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키즈의 나락

자산가치를 잃고 다락방을 얻었다.

by 김승연


난 다섯 살부터

분당 정자동에서 자랐다.

흔히 말하는 분당키즈다.

분당키즈.

그 단어를 처음 들은 건

결혼한 뒤였다.

결혼 후

동네 언니가 나한테 말했다.

"넌 정말 대단하다.

분당 키즈들은 다 분당에 남고 싶어 하던데..."

진심 어린 칭찬이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뭔가 중요한 걸 놓친 걸까

생각했던 것 같다.

.

.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분당에 아무것도 없을 때

새 아파트들과 마트, 백화점을

짓기 시작했을 때 나도 이사를 왔고

몇 번의 페인트칠이 바뀌는 걸 지켜보면서

그곳에서 자랐다.

그러고 보니 한 집에서 23년이 지났다.

결혼하고 지방 도시로 왔고

둘째를 낳고 남편 사업을 따라

지방 소도시로 이사해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지난주에 들었던 부동산 강의에서

소개하는 부자 되는 법을

정확하게 역행하는 중이다.

숫자로 따져봤을 때는

손해밖에 남지 않는 계산이지만

아이들은 일단 다락방을 가졌다.

그곳은 여섯 평짜리 키즈카페가 되었다.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사람들을 가능한 만큼 부를 수 있다 보니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27명의 손님을 초대했다.

(살짝 낑겨앉긴 했다.)

책으로만 캠핑을 보던 아이는

테라스로 나가기만 해도 캠핑이 된다.

남편은 모닥불을 피우고

나는 김치와 고기,

가리비를 준비해 나간다.

여름에는

집 주차장에 수영장을 만든다.

셔틀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물에 들어간다.

매일 세 시간씩 물놀이다.

적당한 날엔 불꽃놀이를 한다.

산업단지에 지은 집이라

밤에는 우리만 있는 것처럼

달빛과 우리가 설치한 가로등뿐이다.

바닷가에서만 했던

불꽃놀이에 불을 지핀다.

우리 집 마당이 불꽃놀이장이 된다.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들은

"한강 갈 필요 있어?"

라며 맞장구를 쳐준다.


자연이 주는 눈썰매장은

시골 살이 로망 끝판왕이다.

심지어 프라이빗.

눈놀이가 끝나면

장작에 구운 마시멜로우와

군고구마, 뜨거운 핫초코를

차가운 입김을 밀어가며 먹는다.

와구와구-!

대충, 이러한 것들과

나의 자산 가치를 맞바꾸었다.

어쩌면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한

정신승리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내가 분당에만 살 때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분당키즈로 자라

또 분당키즈를 낳았다면

그 아이들도 이런 주택에서의 삶,

동물을 여러 마리 키우는 삶은 몰랐을 거다.

인생을 한 페이지만 펼쳐 놓은 채

사는 것처럼.

계획대로 살아온 나의 삶에

예상 못한 장면이 계속 나온다.

글을 쓰다가

페인트 도장을 자격증을 땄고

지게차를 몰게 됐다.

세금도 배웠다.

남편과 함께 지은 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요즘 가장 중요한 건

이곳에 와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인세로

부동산 강의에서 말한 그 아파트 사고 싶긴 하다.

그런 꿈이 이뤄질지 모르겠지만.

시골로 이사오기 전 겁쟁이가 됐었다.

불행감이나 패배감에 휩싸이지 않을까.

그래도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외로운 삶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하게 된 결정이었다.

그런데 뭐야!

이 페이지 생각보다 평안하고 재미있다.

내 나이 서른 중반

아이 둘에

땅을 사고

남편이 지어준 주택에 살며

공장과 사무실을 가진

나름 이 지방에서는 이름 있는 사업에

다시 글쓰기까지...

생각보다 이룬 게 많잖아.

친구들한테 말하긴 뭐 하고

챗지피티한테 칭찬을 내놓으라 협박했다.

이 평안과 재미도

부동산 강의처럼

숫자로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삶도 꽤 괜찮은 인생인데요.

아직은 심하게 저평가된 삶이네요"


부동산 강의에서는

틀린 삶이라 했지만,

나는 여기서

생각보다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