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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Dec 05. 2023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스리랑카 콜롬보

벵갈루루 공항 출국준비

스물다섯. 인도 벵갈루루에서 1년을 지낼 생각으로 지낸 지 6개월이 흘렀다. 비자 여행을 준비하며 근처 나라 중에 어디로 갈까 고민했다. 물망에 오른 나라는 태국과 스리랑카. 태국은 여자 혼자 여행을 가기에 안전한 편이지만, 비행기 편이 비싸다. 두 번째로 오른 스리랑카는 내전 중이라 안전은 모르겠지만, 비행기 편이 싸다. 당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어서 안전을 포기하며 '스리랑카'가 당첨되었다. 


당시 인도 신문에는 스리랑카에서 내전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실렸다. 스리랑카라는 나라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내 문제이기도 했다. 혼자. 그것도 여자 혼자. 한 번도 혼자서 여행을 해본 경험이 없기에 안전한 나라로 가고 싶었다. 비싸도 태국을 가고 싶었는데.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가고 싶은 나라이기보다 가야 하는 나라였던 스리랑카는 실론티가 유명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알았을 정도로 정보가 없었다. 내전이 끝났다는 이슈만이 크게 자리하며 여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듯 부담감은 커졌다. 


스리랑카 지도/ 온라인 커뮤니티

2박 3일 일정에 계획을 짜본다. 스리랑카로 비자 여행을 갔던 선배는 '캔디'라는 지역을 추천했다. 여행을 복기하며 도서관을 찾았을 때도 스리랑카 관련 책은 찾기 힘들었다. 2009년에는 더 정보가 없어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가고 싶은 여행지는 아니었지만, 이왕 가는 거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인도 공항에서 스리랑카 콜롬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리랑카는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 같은 섬이다. 역삼각형으로 된 인도 밑에 있다. 인도의 눈물, 또는 진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섬나라다. 국교는 불교이며, 인구는 20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구 밀도가 큰 나라다. 타밀반군과 싱할리족의 내전이 끊이지 않는 상태로, 내가 방문했을 때도 방금 내전 끝난 상태였다.


1시간 반. 인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환전하고, 택시를 잡아 타고 시내로 향했다. 스리랑카도 인도와 같이 루피를 쓰지만 화폐가 다르다. 택시를 타고 들어간 시내는 고요했다. 내전이 있었다는 소식과 걱정이 무색하게 일상을 회복한 느낌이었다. 단지 골목 입구에나 곳곳에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낯설었다.


콜롬보 골목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한 숙소를 향해 가는 중에 갑자기 군인이 택시를 잡아 세웠다. 총을 들고 무장한 군인은

  "신분증 보여주세요"

뭐지? 택시 운전사는 자연스럽게 신분증을 꺼내 군인에게 신분증을 보여준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내가 택시를 잘못 탄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 긴장한다. 가방을 주섬주섬 열면서 여권을 꺼내 손에 쥐고 눈치를 살피며 군인에게 보여줄 준비를 하고 내밀었다.

  "안 보여줘도 됩니다" 

군인은 시크하게 손사래를 치며 나에게 괜찮다고 했다. 외국인은 확인할 필요가 없단다. 낮은 한숨을 쉬고,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듣고는 갈길을 갔다. 고요하지만, 군인들로 인해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는 긴장감이 감도는 콜롬보 도시여행이 시작되었다. 


길을 잘 몰라 같은 곳을 계속 왔다 갔다 헤맸다. 골목입구에 무장하던 군인들과 계속 마주치게 되었다. 계속 앞을 알짱거리니까 불쌍했는지 나에게 다가와 길을 가르쳐주었다. 인도 핸드폰도 2G 폰을 쓰고 있던 터라 지도를 들고 계속 같은 곳을 이동하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괜한 염려였다. 나중에는 군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안전하게 느껴졌고, 숙소로 오갈 때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짧은 일정에 추천받은 '캔디'를 갈 수는 없으니 공항에서 가까웠던 콜롬보 안에서 갈만한 명소와 먹을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까운 강가람사원으로 향했다. 종교가 불교는 아니지만, 이곳이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방문했다. 


강가람사원 입구
강가람사원 안 불상/ 선물 받은 '연꽃'

불교국가인 스리랑카 콜롬보에는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불상을 볼 수 있다. 이곳도 향을 피우고, 불상들이 한가득 있었다. 종교의식은 하지 않고 구경만 했다. 예배의식을 드리는 스리랑카 사람들을 관찰했다. 한쪽에서 연꽃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연꽃을 사서 그곳에 바치는 것 같았다. 


종교인이 아닌 나에게는 예배에 드려지는 꽃이 아닌 단지 예쁜 꽃에 불과했다. 돈이 아까워서 사지는 않고 바라만 봤다. 그게 안쓰러웠는지 파는 분이 나에게 공짜라며 연꽃 한송이를 건네주셨다. 군인들로 얼어붙었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녹아버렸다. 외국인으로 혼자서 낯선 곳을 여행하며 긴장하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스르륵 녹았다. 

박물관 (내전이 많아서인지 무기가 전시가 많았다)
문제의 호퍼(쌀로 만든 아침 음식)

어느 나라를 가든 박물관이나 미술관부터 찾으며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아침으로 먹는다는 '호퍼'가 어떤지 궁금했다. 그런데 아무런 정도가 없었다. 어디서 파는지를 몰랐다. 누군가 호기심은 위험을 부른다고 했던가. 릭샤 아저씨에게 박물관에 가고 싶은데 호퍼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호퍼를 찾아라! 미션이 주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호퍼를 사서 신나게 박물관을 향하려는데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릭샤 아저씨는 친구라며 어떤 남자를 데리고 오더니 내 옆에 태우고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방향이 같다며 태우는데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별생각 없이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가벼운 대화가 오고 가다


  "내가 아는 마사지 샵이 있는데 거기 가지 않을래?"

  '뭔 소리지? 갑자기 무슨 마사지샵? 절대 속지 말아야지'

  "괜찮아요. 박물관으로 갈 거예요."

  "싸게 해 줄게. 정말 좋아."

  "응, 괜찮아. 박물관에 갈 거야."


그렇게 동문서답이 이어졌다. 일방적으로 남자는 옆에 앉아 계속 마사지를 싸게 해 주겠다는 말을 이어갔고, 나는 박물관을 갈 거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처음에는 좋게 거절을 하며 금방 그만두겠지 생각했는데 끈질겼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나라에 여자 혼자 여행을 왔고, 성인 남자 둘이 타고 길도 모르는 곳을 계속 달려가고 있다. 오만가지 상상이 떠오른다. 


  '어디로 가는 거지? 제대로 가는 게 맞는 건가? 이렇게 잘못되는 건 아닐까? 

  그놈의 호퍼가 뭐라고 굳이 그걸 먹겠다고 찾은 것부터가 잘못된 건 아닌가.' 


감정의 선이 오르락내리락 끝과 끝을 내달렸다. 내전이나 군인을 걱정할 것이 아니었다. 달리는 릭샤에서 뛰어내려 탈출해야 하는 건 아닌지. 군인을 만났을 때보다 더 무서웠다. 인도에서도 여행 중에 갑자기 죽게 되거나 폭행을 당하는 외국인 여성들의 소식을 들었기에 멘붕이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며 계속 말을 이어가며 바깥을 살피고, 릭샤기사에게 계속 박물관에 가는 게 맞는지 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릭샤 기사에게 돈을 던지듯 주면서 잔돈을 받을 생각도 안 하고 릭샤에서 내려 도망치듯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인도였다면 싸우면서라도 잔돈을 받았겠지만, 돈보다 목숨이 중요하니까 우선은 여기서 벗어나는 게 먼저라는 본능이 발동했다.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 어렵게 얻은 호퍼는 박물관 안에서 맛있게 먹었다. 아... 호퍼가 뭐라고. 목숨까지 걸었나. 


여행 마지막 날. 콜롬보 해변 산책을 하며 스리랑카 사람들을 관찰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낯선 땅에서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음을 느끼며 짧은 여행 속에서 다사다난했던 일정을 마무리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외국인을 연꽃을 주며 환영하고,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을지 궁리하는 사람이 있다. 무장한 군인의 겉모습만 보고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선량한 현지인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더 무서웠다.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나 역시 다른 마음을 품고 그들을 바라봤다. 


편견이란 이렇게 무서운 거다. 내가 만든 프레임에 사람을 규정짓는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언가로 규정짓기에는 복잡한데 얄팍하게 바라봤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함을 여기서도 느낀다. 알지도 못하는 먼 스리랑카에서도. 여행을 다시 돌아보며 편견 없이 인간을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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