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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Aug 15. 2023

9. 의식성에서 실천성으로의 전환(1)

실천을 통해서 획득되는 '덕'의 의미

‘세계시민은 누구인가?’


이상의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현재의 인권 개념과는 달리 세계시민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난 것이 아니며, 그 자격을 확인할 수 있는 시민증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고, 그에 따른 수혜나 처벌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세계시민이란 제한이나 속박이 없는 상상의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상을 묶는 공통적인 의식인 세계시민성을 공유하고, 그에 따른 동일한 실천적 규범을 수행할 때야 비로소 그 개개인들은 세계시민임이 증명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실천’이란 기계적이며 수동적인 반응과는 달리 공통의 세계관을 누림으로서 발생하는, 흡사 제의에 가까운 공동의식(common symbol system)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디아스포라(diaspora)’의 개념입니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고대 그리스인들이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은 뒤 그곳으로 자국민을 이주시켜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주와 식민지 건설을 의미하는 능동적이고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디아스포라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디아스포라는 전쟁에서의 패배로 고국인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의 민족 이산을 뜻하는 부정적 의미로부터 유랑자, 망명자, 망명자 공동체, 국외로 추방된 난민, 이주노동자, 초빙 노동자, 이주민, 소수민족공동체, 유학생, 식민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경계적인 존재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로 외따로 분포되어 있는 공동체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애써 유지하기 위해 공동 제의 및 의식을 구성해 왔죠. 따라서 어떠한 사회이건 제의적 문화를 통해 그 사회의 집단성을 확인하고 강화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고 존속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먼 공간에서 서로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지만 같은 의식과 세계관, 즉 공동의 실천을 통해 꾸준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예를 들면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의 교포들도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동일한 한국식의 제사나 차례를 치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집단의 관념 공유라는 의미에서 디아스포라의 인식은 현재의 세계시민교육영역에도 시사점을 건네줍니다. 결국 세계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함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의 행위(action), 즉 실천(practice)인 것이기 때문이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도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이 이해를 낳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지식과 이해는 서로 다름을 언급한 바 있죠. 같은 맥락에서 지식이라는 것이 이해를 바탕으로 즉각 실천과 연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앞의 챕터에서 설명을 드린 대로 우리 사회의 덕 교육은 다분히 주지주의적 형태의 모습을 띄고 있었죠. 학습자들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지식을 먼저 알려주고, 그들이 해당 지식을 알게 된다면 부덕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오랫동안 관련 교육이 진행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덕적 지식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혹은 학교 교육에서 도덕 교과목의 성적을 잘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 도덕적 문제 상황에서 도덕적 행동을 잘한다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형태의 세계시민교육의 의식성(Awareness)은 실천성(Practicality) 중심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실천을 뜻하는 ‘프랙티스(Practice)’는 관습과 습관, 연습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죠. 이를 통해 실천이라는 개념이 어떠한 단계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프랙티스는 반복적 ‘연습’에서 그 의미가 시작되어, 연습을 통해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습관’이라는 의미가 구성되고, 반복 적 연습에 의해 도달된 상태를 의미하는 숙련된 ‘행위(실천)’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실천이란, 기존의 프랙티스의  의미를 살려 반복 습관화되어 체화된 형태로서의 덕성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의식화와는 다르며, 가볍게라도 관련된 실천 행위를 먼저 ‘해보는 (exercise)’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실천적 상황과 환경의 노출빈도 역시 높아져야만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공정하게 행동해야 공정한 사람이 되고, 절제된 행동을 해야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행동을 해야 용감한 사람이 된다라고 말하며 실천적 지혜(phronesis) 언급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 감정과 행위에 관계한다는 것을 반복해서 지적했습니다. 도덕적 미덕이 행동을 통해 배우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올바른 습관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인격 형성은 습관화하는 것이지 기계적 행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습관이 되면 비로소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며, 이처럼 미덕이 깃든 행동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몸에 밴 사람이 될 수 있다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구절을 옮겨봅니다.


“우리가 탁월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여러 기예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먼저 발휘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봄으로써 배우는 것이니까. 가령 건축가는 집을 지어봄으로써 건축가가 되며, 기타라 연주자는 기타라를 연주함으로써 기타라 연주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된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덕은 본성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지식을 가진다고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덕스러운 행위를 하고, 그 행위가 습관화되면서 비로소 덕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덕은 실천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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