고, 방사능 사건이 터지면서 선택지에서 멀어졌다.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일본 엔화가 싸다며 다녀온 후기를 전했다. ‘나도 갈까?’ 싶어 슬금슬금 핸드폰 위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비행기 편 검색을 시작한다. 상상 속에서 여행이 시작되고, 다녀온 사람들 후기도 찾아가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습한 기운에 일본을 방문했던 지난 여름날이 생각나며 유학생이던 옥언니와 만났던 추억도 떠올랐다. 


여름휴가에 어딜 깔까 고민하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옥언니도 만날 겸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옥언니가 부탁했던 책들을 바리바리 캐리어에 싣고 만남을 기대하며 만남의 장소로 향했다. 


옥언니는 홍대에 있는 미술학원에서 미대입시를 준비하며 학원에서 만난 사이다. 나보다 3살 정도 나이가 많은 그녀는 일산에 살며  미술학원이 있는 홍대까지 매일 오갔다. 고3이던 나는 신촌에 거주했고, 어쩌다 보니 시험이 얼마 남지 않던 한 달 동안 내 방에서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녀와의 ‘동거동락’이 시작되었다. 


아침 10시 이전에 집을 나가 밤 10시가 지나서야 돌아오며 꿈을 향해 정진했다. 그러나 둘 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는 못했다. 이후 나는 다른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녀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갑자기 옥언니는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고 소식을 전했다. 옥언니의 언니와 함께 어학연수부터 시작하는 유학을 시작했다. 부러웠다. 나 역시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조금만 일찍 용기를 냈다면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정면돌파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정해진 길은 없지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일본 대학 디자인과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방문을 알리며 여행 경비를 아낄 생각에 전화로 옥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네 집에서 좀 지내도 괜찮아?”

  “응. 괜찮아. 그럼 올 때 물건 좀 받아줄 수 있어?”

  “뭔데?”

  “책인데 좀 많을 수도 있어.”


조금이 아니라 그냥 많았다. 부탁받은 책이 든 캐리어를 끙끙거리며 끌고 만남의 장소로 향했다. 시부야역 앞에서 기다리니 익숙한 얼굴이 다가온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 안으며 인사를 했다. 무거운 짐을 언니에게 전해줌으로 방값은 한 것이다. 무거운 짐을 가져다줘서 고마웠는지 옥언니는 유학생들이 가는 맛집이라며 시부야에 있는 츠케멘 야스베 라멘가게로 데려갔다. 한국식 라면에만 익숙했는데 일본은 어쩔지 궁금했다. 


@트레블러 지니 블로그

어두워진 저녁. 골목골목을 계속 걸어가다 작은 식당 앞에 도착했고, 손님이 꽉 차 있었다. 옥언니는 일본식 키오스크에서 버튼을 누르며 능숙하게 라멘을 시켰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2008년 당시에 키오스크가 한국에 없던 터라 신기했다. 게다가 언어도 일본말이니 외국에 왔구나 실감했다.      


테이블 위에 직원이 올려준 라멘의 양은 산처럼 쌓여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양이 많을 수도 있다고 미리 말해주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매운맛 M을 시켰는데 주문이 잘못되어 2인분으로 잘못 나온 줄 알았다. 일본 사람들은 소식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제대로 나온 걸 확인 후에 한숨 돌리고 그제야 옥언니의 안내에 따라 허기진 배를 채웠다. 


맛있어 보이는 빨간 국물과 굵은 우동면이 따로 나왔다. 국물에 담가서 먹는 라멘으로 이런 건 처음 먹어본다. 면을 젓가락으로 먹을 만큼 건져 올려 얼큰한 국물에 담갔다 뺐다 반복하고 입 속으로 후루룩 넣으면 오이시~ 맛있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오호~ 맛집이구나!! 골목골목으로 열심히 따라온 보람이 있구나. 


일본에 온 이유가 옥언니를 만나는 거였는데 라멘을 먹으러도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처음에는 책이 왜 이렇게 많냐며 투덜 되던 마음이 보상받듯 말끔히 사라져 투덜이는 온데간데없었다.     

@Edward way 

식체험 이후 옥언니와 함께 밤길을 걸었다. 골목마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자판기가 인상적이다. 음료뿐만 아니라 과자, 담배까지 다양한 자판기들이 보였다. 여러 자판기를 지나치며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게 서로의 안부를 도란도란 나누다 보니 어느새 옥언니의 집에 도착했다. 


1층 집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차’ 싶었다. 원룸이다. 게다가 옥언니는 룸메이트(그녀의 언니)가 있었다. 일본 집값이 비싸다는 것은 듣기만 했는데, 현실이구나. 가볍게 요리할 수 있는 작은 주방과 작은 침대 하나 그리고 밑에서 잘 수 있는 공간이 전부였다. 어쩌다 보니 좁은 원룸에 끼어서 자는 눈치 없는 자가 되었다. 


옥언니는 나에게 침대를 내주었다. 미안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기절하듯 잠들었다. 알바를 했던 옥언니와 무언가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그녀는 여행자가 아닌 유학생이며 생활자였다. 이곳에서 계속 지내기에는 캐리어도 제대로 펴기 힘들어 바로 숙소를 구했고, 남은 일정을 보냈다. 짧고 굵은 만남이 끝났다.

       

옥언니는 일본에서 계속 유학 생활을 하다 지진과 방사능 사건이 터지면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일본 디자인 대학에 재학 중이었지만 졸업하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며 훌쩍 떠났다.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를 묘하게 섞어서 사용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일본여행을 고민하다 지난 여행과 옥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동거동락했던 그녀는 넓은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유영했다. 그녀가 한국에 돌아와서 자리를 잡았을 때는 30대 후반이었다.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자리를 잡고 자신의 길을 거침없이 찾아갔다. 나이가 들면 늘어나는 건 주름과 겁뿐인지 나는 쫄보가 되었다. 문득 옥언니의 용기가 부러워졌다. 어쩌면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분명히 알고 거침없이 움직이는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원하는 곳을 향해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다. 질풍 같은 용기를 주소서. 

이전 04화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