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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희 Jun 15. 2021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기에

좋아하는 생각

 사람은 누구나 본래 이기적이라는 관념이 나를 편안하게 할 때가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더욱 그렇다.


 나는 다양한 역할을 지니며 산다. 때로는 아내. 때로는 자식. 때로는 국민, 손님, 여성 등등. 그리고 놓인 역할의 마디마디에는 각자의 ‘입장’이라는 게 서린다.

 

 입장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으로 살펴보니 '당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풀이된다. 사람은 참 신기하게도 당면한 상황에 맞춰 빠르게 나의 입장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또 짐짓 그것을 품는다. 이런 과정은 내가 채 의식하지도 못한 새에 이뤄질 때가 다수이며, 평상시 입장이라는 놈은 대개 얌전하다. 그러나 입장의 존재를 확연히 알 수 있는 때가 있는데 그때는 다름 아닌 입장과 입장이 충돌할 때다. 그 유명한 입장 차이가 되겠다.




 관리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직원이 따르길 바라며 어떤 생각을 지시하거나 제안하지만, 그게 직원의 판단으로는 절대 따를 수 없는 경우라면 상황은 곤란해진다. 관리자에게는 직원이 보지 못하는 관리자만의 처지란 게 있고, 관리자는 미처 짐작도 못하는 직원만의 입장이란 게 있을 수 있다. 다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둘의 이야기는 길이만 더 길어져봐야 '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미쳤나? 돌았나? 말이야 빵구야?' 식의 종류만 되풀이될 뿐, 생각을 모으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이렇게 첨예한 다름이지만 우습게도 꼭 같은 것이 하나 있다. 다시 말해, 첨예함의 서슬이 푸르면 푸를수록 같아지는 게 하나 있다. 너도 나도 '나의 이득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내 이익을 한 톨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만 떼놓고 보자면 그 둘은 세상 이렇게 일심동체일 수가 없다. 이익이라 하면 직접적인 나의 benefit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이 맞고 네 생각은 틀려'라는 내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 또한 포함한다.


 다시 돌아와, 입장이 양립하는 상황의 문제점을 짚어보면 핵심은 그 과정 중에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받는다는 것이다. 꼭 표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면의 부상까지 헤아리면 사안은 무시할 게 못된다. 서로를 의지했던 사이라면 더욱 그렇고, 대립 중에 말과 태도를 처신하는 모양에 따라서도 그 깊이가 달라진다.




 굉장히 첨예한 둘 사이에서 양측의 말을 동시에 들을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다. 각자의 입장에서 듣고 보면 모두가 정말 그럴 만하고 타당했다. 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듣는 중간중간 "입장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라는 문장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말은 상대가 가히 흥분을 해서 다행히도 듣지 못했다. 자칫 불똥이 나에게 튈뻔했지 뭔가.(자신의 입장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입장 차이'라는 단어는 화를 돋우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날은 그 두 사람 중 한 명과 내가 입장을 달리 한 적도 있었다. '내 것'만을 고수하며 말하는 상대의 배려 없는 어투에 나는 순간적으로 열이 확 뻗쳤고,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내 마음이 침착해졌을 때쯤 잠깐 앉아서 이야기 좀 할 수 있냐며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상기하고 또 실감했다. 내가 가늠할 수 있는 만큼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내 모습도 그에게는 내 입장을 내세우는 마음에 지나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기도 했지만.

 




 인간은 정말이지 이기적이다. 이 말은 곧 나에게 '보통의 사람은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와 다르지 않다. 이해관계에 놓였을 때 먼저 떠오르는 건 냉정히 가려보면 상대가 아닌 나다. 나 다음으로 상대를 떠올리는 자비의 시간차는 모두 각기 다를 테고, 나는 그 시간을 0.001초씩 좁혀가는 연습과 실천의 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이 관념은 좋다 나쁘다로 따질 거리가 아닌 것 같다. 인간이 본디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고 수용하면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을 보다 쉽게 포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해할 때, 건강한 관계, 성숙한 관계에 가까워진다. 이해는 움트려는 미움을 녹아들게 하고 한 움큼의 여유를 주기에. 거기에서부터 상대뿐만 아니라 나를 향한 관용과 배려의 느긋한 템포가 가미되기에.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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