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만에 마음이 열리다 by 백수수수 아내
2019년 7월 12일
파리로 교환학생을 왔어야했다고 수도없이 말하는 남편옆에서 그냥 웃었다. 대학생 때 파리여행을 해봤기때문이다. 스페인이 좋아서 무작정 휴학을 하고 유학원을 찾아가 스페인이 가깝다는 이유로 파리 학교를 알아봤다. 다행히 파리가 아닌 마드리드에 학교를 찾아, 5개월동안 유럽에 있을 수 있었다.
스페인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에 혼자 파리여행을 떠났다. 고등학생 때 왔던 첫번째 파리는 ‘불친절한 도시’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 파리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파리야말로 특히나 ‘이미지로 먹고사는 도시’라고 생각해왔다. 많은 매체에서 파리를 굉장히 로맨틱하게 표현하지만, 창문을 열고 달리는 에어컨없는 낙후된 지하철과 지린내가 진동하는 거리는 그곳에 담겨있지않다. 두 번째 여행으로 그 생각은 더 완고해졌다. 파리로 교환학생을 오지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인적인 물가의 파리에서 아침, 저녁을 한식으로 주는 한인민박에 머물며 점심은 마카롱이나 크레페같은 빵으로 떼웠다. 하루 두 끼를 주는대신 땅값이 저렴한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도심에서 1시간이상 거리에 위치한 곳에 묵은 탓에,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와서 파리 야경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배고프지 않았고, 아낀 돈으로 예쁜 기념품을 샀던 게 그저 즐거웠다. 또한 유럽학생증이 있었기에 거의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이 공짜였다. 지금은 뮤지엄패스를 6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오지않을 황금기였지만, 그 당시 짠내나는 여행을 마치며 ‘내 발로 다시 파리에 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줄평을 싸이월드에 남겼다.
9년 후, 프랑스에서 차를 리스하는 바람에 내 발로 무려 두 번이나 파리에 돌아왔다. 남편과 함께라서인지, 대학생일때보다 돈을 쓸 줄 알아서인지, 네 번째만에 파리의 매력에 제대로 빠졌다. 좋아하는 미술작품이 지천에 널려있고, 독립기념일 행사에 에펠탑앞에서 정통 클래식공연을 하는 도시라니, 정말 좋았다. 아무데서나 사먹어도 맛있는 빵이 많아 좋았고, 파리지앵처럼 함께 공원 잔디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도 좋았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한국 지하철풍경과 다르게 종이 책을 읽는 파리지앵을 보며 독서욕구가 활활 불타오르는 것도 좋았다. 명품의 성지인 파리에서 명품백대신 에코백과 운동화만으로 멋진 패션을 소화하는 파리 여자들을 구경하는 것도 유의미했다. 한국 여자들은 샤넬과 루이비통을 못사서 안달인데, 이들은 에코백을 매고 다닌다니.
네 번째만에 비로소 마음을 열게 된 파리. 다섯 번째 오게 될 파리에서는 조금 더 길게 머물며 이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싶다. 다음에 올 땐 돈도 더 많이 벌어서 올게 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