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도 락인가?
슬며시 퇴근이 다가오는 오후 5시 15분. 유엔 세계식량계획 아프가니스탄 카불 사무소에는 한 줄기 적막이 흘렀다. 방금 따끈따끈하게 인박스에 내리 꽃힌 한 통의 메일 탓이다. 전직원에게 보내진 공지사항에는 덤덤하게 각자도생을 당부하는 내용이 세 줄 적혀 있었다.
"여러분 안타깝게도 당국의 지침에 따라 금일 오후 5시 30분 이후로 아프가니스탄 내 모든 통신망은 먹통이 될 예정입니다. 재택 근무를 하고 있는 여성 직원들은 모바일 데이터를 충분히 충전해두십시오. 통신이 언제 재개 될지는 미정입니다."
그러고는 15분 뒤 탈레반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의 통신망을 끊어버렸다. 이딴게 현실이라고?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5시 반이 되자마자 메일함과 메신저를 미친듯이 새로고침 해봤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당연히 카카오톡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잠깐만 나 우리 엄마한테 아직 상황 설명도 못했다고!
중국과 북한이 이악물고 정보를 검열하는 것처럼 가까운 시일 내에 탈레반도 비슷한 검열 시스템을 아프가니스탄에 도입할 것이라는 루머는 진작부터 있어봤다. 머리카락 한 올도 나오지 못하게 꽁꽁 싸메고 집안에 여성을 가둬두는 나라에서 눈물의 여왕과 오징어 게임은 제한 없이 맘껏 볼 수 있었으니 사실 이걸 지금껏 그냥 풀어둔 게 신기할 정도이긴 했다. 사전에 예상 못한 점이 있다면 비단 유무선 인터넷 뿐만 아니라 문자와 전화를 비롯한 모든 형태의 통신을 단칼에 나락으로 보내버렸다는 것. 당연히 데이터도 터지지 않았고, 혹시나 싶어 시도해 본 ESIM도 먹통이었다. 안전 훈련 받을 때만 해도 무전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닥칠 줄을 몰랐는데.
움직일 리가 없는 노트북 화면을 수 차례 뒤적거리다 끝내 포기했다. 인터넷 없이 할 수 있는 업무가 없으니 얼마만에 하는지 모를 정시 퇴근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 시간에 숙소에 돌아와도 심심하기만 했다. 모처럼 칼퇴를 했는데 넷플릭스도 못보고 모바일 게임도 못한다니. 그저 시간과 적막과 불안만이 하염없이 남아돌았다. 바깥 세상 사람들은 지금 아프가니스탄이 통째로 통신 두절이 된 걸 아무도 모르겠지. 통신이 끊겼다고 연락할 통신도 끊긴 상태니.
나만 할 일이 없었던 건 아닌지 인류가 21세기에 걸쳐 쌓아올린 문명을 한큐에 잃어버린 카불 컴파운드 주민들은 결국 삼삼오오 정원에 모여 불을 피워놓고 밤늦게까지 줄창 물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퇴근 후 게임 이벤트 밀고 가챠 돌리는 낙으로 사는 나로서는 인터넷이 안된다는 이 상황이 과거 지진으로 인한 대피소 피난이나 앞 건물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 사고보다 단연 압도적으로 정신적 충격이 컸다. 하룻밤만 참고 자고 일어나면 없던 일이 될거야. 이건 꿈일거야.
그 다음날. 안타깝게도 인터넷은 여전히 먹통이었으며 공항이 마비되고 비행기가 줄 캔슬 되었다. 은행 업무까지 전면 중지되며 컴파운드엔 쌀쌀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관성대로 출근은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최대한 천천히 커피 내리기 그리고 내린 커피를 최대한 천천히 마시기 말고는 없었다. 그 동안 영 무슨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건지 알 수 없었던 IT팀은 인터넷이 끊긴 어제부터 내리 야근을 했던 모양인데 스타링크로 인터넷을 연결해 업무용 메일과 채팅만은 기어이 복구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당신들 월급 받을 자격 있어. 그렇게 간신히 업무용 내부 통신 채널은 복구했지만 문제는 사무소 외부 인력들과는 연락이 전혀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유엔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직원은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다. 식량 배급 포인트만 전국에 9,500개가 넘는데 800명도 안되는 사무소 직원으로 커버할 수 있을리가. 대부분의 현장 집행 업무를 맡는 것은 수천 수만명에 달하는 외부 하청업체 직원들이다. 이들이 오늘 사무소에 무사히 출근은 했는지 예정된 식량 배급은 진행이 되고 있는건지 달리 확인할 길이 없으니 내 갸냘픈 인내심이 실시간으로 조각나는게 느껴졌다. 오후가 되도 통신망이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몇몇 현지 직원들은 직접 차를 몰고 외부 업체 사무소를 하나 하나 찾아 다니며 상황을 파악하며 지침을 전달하기 시작했는데, 이 정보화 시대에 연락 한 번 하겠다고 물리적으로 파발을 보내게 될 줄이야.
업무가 올스탑되자 할 일이 없었던 사람들은 차나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과연 이 통신 차단이 얼마나 갈지에 대한 추측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탈레반이 김정은이를 영혼의 롤모델로 잡고 앞으로 쭉 영원토록 인터넷이 돌아오지 않을 것라는 극단적인 통제론부터 체제 유지에 방해되는 특정 사이트만 차단하고 나머지는 풀어줄거라는 낙관론. 혹은 지금의 통신 차단은 통신망에 추적 감시 기능을 가진 스파이웨어를 밀어넣기 위한 계획의 일환일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북한 사무소는 WFP 홈페이지랑 이메일만 확인할 수 있도록 막아놓고 이메일 갱신도 하루에 두 번만 할 수 있게 한다던데. 설마 아프가니스탄도 그렇게 되는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상태가 일주일만 더 지속되도 나는 못 버티고 바로 사표 때리고 나가게 될 정도로 지금 이 상황이 죽을 맛이라는 것이다. 내가 아프간 컴파운드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직 희미하게나마 바깥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때문이다. 외부와 단절된 채 총잡이들이 어슬렁거리는 아프가니스탄 컴파운드에 3년 정도 처박혀 살다 보면 자연스레 성격이 배배 꼬인 비관형 인간이 된다. 내가 그나마 정상 범주 안에 얼추 들어가는 정신 상태나마 간신히 유지하고 살 수 있는 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족 친구들과 나누는 사소한 안부나 사사로운 유튜브를 보며 사사로이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감금될거라고는 아무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잖아!
모두의 걱정과 추측과 음모론이 무색하게도 대대적인 통신 차단으로부터 정확하게 이틀이 지난 뒤 공식적으로 나라 전체의 통신망이 복구되었다. 그러나 그 후 서서히 밝혀지게 된 이번 차단의 전말은 더 큰 물음표와 당혹감을 남겼지만..
하늘이 노하셨다. 당국이 발표한 통신 차단의 공식적인 이유였다. 지난 해 9월, 아프가니스탄 동부에는 진도 6.0의 강도 높은 지진이 수차례 강타했다. 동부의 자랄라바드는 카불에서 수십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한밤중의 진동이 내 침대에서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고 곧바로 뒤따른 긴급 구호 식량 지원으로 죽도록 야근을 하게 되었으니 반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탈레반은 이 지진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불경한 매체를 너무 많이 봐서 하늘이 노하여 내린 벌이라고 해석해 통신망 자체를 끊어 버렸던 것이었다. 어떤 사고 회로를 하면 생각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신인데 외국 드라마나 케이팝 아이돌 영상 좀 봤다고 냅다 지진을 낼 정도로 쪼잔하고 속이 좁을 리 있겠냐고.
여기까지는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이고, 당연히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외부에 보여지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탈레반은 하나로 통일된 집단이 아니다. 여성의 교육을 어디까지 허락할 것인지, 혹은 미국 및 서방 세계와의 관계성을 두고 대립과 협력을 반복하는 여러 개의 정파로 나뉜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이번 소란은 탈레반 내부에서도 극단적인 세력이 일단 인터넷 먼저 끊어놓고 정보를 완전히 차단해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정파 싸움을 하기 위해 일어난 셈이다. 지랄도 이만치하면 예술이다.
탈레반 내부 소식은 아프간에 주재 중인 유엔 사무국까지 친절하게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카더라 통신이 많은데 인터넷이 끊긴 이틀 동안 공항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무력 충돌이 있었다는 썰도 있고, 소란을 틈타 파키스탄 탈레반의 고위직이 카불 시내에서 암살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공습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에서 교전이 벌어졌고 이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카타르에서 열린 종전안에 양국이 얼추 합의하며 일련의 소란은 막을 내렸다.
물론 국경에서 있었던 교전에 대해 카불 컴파운드에 온실 속의 화초처럼 처박혀있던 우리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TV에서 종전안에 합의하는 양국 대사를 보고나서야 선전포고와 전쟁을 다 건너뛰고 종전에 대해 먼저 알게 된 것 또한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