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다가 울어본 적 있는가?
아프가니스탄에 부임한 직원에게 살고 싶은 장소를 고를 수 있는 주거의 자유란 없다. 같은 기구에 소속된 모든 직원들은 강제로 같은 숙소를 쓴다. 한 마디로 회사 기숙사에 들어가 사는 셈이지만 이 기숙사는 당연하게도 공짜가 아니다. 외국인들 골수까지 뽑아먹으려는 살벌한 기본 주거 옵션에 더해 경호 비용까지 살살 녹아있는 월세는 무려 월 280만원에 달한다. 최근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했으니 지금은 아마 300만원 정도 할 것이다. 물가가 저렴한 편에 속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변 나라들과 비교해 유독 특수지 수당을 많이 얹어주는 것은 바로 이 살벌한 월세를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월세 300만원짜리 싱글룸은 연고 하나 없는 해외에서 스스로 방을 찾고 계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숙사의 개 큰 장점을 모조리 상쇄할 만큼 가성비가 구리다. 갓 부임한 직원들에게는 예외없이 작은 샤워 부스 하나가 딸린 화장실과 침대, 그리고 화장대 하나가 전부인 원룸이 배정된다. 물론 당신의 직급이 P4/P5 이상이라면 높은 확률로 거실과 키친이 딸린 2LDK를 배정받게 될 것이며 혹여 직급이 낮더라도 25%-30% 정도 월세를 더 낼 각오가 있다면 누구나 평등한 조건에서 넓은 방을 쓸 수 있는 기회는 열려있다.
물론 유엔 피라미드 말단 직원인 나는 군말없이 조막만한 싱글룸에 입주해 3년 넘게 살고 있는데 부엌은 커녕 제대로 된 냉장고나 정수기조차 없기에 플랫 공용 키친에서 요리를 하는 수 밖에 없다. 때문에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도 회사 사람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식사를 준비해야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휴일에 곧 죽어도 직장 사람들 얼굴을 보기 싫거나 스스로 요리를 할 능력이 없다면 컴파운드에 딱 하나 있는 식당에서 한 끼에 5달러를 내고 뷔페식을 먹는 방법도 있다. 다행히 사내 식당에는 영양학적으로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한 건강식이 나온다. 슴슴하게 삶은 야채와 서너가지 종류의 샐러드, 빵, 밥, 파스타, 단백질군으로는 종교 이슈로 돼지고기를 제외한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번갈아가면서 하나씩 먹을 수 있다.
문제는 유엔 세계식량계획 사내 식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분기별로 식중독 환자가 줄줄이 나온다는 것. 특히 여름철에는 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급히 뛰어가는 직원들을 여럿 볼 수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야 너두? 야 나두! 하게 된다. 더불어 거진 비슷한 메뉴와 향신료가 주 단위로 무한 반복된다는 결점이 있기에 3개월만 지나면 너도 나도 울며겨자먹기로 요리 기구를 사들여 본인 입맛에 맞는 무언가를 만들어 입에 쑤셔넣게 된다. 최근 미국-이란 전쟁과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쟁으로 인해 국경이 닫히며 유가와 식료품 가격이 함께 상승했기에 그나마 있던 메뉴의 가짓수조차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수단이나 가자 같은 극단적인 오퍼레이션이랑 비교하자면 아프가니스탄은 긴급구호 부임지 중에서는 가장 선녀같은, 소위 꿀빠는 조건이기 때문에 불평하기에도 좀 민망하긴 하다.
하여간 다음 휴가 사이클이 돌아오기 전에는 다리가 부러지거나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죽을 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컴파운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이 곳 주민들의 맛있는 음식 (특히 종교적 이유로 금지된 돼지고기와 술)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기에 가깝다. 엄격하게 술을 금지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지만 외국인에 한해 통상 인당 2병까지만 반입을 허가해주고 있다. 그 이상 반입하려다 걸리면 공항에 근무하는 탈레반이 직접 하수구에 술을 탈탈 털어 넣어 정성스럽게 손수 폐기해주는 건 물론 장총을 든 채 근무하는 공항 경비 직원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감당해야만한다. 물론 이 비좁은 컴파운드에서 휴일에 술 마시는 거 밖에 할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 결국 참다 못해 직접 과일을 발효시켜 술을 담그는 쪽으로 비범한 재능을 개화시키는 직원도 나온다. 한 여름이 되면 정원에 주렁주렁 열리는 포도를 따서 키친이 없는 방의 유일한 배수구가 위치한 화장실에서 와인을 담그거나 남부에서 늦여름부터 나는 석류를 가져다 과실주를 담그거나 막걸리 제조 키트와 발효 효소를 가져와 막걸리를 담그는 식이다. 이렇게 카불이 원산지인 홈메이드 와인을 화장실 와인이라고 부른다.
그 중 술 보다도 음식 쪽으로 기이할 정도의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걸로 가장 유명한 직원은 바로 나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도, 친구와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물론 서럽지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때에 먹을 수 없는 것에 가장 한이 서린다. 내가 왜 세계식량계획에서 일하는데!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거 아니야! 자고로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근심걱정없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야 하는거라고. 카불에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회사 식당에서 나온 밥을 먹고 식중독에 2번 연속으로 걸렸을 무렵부터 내 인내심은 산산히 빠개져 박살이 났다. 맛없는 음식을 먹은 것도 서러운데 그 맛없는 음식이 또 하필 상한 음식이라 설사까지 해야 한다니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 뒤로 3년에 걸쳐 밥솥, 에어프라이어, 인덕션, 인덕션용 후라이팬, 냄비, 커피를 내리기 위한 핸드드립 기구, 도마 등을 부지런히 한국에서 카불로 실어 나른 결과 쥐꼬리만한 싱글룸 한 켠에 나만의 작은 키친 아틀리에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종국에는 한국으로 휴가를 나갈 때마다 캐리어 3개를 냉동 돼지고기, 만두, 오뎅, 치킨, 한국 쌀 등으로 꽉꽉 채워 26시간에 걸쳐 힘들게 운반한 다음 카불에 도착하자마자 외부에서 특별히 공수한 냉동고에 쑤셔 넣고는 다음 휴가 전까지 야금야금 냉동 식품을 까먹으며 지낸다. 이렇게 하면 휴일에 내 방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채 조용히 게임이나 하면서 평안한 주말을 보낼 수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많다. 아프가니스탄은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나라로 여름엔 덥고 겨울엔 뼈가 시릴 정도로 추웠다. 쇄골과 손목과 발목을 모두 가릴 수 있도록 현지 복장 규정에 맞는 여름옷과 겨울옷이 모두 필요했으며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운동복과 운동화도 필요했다. 다른 나라라면 대충 현지 마트에서 살 수 있을 법한 물건이 이 곳에는 아예 구할 수 없거나 중국에서 들여온 수상한 짝퉁 뿐이었다. 카불에 처음 도착한 3년 전 한겨울에 컴파운드 마트에서 드라이기를 25달러 주고 샀지만 뜨겁게 열이 오르다 못해 종국에는 화염 방사기처럼 불꽃과 연기를 매섭게 뿜어내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나는 전자기기를 현지 조달하는 걸 포기했다.
속옷, 양말, 스킨케어, 샴푸와 린스, 생리대, 드라이기, 밥솥, 에어프라이기, 에어프라이기에 넣어서 돌릴 유산지, 인덕션, 밥솥, 믹서기, 정수기 필터, 커피 원두와 필터, 세제, 섬유유연제, 탈취제 등 사람이 존엄을 유지한 채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필요하고 또 수없이 많은 쓰레기들을 끊임없이 양산해 낸다는 것을 부모님 집에 얹혀 살 때는 미처 몰랐다. 필요한 물건들을 수년 간 알음알음 카불로 실어 나르다 보니 마치 햄스터가 다 먹지도 못할 양의 해바라기씨를 볼에 모아 놓는 것 처럼, 새가 나뭇가지를 모아 둥지를 트는 것처럼 내 방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잡동사니가 쌓인 던전으로 변해갔다. 문제가 있다면 계약직인 나는 한 번에 11개월 이상의 계약을 받을 수 없었고 휴직 기간에는 방에 있는 모든 짐을 다 빼야만 했다. 정규직의 숫자를 늘려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직원의 수를 가능한 줄이고 싶었던 회사의 방침에 맞추어 11개월의 계약을 마치면 컨설턴트로서의 의무 휴직 기간인 한 달을 끼워 넣은 백수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인력이 필요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은 보내고 싶지만 정식 직원으로 인정은 해줄 수 없다는 회사의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정규 계약서에 서명을 한 지 3번째 11개월이 지나 휴직기에 들어서게 되었고 한 달 간의 강제 휴가를 앞두고 반드시 끝내야 하는 급한 업무들을 마무리하고 팀원들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동시에 마의 소굴 같은 내 방을 깔끔하게 비우고 온갖 부서에 들려 회사에서 받은 물품을 반환했다는 서류에 담당자 서명을 '수기'로 하나 하나 받아야 했다. 물론 온라인 폼으로 제출해도 되지만 온라인으로 수많은 담당자에게 동시에 서명을 요청하면 아무도 제 시간에 맞춰서 답장을 해주지 않는다. 결국 직접 찾아가서 서명을 해줄 때까지 옆에서 버티고 있어야 한다. 본부에서 사용하는 양식과 국가 사무소에서 사용하는 양식이 통합되지 않아 서로 미묘하게 다르지만 결국 완전히 똑같은 질문을 그저 반복하고 있는 두 개의 서류를 따로 따로 출력해 수기로 개별 날인을 해서 제출해야 하는 부분이 유엔다움의 화룡점정 같았다. 이 서류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못하면 이번 달 월급은 휴직에서 복귀한 이후로 지급이 밀리기 때문에 2달이나 빈털털이로 살고 싶진 않았던 나는 꽤나 필사적으로 서명을 받으러 뛰어다녔다.
한국으로 가져갈 짐과 박스에 넣어 카불에 있는 창고에 보관할 짐을 나누어 새벽까지 산더미같이 쌓인 짐을 꾸릴 때에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엉엉 처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잠을 제대로 못자서 감정 조절이 안되는 것 같은데. 내일도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끝내고 가야 할 일이 X발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정리해야 할 짐은 싸도 싸도 까마득해서 도저히 끝이 안보이고 잠은 못자겠고. 이렇게 바리바리 다 정리해놓고 돌아와서 3개월만에 싹둑 잘릴 수도 있는데 그래도 또 당장 짐은 싸야겠고.
외국에 나가 이 나라 저 나라 떠도는 이방인으로 홀로 살며 얻은 값진 교훈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 세상에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엉엉 대성통곡을 하며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처 울건 아님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훌쩍 훌쩍 조용히 울던 간에 나를 둘러싼 상황은 단 1미리도 변하지 않는다. 괜한 감정과 수분과 미네랄을 낭비하기 보다는 당장 닥친 일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잠이라도 더 자는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나는 1인 가구의 가장이다. 나는 개처럼 일해서 토끼같은 나를 먹여살려야만 한다..
이 휴직 기간 동안에는 월급과 보험은 물론 회사 이메일과 시스템 접근 권한까지 단칼에 끊긴다. 카불에서 병원을 제대로 다닐 수 있을리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보험 혜택이 끊기는 휴직 기간이 되어서야만 비로소 병원 투어를 다닐 수 있다는 것에 벌써부터 뼈가 시리는 기분이었다. 계약 기간 중에 주어지는 휴가와는 다르게 이메일 확인조차 못하니 온전한 휴식이 보장된다는 점만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아무리 남겨진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휴직 중인 나에게 전화를 걸어봤자 시스템 접근 권한이 없는 이 개백수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다. 하하 참 고생이 많겠어. 그런데 어쩌지? 나는 지금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도 못하는 상태라서 말이야. 도와주고 싶은데 정말 안타깝네. 마저 고생해!
트럼프가 개발 협력 예산을 박살낸 후 사무소를 휩쓸고 간 구조 조정 외에도 유엔 컨설턴트의 복지 혜택이 대폭 축소되었다. 사전 공지 하나 없이 특수지 수당을 줄였으며, 의료 보험의 개인 부담금을 2배 넘게 올렸고, 보험 혜택은 줄었으며, 휴가 수당을 줄이고 휴가를 나가기 위해 카불에서 근무해야 하는 체제 일수는 늘림으로서 알뜰살뜰하게 복지를 삭감했다. 유엔은 효율성과는 거리도 멀고 일처리도 느린데 이럴 때만 미친 속도로 일을 처리하는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한 술 더 떠서 회사 관례상 계약직 사원에게 주어지던 11개월 계약을 조각내어 5개월, 3개월, 2개월 그리고 1개월로 나눠 한 번의 정규 계약과 3번에 걸친 계약 '연장'을 하게 되었다. 계약이 연장 될 때 마다 매번 사원증을 재발급 받아야 했으며 사내 인트라넷 연동이 늦어져 한 달씩 월급이나 수당이 밀리곤 했지만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정규직이기 때문에 계약직이 겪는 불편함과 불안함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이 조직은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3개월이 채 안되는 계약서만 믿고 있다가 연장이 안되면 언제든지 짐을 뚝딱뚝딱 싸서 나라를 옮겨 다녀도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육체와 정신이 강건한 사람들만 인도적 지원을 할 자격이 생기는걸까?
아프가니스탄의 식량 위기 상황에서 식량을 배급하기 위한 수혜자 타게팅 업무를 했습니다.
라고 이력서에 가지런히 적어낸다면 이 좁아터진 인도적 지원 업계에서야 그럴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외부 취업 시장에 나가는 순간 도라이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내가 공부한 전공과 업계 지식은 폭탄이 떨어지고 지진이 나는 상황 속에서야 빛을 발하지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들과 비교하자면 대학생 과제보다 못한 퀄리티일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아예 정규직에서 잘리거나 낮은 직급으로 좌천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보니 이게 당장 수 년 뒤의 내 미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유엔에 입사할 때만해도 정년이 되면 어련히 은퇴해서 모아놓은 돈이나 살살 까먹으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가다간 내 정년이 채 오기도 전에 업계 자체가 빠그러지고, 인력 대부분이 AI에 대체되어 의도치 않은 강제 퇴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아보였다. 아무도 모르게 싹둑 잘리지 않으려면 주위에 열심히 이력서 돌리고 네트워킹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사교성이 좋지 않은 걸 넘어 사람을 싫어하며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 업계에 들어온 이후로 싫어하게 되었다) 아부도 자연스러운 자기 어필도 속에 없는 말도 못한다. 술이 있는 사교 모임은 특히나 기피하며 퇴근하고선 침대에 대자로 누워 시간이 하릴없이 흘러가는 것을 조용히 느끼며 인간의 말소리를 듣지 않고 쉬어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는 타입이다.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정말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
골라버린 것
같아
이미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