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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gon Nov 27. 2020

내가 반한 오스트리아의 금수저 남

고은 씨랑 잘해봐라 밀어줄게

"고은 씨! 애인 없죠?"

"네. 왜요?"

"우리 스테프 중에 오스트리아에서 온 알프레도라는 남자가 있는데 한 번 잘해봐요! 집안이 꽤 좋은가 봐요. 아버지께서 호텔업에 종사하시는데 자기가 이어받을 거라면서 우리 호스텔로 일 배우러 온 친구예요. 사람 참 괜찮아. 남자가 봐도 정말 잘생기고 참 괜찮은 친구 같아요."


알프레도가 누구지?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호스텔에서 묵는 연령대는 거의 20-30대의 싱글들인지라 누굴 말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얼굴에 볼터치라도 한번 더 하고 향수라도 한 번 더 뿌리게 됐다. 


어느 날, 내가 묵던 2층 방에서 계단을 내려오다 눈부신 환한 빛을 보았다. 빛의 근원지는 계단 아래 테라스였다. 그곳에는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유럽계 남성이 맥북을 무릎 위에 올리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알프레도?!'


성자의 이름 같은 그의 이름이 머릿속에 두둥실 떠올랐다. 구불거리는 갈색의 머릿결과 살짝 찌푸린 신경질적인 미간의 주름이 눈길을 사로잡아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곱게 자란 남성의 모습이 보인다....'


알프레도를 본 단 5초 만에 난 어떤 명확한 그림이 그려졌다. 알프레도의 지금 까지 인생에 대한 그림. 크리스마스가 되면 4 가족이 함께 모직 코트를 입고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보러 국립극장엘 가는 모습을, 땡스기빙 데이 때 온 가족이 크고 기다란 상에 초를 켜 놓고 둘러앉아 칠면조 고기를 나눠 먹으며 덕담을 나누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하이!"


내 눈빛이 너무 강렬했던 걸까? 태평양의 뜨거움도 이겼는지 그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올려다보며 '하이' 라며 인사를 하였다. 세상에! 가지런한 하얀 이와 태양 빛이 마주쳐 눈부신 반짝임을 선사하여 눈이 부시다 못해 시렸다.

'다다다닥' 계단을 내려가 알프레도에게 다가갔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그는 정령 '미남형 호남형 귀공자형'이었다! 하나만 같기도 벅찬 매력을 다 가진 욕심쟁이 알프레도. 그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심장은 주책맞게 나대고 있었다. 내 육신은 이미 서른이 넘었으며 엄청난 발육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일본 순정만화 속 밝고 명랑한 야리야리한 10대 소녀가 된 것 같았다. 


"안녕. 네가 호스텔 사장님이 말한 알프레도인가 봐?"

"응."

"난 호스텔 사장님 친한 동생 한국에서 온 난다라고 해. 낸다 아니고 난다."

"아 그렇구나. 한국에서 왔다고? 그럼 너 혹시 소궁대학교 아니? 나 거기 교환학생으로 가려고 했는데?"

"소궁대학교?"

"응. 좋은 대학교라고 들었어."

"서울대학교?"

"음... 여기!"


그가 그의 랩탑을 나에게 보여줬다. 나와 그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졌다. 


'이대로 고개를 돌리면 입술이 닿겠네...'


혼자 주책맞은 상상을 하다 정신을 차려 화면을 보니 '서강대학교'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 서강대학교! 여기 좋은 학교야."


난 조금이라도 더 말을 섞고 싶어서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서강대학교'에 대한 온갖 정보들을 다 늘어놓았다.


알프레도는 정령 잘생긴 유럽 남자였다. 왜 유럽에는 길거리 노숙자들도 다 모델 같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알프레도는 잘생기면서도 기풍 있고 신사적으로 보였다.


사실 그토록 고대하던 하와이에 입성한 지 며칠 지나자 설렘 지수가 살짝궁 떨어져 가고 있었다.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환상이 생겨 버렸던 거 같고 그 환상은 현실을 살아보니 어느 정도 깨지게 됐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알프레도의 존재는 사그라드는 나의 설렘 지수에 불을 지펴주었다. 

알프레도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 난 방 안에서 해도 되는 숙제를 괜히 공용 부엌에서 하면서 알프레도의 시선을 끌고자 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호감 표시의 최고치였다. 사실 개그우먼이 주는 이미지는 워낙 강해서 호감 있는 남성 앞에서라면 엎어지고 자빠지고 해서라도 시선을 끌 거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하기사 방송에서 보이는 개그우먼들은 얼굴 반반한 싱글 남성 앞에서 하이에나 마냥 들이대며 육탄전을 벌이기도 하고, 부끄러워하는 남성을 도끼로 100번도 넘게 찍는 이미지가 다반사라서 그렇게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런 방송에서의 모습은 철저히 니즈가 낳은 캐릭터라고 말하고 싶다. 실상은 나처럼 그렇지 못한 부끄러움이 상당한 개그우먼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런 내 성격으로 부엌에 나가 알프레도 눈에 들기 위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펼쳐놓고 세월아 내 월아 알프레도만을 기다리는 행위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난다! 뭐해?"

"응. 숙제."


알프레도였다. 그가 걸려들었다. 하늘이 나의 노력이 가상하여 도와주셨나 보다! 


"숙제. 답답해서 나왔어."

"이따가 루프탑에서 피자 파티하는데 같이 가자! 찡끗!"


알프레도와 대화를 하다 보면 너무 부끄러워졌는데 그 이유는 신호도 없이 조개 마냥 혀를 살짝 내밀면서 윙크를 하는 끼 부림 때문이다. 


"아. 같이?"

"그래! 혼자 숙제하지 말고 같이 가자! 가자!"


야호! 드디어 데이트 신청을 받는구나~! 


"아. 그.. 그래..."

"그럼 30분 후에 호스텔 입구에서 만나서 같이 올라가자! 찡끗!"


심장이 나댔다. 한 손으로는 나대는 심장을 붙들고, 한 손으로는 내가 마실 맥주를 붙들고 30분 후가 아닌! 20분 후에 호스텔 입구로 갔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알프레가 나타났다. 알프레도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는데 뒤를 보니 다른 여자도 같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여자도... 또 다른 여자도...


"난다! 올라가자!"


나랑 단 둘이 가는 파티인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웠다. 알프레도는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마냥 거리에서 만난 여성들 모조리 데리고 와서 함께 파티에 가자고 초대한 것이다. 심지어 입구에서 만난 다른 여자까지도 같이 가자고 하였다.


기분이 꿀꿀해진 나는 혼자 해먹에 누워서 '에라이 모르겠다' 싶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흔들'

루프탑 파티 (알프레도 아님)


알프레도가 그 해먹엘 들어오려고 발을 하나 밀어 넣었다.


"아이코!"

고꾸라지려고 하자 이번엔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하여 다시 시도를 하였다.


"난다! 여기서 혼자 뭐해? 찡끗!"

"아... 즐기고 있어!"

"노래 들어? 무슨 노래야? 찡끗!"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고 있던 내 옆에 와 이어폰을 뺏어 들으려고 시도를 하였다. 그날 밤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하던 알프레도의 모습이 부담스럽다 못해 거북하기까지 하였다. 그저 지적이고 신사적인 남성인 줄 알았던 그의 모습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내가 상상한 오늘의 데이트는 루프탑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단 둘이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이었는데... 내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도 알프레도를 향한 나의 안경은 쉽게 벗겨지지 않았던 거 같다. 


어느 날 밤 알프레도가 밤샘 근무조로 안내데스크를 지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날따라 잠이 오질 않았다. 어쩌면 알프레도와 밤새도록 단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란 한 오라기의 실낱같은 희망이 떠올랐다.


안내데스크에서 열심히 근무 중인 '잘생긴' 귀티 나는 알프레도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

"늦게까지 안 자고 있었네?"

"어... 그냥 자 잠이 안 와서 나봤어."

"그래? 찡끗!"


또 저놈에 찡긋. 싫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조금 부담스러웠다. 영어가 서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주변만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대화의 주제를 찾고 있었다. 그때였다!


"하이! 알프레도!"

술에 잔뜩 취한 한 여성이 친구 손에 이끌려 데스크 앞에 섰다.


'와오!'


그녀는... 늘씬한 키에 쭉빵의 몸매를 가진 여성이었는데 그런 자신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 '야시시' 하면서 '육감적'인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여자인 내가 봐도 반할만한 건강미 넘치는 섹시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여기!"


그녀는 알프레도에게 야간 근무하면서 먹으라고 햄버거를 사들고 온 것이다.


"너 내일 일해?"

"글쎄..."

"내일 나랑 데이트해!"


통보를 하였다! 


"그.. 그래..."


놀란 듯 알프레도가 대답했다. 마치 어른들일에 낀 애가 된 마냥 난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저것이 바로 외국식 방식인가 봐. 외국에선 여성들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하는가 보다.'


내가 알프레도였어도 저런 매력적인 여성이 '내일 네가 할 일은 나와 데이트하는 것이야!'라고 한다면 거절하기 힘들 것 같았다. 이 나는 절대로 낄 수 없는 '그들만의 리드'에서 난 그만 빠져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자 알프레도에 대한 마음은 조금씩 식어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벗겨진 내 안경이 알프레도 옆에는 항상 새로운 여성들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다가오고 있는 사실을 직면하였다. 또한 알프레도는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언제나 조개처럼 혀를 날름 내밀면서 윙크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엔 안경을 낀 갈색 머리 체구가 작은 여성을 숙소에 잠시 데리고 오기도 하였고, 어느 날은 번화가에서 일본계 여성과 다정하게 발을 맞추며 걷기도 하였다.


"고은 씨! 이번에 진짜 요정 같은 투숙객이 왔어요. 북유럽 여성인데, 제가 보통 여자 예쁘다고 안 하는데요 이 손님은 진짜 요정 같아요!"


도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그녀가 떠나기 전에 그녀 얼굴 한 번만 보고 싶었다!


어느 날, 호스텔 데스크를 향해 가는 길 목에서부터 냄새가 났다. 남성들의 냄새.


숲의 정령처럼 생긴 여성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늘씬한 몸매에 피부도 투명했다. 


"하이!"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였다. 그녀의 눈은 오팔색과 같았다. 


'시팔. 너무 예뻐.'


너무 초현실적으로 예쁜 그녀를 보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너 모델이니?"

"훗. 아니."


엄청 도도하고 시크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녀는 특유의 억양으로 영어를 하였는데 그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다. 주변엔 그날 그 시간 따라 많은 남정네들이 모여있었다. 괜스레 365일 1층 벽에 붙어있던 하와이 소개 글도 찬찬히 읽어보며 그녀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던 모양이다.

안내 데스트 앞 (내용과 상관없음 ^_^)

역시 호스텔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 들리고 있었다. 


잠을 잘 준비를 하기 위해서 호스텔 화장실에서 나오자 부엌에 알프레도가 있었다. 


"하이! 찡긋."


이제는 저 찡긋도 징그럽게 느껴졌다. 


"어디가?"


큰 배낭 안에 이것저것을 챙겨 넣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 정도가 되었다. 


"응. 다녀올게!"


밤늦은 시간에 어딜 가는데 배낭에 먹을 것을 챙겨 가는 건지 싶었다.


난 다음날 새벽에 호스텔 일을 돕고자 일찍 일어나 1층 데스크로 향했다. 오전 5시쯤 됐을까? 알프레도와 북유럽의 미모의 투숙객이 함께 지친 기색으로 호스텔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비밀 산책길을 다녀왔어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여성이 먼저 호스텔 사장 오빠에게 이야기했다. 그 뒤에서 알프레도 노는 약간은 멋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뒤에 서 있었다. 알프레도는 알고 보니 모두를 사랑하는 다사랑 공동체 회장님이었다. 알프레도를 보면 늘 '우와' 싶던 나도 어느새 알프레도를 볼 때마다 '쯧쯧' '에휴' 싶었다.


어느 날 나와 노아, 그리고 나와 함께 방을 쓰던 나타샤 셋이서 노아의 차를 타고 장을 보고는 부엌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잠깐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오려고 하던 노아는 자신의 방 문이 잠겨있는 것을 알게 됐다. 무슨 일인지 늘 열려있던 방문이 닫혀있는 걸로 모잘라 잠기기까지 하여있는 걸 본 노아는 당황한 듯 보였다.


"이런, 문고리에 양말이 씌워져 있잖아?"


노아는 문고리에서 양말을 찾았다. 노아는 한 숨을 푹 쉰 후 방문을 세게 두들겼다.


"얼른 문 열어!"


나타샤는 그 광경을 슬쩍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잠시 후 알프레도가 멋쩍은 듯 밖으로 나왔고, 그 뒤를 이어 남미 쪽 여성 투숙객이 수줍게 따라 나와 번개처럼 자기 방으로 후다닥 가버렸다.


"알프레도! 여기는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이야! 예의를 지켜줘!"

얼굴이 벌게진 노아였다. 난 알프레도를 나의 상상 속 방에서 놓아주기로 하였다. 연애의 방식 및 사랑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알프레도의 연애 방식은 정말 별로였다. 너무 가벼워 보였다고나 할까? 얼핏 알프레도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온 친구가 알프레도는 오스트리아에 여자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내가 맘대로 알프레도에 대하여 환상의 역할을 지워준 것이니 그 실망은 맘대로 지어낸 환상에 대한 대가였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우리 호스텔에서 묵는 투숙객들과 스테프 몇 명은 늦은 밤 와이키키 바닷가에 둥글게 둘러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노래를 감상하였다. 물론 그 안에는 알프레도도 있었다. 


"어! 너는 스칼렛 요한슨 닮았어!"

내가 함께 앉아있던 어떤 여성을 향해 말하자 모두들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너는 잭 블랙!"

"하하하! 맞아 맞아!"

분위기가 한껏 올랐다. 


"나는 어때? 찡끗"

내 옆에 앉아있던 알프레도가 물었다. 난 알프레도를 유심히 쳐다보고는 말했다.


"유 룩 라이크 오트밀!"

"오트밀?"

"예쓰! 오트밀!!!"

"푸훕- 우하하하하! 오트밀!!!!"


태어나서 처음 당하는 대접에 어이없어하는 알프레도와 달리 옆에 앉은 알프레도의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통쾌했다. 나 역시 이룰 수 없던 나의 사랑과 혼자 받은 상처에 대해 지질한 복수를 하여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유치하였다. 와이키키는 언제나 생기 넘치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비포 선 라이즈'라는 영화 속 주인공을 꿈꾸는 청춘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다른 생각과 삶의 방식으로 순간을 즐기고자 모인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와이키키에 모여 각자의 서랍 속에 기억될 추억들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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