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법
얼마전 2000년대의 유물을 꺼내보았다.
20대의 나는 바인더를 들고다니며 스크랩도 하고, 기록도 하고,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저장강박증 환자로 지냈었는데. 바인더는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 앞 뒤 표지에 원하는 것을 끼워넣을 수 있는 형태였다.
그 소중한 바인더에 세가지를 끼워넣고 다녔는데,
1. 거의 다 벗고있는 공효진 언니의 화보 한 컷
2. 아는언니오빠가 신혼여행으로 파리를 다녀와 어린왕자펜을 선물해 주었고, 펜이 담겨있던 아주 아름다운 종이봉투
3. 날마다 되새기고 싶은 말
바인더는 당시 나의 대표적인 기록 도구였고
그 도구에마저 나는 기록을 했다.
기록의 기록.
날마다 되새기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는데.
INTEREST >>> HOBBY >>>>> ABILITY
KEEP DIGGIN'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파면 취미가 되고,
취미를 더더더 파면 능력이 된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열심히 파자!
그렇게 12년.
책꽂이에 쑥 꽃혀도 잘 보일 수 있도록
바인더 등에 INTEREST >>> HOBBY >>>>> ABILITY 를 써놓은 그 때의 나와 띠동갑이 된,
지금의 나는.
능력까지 도달한 관심은 아무것도 없고
그때나 지금이나 산만할 뿐이다.
정말 나에겐 아무 능력도 없는걸까?
가끔씩 자괴도 하며
계속계속 고민했다.
관심이 너무 얕았나...?
음악이나, 영화나, 문구나...
좋아하는 게 많긴하지만 어느 것도 별로 얕진 않은데...
그럼 내가 생각하는 '능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능력...
.
.
.
영화를 파다보면 영화인, 하다못해 영화평론가?
음악을 파다보면 뮤지션?
.
.
그러려고 좋아한 것도 아니고...
파다보니 뭔가 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지! 하는 결심도 안들던데..
.
.
나는 그저 좋아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다.
남보다 좀 특별한 점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의 역치가 관성을 따라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악을 좋아하며 계속해서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며 계속해서 영화를 좋아한다.
연애 또한 마찬가지.
나와 내 친구들의 좀 특별한 점은
아주아주 오~~~~~~~~~~~~~~~~~~~~~~~~~~랜 연애를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법.
나는 바인더를 들고 다닌 시절 가운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듯 하다.
그것이 바로 나의 능력이었구나!
어느 날 문득
혼자 유레카를 외쳤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기 위해서는
어제 좋아했던 마음보다 오늘 조금 더 좋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오늘 조금 더 좋아할 수 있을까?
그 동기부여에 대한 나만의 노하우.
음악과 영화, 패션이란 장르를 좋아하며 쌓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노하우의 집대성이
바로 건축이 아닐까 싶다.
건축과 나와의 관계.
우리의 설레고 긴 연애.
건축에 관심을 가지면 삶이 아주 풍성해진다.
건축을 취미라 우기며
그 동안 해왔던, 해나가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기록해볼까 한다.
- 1221.ARCHIT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