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일어나는 장소를 기대하며
한국사회 안 재사용문화의 역사를 소급하자면 6⋅25전쟁 이후 황학동 일대 벼룩시장을 통해 많은 중고물품이 거래되던 것부터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겠지만, 본격적인 재사용문화가 우리 안에 깊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시기는 한국의 소비대중문화가 완전히 자리 잡은 만큼 동시에 잉여 생산자원 처리 문제나 관련한 환경 오염 문제가 조금씩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에 발맞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알뜰가게’가 신당동에 처음 문을 열면서 비영리단체 안에서의 자원순환 이슈가 확대되었으며, 이어 서울YMCA가 ‘교복 물려주기 운동’ 등 소비자 참여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물품 재사용문화가 시민들 사이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재사용운동은 이후 지자체의 적극적인 시민참여 정책과 맞물려 ‘아나바다’ 활동을 포함 다양한 모습으로 점차 확산되어 갔다.
초기 물품 재사용운동을 펼칠 때만 해도 한국사회 안의 개별 시민들의 재사용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네 문화적 성격에도 기인하겠지만, 동시에 이미 제조업이 포화 상태라 굳이 재사용 물품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값싼 물건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환경’과 ‘나눔’의 이슈로 전환 시킨 것이 바로 초기 시민단체들의 큰 기여였다.
이와 같은 비영리 시민단체들이 운영하는 재사용나눔가게도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나 시민들의 물품기부와 자원활동을 독려하며, 나눔과 순환의 가치를 알려가기 시작하였다. 현재 서울시 내에 비영리기관이 운영하는 재사용나눔가게만 해도 95개소에 달하며(서울연구원, ‘순환도시 서울로 전환하기 위한 재사용 활성화 정책 방안’, 2022), 자치구 재활용센터, 회수거점인 폐의류 수거함까지 고려하면 시민들이 재사용문화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되어 있다.
더불어 최근에는 중고거래 온라인 플랫폼이 새로운 재사용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제 ‘남이 쓰던 헌 물건’이 ‘세컨핸드’, ‘빈티지’ 등의 이름으로 탈바꿈하여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으로 선호되고 있고, 특히 유명 중고거래 플랫폼의 회원 수는 약 2,0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초기 재사용문화운동 시절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플랫폼의 성장에 관해 몇몇 비영리단체들은 ‘거래를 통한 이윤추구’라는 측면만 부각되어 ‘기부를 통한 사회적인 나눔’ 영역이 위축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지만, 물품의 생애주기를 늘린다는 친환경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러한 문화 확산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일 것이다.
동시에 온라인 플랫폼의 강세는 재사용나눔가게를 운영하던 비영리기관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고 있다. 과거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이어오던 재사용문화운동을 디지털 기술과 연계하여 시민 참여 확대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매장이 가지고 있던 접근성의 한계를 온라인으로 상쇄하는 것은 물품 판매를 통한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매년 치솟는 건물 임대료와 인건비, 운영비를 고려했을 때 매우 현실적인 선택지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동시에 집기 생산을 줄이기에 친환경적이라 일컬어지는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전환은 운영 주체인 비영리기관들에게 이미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디지털 경험을 확산해 가는 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재사용나눔가게의 미래상일까?
수년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우리의 생활을 의도치 않게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켰다. 그사이 상호 소통 영역에 온라인 문화가 깊이 침투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하나의 커뮤니티 및 시장 확대 가능성 또한 경험하였다. 하지만 점차 일상을 회복한 지금의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온라인의 가능성과 더불어 오프라인의 강한 유대감의 필요성 또한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를 통해 재인식할 수 있는 것은 향후 디지털 문화가 지속적으로 가속화 되어가는 와중에도 결국 사람 사이의 틈을 메우는 것은 아날로그와 오프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생활문화운동을 기반으로 재사용나눔가게를 운영하는 단체들은 단순히 디지털 전환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와 동시에 혹은 그 이상으로 시민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참여의 장을 통한 공동체 활성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관들이 재사용나눔가게를 운영하고자 했던 초기 목적에는 매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을 넘어, 물건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일어나는 장소로서 역할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즉, 나눔과 순환의 문화는 사람 사이의 만남을 토대로 확장되는 것이라는 믿음이 그 운동성의 기반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재사용나눔가게 활동가가 자신과 같은 동네 주민들과 벗하여 매장을 운영하고, 그 주민들이 매장 자원봉사로 그 운동성에 동참하며, 물건을 구입한 주민이 다시금 자신의 잉여물품을 매장에 기부하는⋯. 활동가, 구매자, 기부자, 봉사자, 지역주민이라는 이름이 서로 외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되는 과정 가운데 개인의 역할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사회적 모델이 재사용나눔가게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렇기에 재사용문화운동은 단순히 물품의 생애주기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생애주기 또한 함께 고려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이 그 지역사회에 태어나 자라면서 지역 안의 재사용나눔가게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하고 참여해야 할 때 비로소 그 문화적 가치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년 시절에는 물품순환이 일어나는 매장을 견학하고, 청년 시절에는 지역의 물품순환을 돕는 매장 자원봉사로, 이후 성인이 되어서는 매장의 물품 구매와 기부 활동을 이어가는 것처럼 운동의 성과는 그것이 얼만큼 개인의 일상 안에 자리 잡았는가를 기준으로 판명될 수 있다.
앞으로의 재사용나눔가게들은 사회의 많은 서비스 영역이 오프라인으로 숨어가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과 직접적으로 관계할 수 있을까’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효율적인 관리와 합리적인 운영 방식을 통해 물건이 쉽게 팔리는 조건을 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건을 통해 어떻게 사회적 기능을 확산할 수 있는지, 얼마큼의 건강한 교류 문화를 구성해 갈 수 있는지와 같은 내용을 끊임없이 재확인해야 한다. 집안에서 무엇이건 손쉽게 PC나 모바일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상상만 해도 무척 스마트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모습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삶의 최종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친환경’이라는 공식도 다시금 되짚을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디지털 플랫폼이 건축물에 비해 집기나 도구 사용 가능성을 줄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온라인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막대한 전기와 그것을 냉각하기 위한 용수, 희귀 부품을 얻기 위한 자원 훼손 등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는 점 또한 기억해야만 한다. 최근에는 폐의류로 만든 패널 등 여러 친환경 소재들이 개발되고, 기타 친환경 디자인 영역도 발전되고 있어 오프라인 공간도 충분히 친환경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시대가 달라지면 그에 맞춰 운동의 방식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했던가? 과거의 비영리단체들이 산업화 속에 극심해지는 환경 오염 문제를 다잡기 위해 물품 재사용운동 자체에 시급히 목소리를 모았다면, 지금은 그 운동의 방식과 운용에 대해서도 다양한 질문을 던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 중에 하나로 여전히 재사용나눔가게의 가능성이 발견되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다시금 재사용나눔가게라는 이름으로 기부된 물품이 오가는 현장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문턱에서, 그 웅성이는 목소리 안에서 재사용문화운동은 또 한 번 진화해 갈 것이다.
- 해당 글은 '사회적가치연구원'의 SV Hub칼럼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https://svhub.co.kr/column/info?id=5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