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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덕 Dec 01. 2022

손톱깎이

간직하고 싶은 순간





올해도 내 손톱은 날 것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났다. 각양각색의 네일 용품들이 손만 뻗으면 가까이 있는 시대. 피아노 선생님도 아니고 수술실 의사도 아니지만, 나는 어느 날부터 그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않고 있었다.




몇 달 전 여름에 막 들어서던 어느 날, 주말에 집으로 온 딸아이의 빨랫감 짐 속에 낯선 네모난 상자가 있었다. 몇 주 전부터 스쳐 지나가듯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지만 사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딸아이의 표정에는 벌써 상자 안에 담긴 흥미진진한 재밋거리를 한껏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그 안에 들어 있었던 건 젤 네일 키트였다.

알록달록 손톱 발톱 모양의 스티커들과 부수적 도구들. 그리고 usb로 연결하면 LED 조명처럼 불이 들어오는 기구도 들어 있었다.


딸은 내게 무얼 붙이고 싶냐고 물었다.


사실, 새치 머리카락을 물들인 염색약이 하수구로 흘러드는 검붉은 물을 보며 불편한 것만큼이나 손톱에 칠한 매니큐어를 지우느라 화장솜에 듬뿍 묻힌 아세톤이 불편해졌다. 오래전 중요한 행사 사회를 맡아 젤 네일과 페디큐어를 한 후, 젤 아래에서 숨 쉬지 못해 시름시름 앓는 안색처럼 누렇게 변해가던 손발톱을 기억하고 있었다.




© Bru-nO, 출처 Pixabay




딸에게는 그런 얘기를 구구절절하진 않았다. 딸아이랑 꽁냥꽁냥 한 시간이 언제 또 올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손톱을 내주긴 싫었다.


“발톱만 할까 봐”

“그래? 무슨 색?”


꼼꼼한 딸은 내가 고른 파스텔톤 스티커를 붙이기 전에 발톱 위를 고르고 정리한다. 이리저리 각을 맞춰 색을 붙인 후 줄로 잘 정리해 모양을 다듬었다. 그 위에 투명한 무언가를 바른 후 LED 불빛이 반짝이는 기구에 전원을 켠다. 나는 컴퓨터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그 과정들을 두 눈과 마음에 담아두었다.




© chentusoul, 출처 Pixabay





시간이 지나 겨울을 목전에 둔 지금, 그동안 발톱을 몇 번이나 잘라냈는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새로 난 발톱 위로 겨우 간당 거리며 붙어있던 스티커 페디큐어의 흔적은 어느 날 머리를 감던 와중에 물줄기를 맞고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쯤 들려 겨우 붙어있던 나머지 한쪽마저 손톱깎이로 떼어냈다.


보통 때의 발톱은 반듯하게 잘라내려 해도 굵고 단단해 애를 먹기 마련인데, 스티커 아래서 숨 쉬지 못한 발톱은 손톱깎이가 닿자 바스러지둣 갈라졌고 누렇게 색이 바래 있었다.


손톱을 보았다. 발톱과는 사뭇 다른 윤기 나는 표면이 연분홍빛으로 발그레했다. 손톱깎이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팽팽하게 겨루기를 하며 잘려나갔다.


손톱깎이가 또각이는 동안 나는 어디로 쏘다닌 것일까. 백만 년 전 다녀온 네일숍. 네일도 반지도 없는 지금의 못생긴 손. 누렇게 변한 발톱의 표면 사이를 배회하는 내내, 나는 그날 딸아이의 손끝으로 꼭꼭 누르던 감촉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손톱깎이는 잘려나간 발톱 어귀에 딸아이의 체온을 그대로 남겨주었다. 이제 당연히 스스로 손톱을 자르는 아이는 언젠가 내 오랜 손톱을 잘라주겠지. 딸아이가 아가였을 때 작고 가는 손끝 눈썹처럼 얇은 손톱을, 내 숨을 참아가며 조심스레 잘라줬둣이.




© livvie_bruce,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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