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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의집 Sep 27. 2018

지금 이 노래를 듣고 있을 00에게

먼저,

저의 편지를 읽기 전.

김동률이 최근 발매한 싱글앨범 <노래>를 bgm으로 틀어주실 수 있을까요?

ㅎㅎㅎ

한곡 반복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끝없이 날이 서 있던
어릴 적 나의 소원은
내 몸에 돋은 가시들 털어내고
뭐든 다 괜찮아지는
어른이 빨리 되는 것
모든 걸 안을 수 있고
혼자도 그럭저럭 괜찮은
그런 나이가 되면
불쑥 짐을 꾸려
세상 끝 어디로 떠나려 했지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간을 떠나보내고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
홀가분해질 줄 알았네

참 한결같으면서도

점점 유일해져

더욱 좋아지는 그의 음악이죠.



김동률 노래를 들으며 울어본 적,

있으세요?



저는 제 인생의 모든 세대에 걸쳐 김동률과 함께 울었던 것 같아요.

지독한 첫사랑에 가슴 아파하던 중학생 시절. 어느 날 밤 라디오에서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나왔어요. 워낙 인기 있는 곡이라 자주 나오기도 했고 이미 CD가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곡인데, 그날따라 어찌나 가슴을 콕콕 찌르던지. 정말 꺼이꺼이 울어버렸어요. 그날 밤의 그 알 수 없는 설움이 아직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오빠 진짜... ㄴ ㅣ ㄱ ㅏ 뭔데? ^^  

또 한 번은... 정말정말 청승맞던 시절인데...; 고등학교 졸업 무렵 친구들과의 헤어짐을 참 어려워했어요. 제가 살던 동네는 대부분 초등학교부터 쭈욱 같이 자라왔거든요. 초중고 동창도 많고 본격적인 헤어짐이 처음인데다 스무살을 맞이하기 직전인 해방감과 두려움 같은 게 이별 속에 정신없게 버무려져 있던 것 같아요. 저는 친구남자들도 꽤 많았는데, 친한친구랑 새벽에 네이트온을 하며 전람회의 '졸업', '우리',  카니발의 '벗' 같은 곡을 같이 들으면서 ㅋㅋㅋ 서로 지금 눈물 주룩주룩 흘리면서 채팅한다고 ㅋㅋㅋ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ㅋㅋㅋ 여자애들이랑은 가끔 노래방가서도 찌질하게 울어댔지만 ㅋㅋㅋ (저런..) 친구남자들과 이런 ㄱ ㅐ 찌질한 대화라니 ^^  당시에도 우리 정말 너무 찌질하다는 얘기를 수없이 했던 (그러면서도 하염없이 울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많이.. 그립네요..  

꽤 최근에는 전람회의 '세상의 문 앞에서'를 한참 반복해서 들었어요. 그 곡에는 신해철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녹아있죠. 신해철이 보고 싶어서 다시 꺼내 들었는데... 우리가 그 사람을 잃었다니... 음악을 들을 때야 실감 나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안타까워 눈물이 나다가도,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는 김동률의 웃음소리가 언제 들어도 찌질해서 ㅋㅋ  웃음이 ㅋㅋ 1곡 재생을 하며 계속 똑같은 지점에서 복받쳐 울다가, 또 똑같은 지점에서 피식- 웃어버리기를 반복했답니다.


뾰족예민뾰족예민했던, 김동률의 표현을 빌려 울퉁불퉁했던 어린 시절의 저는 김동률을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듣기에 김동률 목소리는 드럽게 촌스럽고, 흐흐흐흐 숨 넘어가며 웃는 웃음소리는 어느 학교에나 있는 세상 찌질한 애들을 닮아있다고 여겼거든요. 그럼에도 김동률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전람회, 카니발, 베란다 프로젝트, 그들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꼴라보, ... 결정적으로 라디오 덕분이었죠. 그렇게 평생 김동률을 좋아하며 김동률을 좋아하는 것이 저의 인생에 얼마나 상징적인 선택인지를 되새겼어요. 그 되새김질에는 뭐랄까... 질리지 않는 희열이 있더라구요. 김동률이 새 음악을 꺼낼 때마다. 와... 나 이 사람 안 좋아했으면 어쩔뻔했지? 내 별것도 아닌 기준 때문에 이 사람 무시했으면... 내가 잃을 것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을까? 살면서 자잘하고 큰 많은 선택 가운데 김동률을 떠올립니다. 혹여나 내 얕은 생각이 또 다른 김동률을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ㅎㅎ

암튼 김동률은 저에게, 음악도 음악의 여집합도 완벽히 특별한 존재랍니다.


그래도 되는 나이가
어느덧 훌쩍 지나고
웬만한 일엔 꿈쩍도
않을 수 있게 돼버렸지만
무난한 하루의 끝에
문득 그리워진 뾰족했던 나
그 반짝임이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간을 떠나보내고
그렇게 걷다 보니 이제야
나를 마주 보게 되었네
울어 본 적이 언젠가
분노한 적이 언제였었던가
살아 있다는 느낌에
벅차올랐던 게 언젠가


요즘, '소통' 에 대해 새롭게 많이 생각해보고 있어요.

김동률 얘기하다가 웬 소통? 싶으시죠.

제가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동률님이 신곡으로 살짝 힌트를 줘버렸어요. ㅋㅋ


어떤 고민이었냐면요.


소통을 잘 하냐는 말이 요즘에는 SNS 열심히 하냐, 혹은 댓글이나 좋아요를 잘 하냐는 말이랑 비슷한 의미로 여겨지고 있잖아요. 저는 이 공감대에 작년부터 굉장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어요. 팔로우나 댓글로 인식되는 소통의 이미지가 어렵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지긋지긋하게 싫어서요. 매스꺼울 정도로. 소통은 커뮤니케이션이고, 소통은 정말로 대단히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짓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마 저는 '소통'이란 단어를 아주 소중히 여겨왔는데 요즘은 그게 손상당하는 것 같아서 알레르기가 났나 봐요. 요즘의 이미지라면 저는 완전 불통형 인간인데요 ㅋ 그렇다고 비공개 계정을 쓰진 않아요. 모순적이죠.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과연 모순적인가? 싶어요. 요즘엔 생각을 극단적으로 하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모순'이라고 지정해 버리는 것 같기도 해서요. 소통에 대한 입장은 계정 공개/비공개하듯 스위치하며 하나의 정확한 모양새로 선택할 수 없더라구요. 누구라도!


소통이라는 통통하고 쫄깃한 단어를 납작하고 느슨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제가 만들어내는 소통의 모양. 소통의 색. 소통의 냄새. 소통의 촉감이 요즘의 소통 속에 0.00000000000000000000000001% 라도 들어있어야겠더라고요.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성품과 길러나가고 있는 개성에 또 어떤 노력을 더하면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계속계속 소생할 수 있을까? 우리의 대화가 어떤 한 모습이 아니라 이런 대화도 가능하구나, 어? 이렇게도 통하네? 계속 상상하게 만들도록 돕고 싶은데...



저런.

그게 대체 뭔지! 모르겠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어려운 숙제같았어요 ㅋㅋ



그런데 김동률의 새 '노래'를 들으며,

아.


김동률이 음악하듯

소통하자.



그나마 좋아하던 DJ도

자기생활을 위해 놓아버리더니

요즘 다 하는 예능도 안 하고

SNS도 안 하고

라디오 게스트도 잘 안 나오고

그런데 음악만큼은

기여코 성실한.


아.

김동률이 또 음악으로

나를 울리고

만지고

위로하고

찌질하게 웃듯이


나도 세상의 사람들과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성실하게

힘-있게

대화하자.




제가 불편해하고 있는 요즘의 소통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1. 공개적이고

2. 동시적이며

3. 시각 중심의 대화


공개적이지 않았고, 동시적이지 않았고, 시각 중심은 아니었지만 의미 있고 생동력 있던 우리들의 대화를 기억합니다. 그다지 심각한 주제도 아닌, 헛소리 찍찍하면서 때로 침묵도 대화로 껴주었던, 헤어지면 여운이 많이 남고 울다가도 웃게 만드는... 살고 싶어지는 대화들.


김동률이 음악으로 대화하듯

그게 나의 무언가일지

아직 뚜렷하게는 모르겠지만,

당신과 나에게 살고 싶어지는 대화가 되도록.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그의 노래처럼.

"공존을 위한 대화" 라는 내 좌우명에 먼지 쌓이지 않도록.

누구보다 대화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다

결국 한걸음 더 완성해가며 살아야겠어요.



울어 본 적이 언젠가
분노한 적이 언젠가
살아 있다는 느낌 가득히
벅차올랐던 게 언젠가
내 안의 움찔거리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적어도
더 이상 삼키지 않고
악을 쓰듯 노랠 부른다


더 이상.

삼키지 않고.

악을 쓰듯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또 만나요.


- 2018년 9월이 끝날 무렵. ynto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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