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조승연의 탐구 생활>을 듣던 중 마음에 울림을 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제목은 "돈과 경험은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ft. 로드러너 : 앤서니 보데인)"
'앤서니 보데인(Anthony Bourdain)'은 조승연이 꿈꾸던 인물이었다. 요리사였던 그는 요리업계의 뒷이야기를 쓴 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유명 방송사에서는 그런 그를 앞세워 길 위를 나서는 여행 먹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맛있는 것을 먹고, 세상 속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TV 스타이며 여행가로 살아가는 그를, 세상 사람들은 "가장 행복한 직업", 혹은 "가장 완벽에 가까운 인생"이라 칭했다.
그랬던 그가 2018년 CNN 출장 도중 프랑스의 한 호텔에서 자살로 추정된 죽음을 맞이한다. 왜였을까?
그 단서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로드러너>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제목처럼 '앤서니 보데인'은 길 위를 뛰는 사람이었다. 길 위를 느긋하게 걷는 법이 없었다. 여행 프로그램을 찍는 와중에도 갑자기 카메라 프레임에 뛰어들거나, 다음 장면을 찍자며 뛰쳐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도전적으로 세상을 탐닉하는 성향인 그는 그 열정만큼 빠르게 성공했고 유명해졌다.
자본주의를 이끈 성공한 CEO나 유명인들도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불안감"이 높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으며,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원하는 것에 꽂히면 중독적으로 그것에 몰두한다.
20세기는 그들이 이룬 돈과 권력을 부러워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차 그러한 욕망은 끝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경험과 지식'이라는 다른 의미의 풍요를 추구하는 사회로 이동해 갔다. 10억을 가진 자는 100억을 부러워하고 그다음엔 곧 1000억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앤서니 보데인'은 21세기의 상징적인 인물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를 부러워했었다.
조승연은 2018년 자신의 롤 모델이었던 '앤서니 보데인'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돈과 지위"가 아닌 "경험과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 해답일 것이라는 가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그의 결론은 과유불급(過猶不及)! 무엇이든지 과하게 추구하는 것은 그 사람을 잘못된 곳으로 안내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나는 살면서 종종 이런 느낌을 받는다. 신이 나를 가르치는 방식이 있는데, 내가 손에 꽉 움켜쥐며 욕심을 부리는 무언가가 있을 때 그것을 빼앗아 가곤 하신다. 그러면 처음엔 억울하다며 떼를 쓰다가 손을 탁탁 털고 일어나 다른 재미난 놀 거리를 찾아 나서는 어린애처럼 얼마 안 가 곧 잊어버린다. 가만 보면, 그것은 처음부터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당장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바닥을 떼구루루 구르며 신에게 떼를 쓰곤 했던 것이다.
그것을 수없이 반복한 이후로, "욕망"에 대한 감정이 떠오를 때마다 나에게 스미는 정서는 "허망함"이다. 풍요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라 했다. 그것은 지금의 삶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 내가 '욕망'하는 모든 것이 그저 한때이며 곧 스쳐 지나갈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는 동양의 "장자", 혹은 "붓다"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 마음 안에서 수시로 번뇌를 일으켰던 것은 이러한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열정"과 한 끗 차이다. 열심히 사는 것과 욕심껏 사는 것의 미세한 차이가 내 행복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스스로에게 수시로 경고등을 울리고 힘을 빼려 한다.
그건 네 것이 아니야.
필요하면 주어질 거야.
흘러가게 두자.
조승연의 에피소드 말미에는, 두 가지 고전 문학을 인용하면서 예전과 다른 해석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첫 번째는 괴테의 <파우스트>이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지식을 추구하던 파우스트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지옥불에 떨어진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파우스트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젊은 날 큰 영감을 받았던 보들레르의 책 <악의 꽃>에 담긴 시 <여행>에 대한 해석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젊은이여! 드넓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세상을 곳곳을 이미 다녀온 여행자가 그 헛헛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전혀 다른 해석을 하게 된 것이다.
삶의 항로를 떠난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자유의지"를 부여받았다. 혹여, 나 홀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다른 이들의 경로를 곁눈질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인들이 고전을 통해 알려 준 지혜가 헛되지 않으려면 우린 무얼 선택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