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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의집 Oct 18. 2018

중요한 일기

3편. 의외를 경험할 시간

첫 회사  첫 동기  첫 사수  첫 4대보험


학생과 사회인으로의 교차점에서 겪은

수많은 처음들.

감사하게도 나는 첫 회사에 대한 기억이

아주 쉽다.

.

.

좋았지!

복잡할 것 하나 없는, 2년반의 시간.


지금 카카오가 된 ‘아이위랩’ 이란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IT 생태계로 뿌리를 내려봐야겠군! 마음먹었다. 어쩐지 본격적인 시작은 좀 더 규모가 있고 체계적인 회사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더 ‘의외’였기 때문이다.

내가 스타트업에 가거나 내 사업을 한다면 오히려 ‘아~ 그럴 줄 알았어’ 일텐데, 대기업에 가거나 공채 같은 것을 한다면 ‘음? 네가?’ 하게 되는...

당시 나는 어떤 것은 도드라지고 또 어떤 것은 좀 부족한 상태였다.


나란 사람의 작용과 반작용

관성을 거슬러야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란 사람이 어느 한 쪽으로 단단하게 굳어지기 전에 이런 경험, 저런 경험 물렁물렁하게 만들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마침내 할 때 아주 뾰족하게 할 수 있도록.


2010년 가을.

IT 업계에서 나름 이름있는 회사들의 공채를 지원했다. 그렇게 세상자신만만했던 나도 반복되는 자소서 앞에 꽤 의기소침해졌는데, 엄청 밀도 높게 살았는데 어쩜 그렇게 한 게 없는지?! 한참 비어있는 칸들이 내마음도 뻥뻥 뚫었다.

네이버와 게임회사들의 활약으로 점점 더 많은 대학생들이 IT회사에 관심을 가졌다. 여전히 삼성이나 LG 문앞에 수많은 청춘들이 바글바글했지만 네이버, 다음, NC소프트, 넥슨 같은 회사들도 넘쳐나는 지원자를 감당하지 못해 1차, 2차, 인적성, 점점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2010년 가을 공채시즌이 지나면

공채로 사회생활을 시작해보겠다는 원래 내 계획을 수정하고 우선 ‘아무데나’ 지원할 생각이었다. 돈도 경험도 사정이 급했기 때문에 3개월정도의 마지막 학기를 시한부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IT 큰회사들에 전부 지원하진 않았다. 여기는 회사이미지가 싫어서 안 넣고, 게임은 안하니까 안 넣고, 지원자격에 써 놓은 말들이 아무래도 불편해 안 넣고.. 요리죠리 빼다보니 10개 정도였을까.


자소서의 단답형은 빈칸투성이라 자신없었지만 주관식, 특히 지원동기 만큼은 혼신의 마음으로 썼다.


떨어지고

면접을 가고

떨어지고

인적성 검사를 가고

경쟁률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적중률이었지만 그래도 불합격 불합격... 한숨이 늘어갔다. 12월이 넘어가자 이제 들을 소식도 거의 남지 않은 채, 딱 하나. 네오위즈 공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야 대표님 면접을 보면 꽤 확률이 높은 것이란 경험치라도 있지만 그땐 1차 면접이나 2차 면접이나 아무것도 가늠이 되지 않아 마냥 불안했다.


12월 21일. 내 생일도 다가오고

그럼 연말도 곧.

스스로 약속했던 3개월이란 시간도 거의 다 채워가고 공채는 이렇게 시즌오프. 마지막 하나 남은 네오위즈마저 안되면 이제 학생도 아닌 무직의 신분으로 시장에 나갈 참이었다. (아닌 척 했지만 두려웠다)


분당선을 타고 있었다.

네오위즈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윽!

읍!

큭!


숨이 막힐 것 같은 기쁨이었다.

대학은 원하는대로 못갔고, 고등학교는 성취라고 하기에 아주 안전한 시도를 해 그다지 놀랍지 않은 합격이었고, 대학이나 중고등학교 때 가끔 1등 2등 할때가 있었지만 이만큼의 행복은 아니었다. 1등보다 끝났다는 것이 더 기쁨일만큼 그저 진절머리가 났었으니까. 초등학교 때 아주 큰 동요대회에서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땐 어리기도 하고 지금보다 훨씬 의젓?해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 인생의 첫 성취랄까... ㅠ

처음 겪는 기분에

도대체 어찌할 바를 몰라

어느 역인지 모르겠지만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일단 그곳에서 나와 통화를 이어갔다.


IT 공채 마지막 발표

네오위즈의 한 자리는 내 것이 되었다.


합격!!!!!!!!! 하고 싶었다.

삼수생의 트라우마일까

이 말이 무척이나 듣고싶었던 것 같다.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음악을 재료로 인터넷에서 요리해 보는 일! 억지라고는 조금도 없이 순도높게 이 일이 하고 싶었다. 음악이라니! 음악서비스라니! (벅스 앱을 만들었다)


조직을 경험하고 싶었다.

제법 자유롭게 살아온 나, 어떤 틀과 체계 속에 있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싫고 어려웠다. 그럼 그 속으로 가자! 나와 반대에 있는 경험으로 나를 더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대학생활 내내 실컷 놀고 즐기며 ‘함께’ 하는 것의 의미를 몸소 깨닫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큰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같이 놀던 한량오빠들의 조언도 한 몫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조언, “GQ에서 시작하면 나중에 ㅇㅇ(작은 매거진)도 할 수 있는데, ㅇㅇ에서 시작해서 GQ를 가려면... 힘들어”

이 말을 대기업 다니는 언니오빠가 했다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막) 노느라 바쁜 사람들이 굉장히 전략적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나에게는 조직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 판단.

두고두고 내 인생의 한 수 였다고 자주 곱씹는다.



이십대 중반은

의외의 길을 걸어가보라고 하고싶다.

결국 그것을 토해내든 소화하든 내가 어떻게 의외를 받아들이는지 실전을 경험하며 나를 더 깊이 단련하는 더없는 기회의 나이니까!


나에게서 저어어멀리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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