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다소 우울했다. 처리되지 않는 일들과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그런 고민을 할 시기인가 등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도 있지만, 아마도 삼성에 대한 수많은 비판 기사와 염세적 전망의 영향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에게 삼성이라는 이름은 동료의 얼굴이었지, 경영자나 거대기업으로써의 이미지는 아니기 때문이기도 한데, 더욱이 삼성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분들은 상당한 우울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성향상, 그리고 시대적 한계에 의해서 삼성을 그룹총수와 일치해서 생각하는 이들도, 자신이 삼성인 줄 오인했었던 수많은 선후배들도, 삼성 내에서 유리함을 획득하고자 했던 이들도, 삼성의 수많은 협력사로써 이해관계가 이어진 사람들도 정말 사회의 모세혈관처럼 펼쳐져 있는 삼성이라는 이름이다.
아마도 이번주(10월 24일)에 나올 SK하이닉스의 실적으로 더욱 삼성에 대한 비판적 논조와 반복되는 다양한 말들은 더욱더 난무할 것이다. 삼성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던 언론사들도 이제는 칼날을 겨누고 있거나, 짤막한 단신들로써 자신의 광고 수입에 위배되지 않을 일들을 하시겠다. 수많은 경제전문가들은 X만 전자를 운운하면서 주가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특히 요즘 기술을 모르는 재무통이 득세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업지원 T/F라는 미전실을 모방한 조직에 대한 실랄한 비판도 있다. 뭐 그런데, 그러지 않은 시기가 있었나 싶다. 갑자기 엔지니어 출신의 CEO가 없다느니, 이런 이야기는 10년간 삼성의 연구소 기술자이자, 인사담당자였던 내부자이자, 10년간 반도체 업계에서 먹고살고 있는 나로서는 사뭇 이상적이면서도 시기에 부합한 말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건희는 무엇이지? 신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반도체 1등을 만들었던 것이 과연 그의 덕택인가? 기술을 벼렸던 수많은 전자의 CEO는 무엇이지? 그때는 더욱 드러내놓고 강렬한 구조본과 미전실이 있었는데 말이다.
교수님들께서는 현장도 모르시면서, 큰 틀에서 전해오거나 뜬소문으로 들은 무엇을 대충 얼버무리신다. 양자컴퓨터를 부르짖는 분이 있지 않나, 의대생 운운하며 똑똑한 인재들이 없다면서 대학에서 만든 반도체과가 다시금 각자의 기계, 화공, 전자과 전공교수들을 그저 섞어놓은 것에 불과함을 간과하고 있다. 동경대를 벤치마킹해서 서울공대를 셋업 할 때 소위 이론과 실용에서 실용을 제거했던 그 방식은 여전히 학교에 거대하게 남아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인구 절반에 불과하고, 취업 1순위는 미디어텍인 대만의 TSMC가 이토록 성공한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다들 상당히 의미가 있지만, 대부분 큰 틀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삼성을 동료의 얼굴로 보는 입장에서, 다소간의 다른 질문을 하고 싶다. "현재 삼성을 바라보는 불안은 우울이 될까, 역동이 될까라는 질문이다." 우울은 인텔과 보잉의 길을 걷는 방식일 것이고, 역동은 불안을 뚫고 나왔던 IBM이나 TSMC의 방식일 것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우울과 역동을 가르는 힘은 '애도가능성'에 달려있다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주디스 버틀러가 말했다.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울과 역동이 생겨난 '억압'을 제거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있더라도, '애도 가능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먼저 억압으로써, 삼성은 그간 임직원을 '두려움'으로 관리했었다. 그 두려움은 자발적이자 타율적이었다. 자발적인 것은 '삼성'이 최고의 회사이기 때문에 이곳을 나가봤자 별것 없다면서, 여기서 뼈를 묻는다거나 소위 '대감집 머슴' 서사로써 작동했었다. 조직은 정글이지만, 나가면 지옥이라는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겠다. 바깥에 대한 두려움은 삼성에 속할 강한 자발성이다. 타율적인 것은 삼성은 보안의 문제, 혹은 직원 관리에서 KS(관심), MJ(문제) 등을 동원하면서 사외, 사내적으로 직원들을 어린아이들처럼 대했다. 혹은 업계에서는 전혀 비밀도 아닌 사항에 대해서 임직원들조차 '보안'이라며 입을 닫는다. 처벌이 두렵기도 하며, 무엇인가 '갑'의 위치를 놓고 싶지 않다는 착각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을 관리했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사내 경찰 역할을 해왔다. 비등한 예로, 몇 년간 사내에서 '삼성인 이러지 맙시다'라며 인사상 처벌 사례를 안내했던 촌극과 동시에 동탄 전세사기가 벌어졌을 때 회사에서 책임져주지 않느냐고 임직원들이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사례들이 생각난다.
이러한 두려움으로 인한 관리는 삼성만 한 회사가 규모면에서나 문화면에서나 등장하면서 불가능하게 된다. SK하이닉스의 등장이 그 사례이며, 대기업 자체를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이 갖는 선입견도 그렇고, 글로벌 회사가 되면서 글로벌과 차이 나는 것도 고려하게 되었다. 게다가 삼성이 일조한 IT 기술의 발달은 타율적 인사관리의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아무리 직원을 탈법적으로 강화하거나 제지하려 해도, 이제는 게시판에 올리면 그만이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삼성인데'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인사담당자들의 부족한 생각은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며 삼성 바깥으로의 이탈과 숙련자들의 낙담을 가속화해 왔다.
억압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어떻게 우울이 역동으로 바뀔 수 있을까? 결국 '애도가능성'에 달려있다. 이는 철학적으로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음에 대한 마음이 예술과 문화의 근본이라는 것에서 시작한다. 모든 직장인은 회사를 떠난다, 그들 하나하나가 교환 가능하지 않으며 개별성을 존중했을 때 그 한시적 기한에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한다. 인간은 먹고사니즘도 있지만, 자신과 또 무엇을 위해서 뛴다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있을 동안 자신의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과연 회사는 배려해 왔는가? 경영지원이라는 지원과 행정의 역할로써 관리를 하지 않았었나?
이는 동시에 직무와 기술에 있어서 '평등'을 동반해야 한다. 그간 반도체 산업이 설계와 공정 위주일 때가 있었다. 말하자면, 연구개발의 '마진(Margin, 여유)'이 있을 때이다. 이제는 실리콘 원자 한 두 개의 편차로써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설계, 공정, 설비, 소재를 아우르는 모든 기술의 중요성을 포괄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으로써 반도체 제품에 열중했던 국내 대기업이, 자국 내로 해외의 생산체계를 국산화하면서 기술력을 내재화했던 방식이었지만,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 분야는 결국에 글로벌 협력을 할 수밖에 없다. ASML, AMAT, LAM 등은 결코 삼성의 말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간 간과했던 패키지 공정을 끝까지 존중했던 하이닉스가 현재의 이익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아닌가? 설비 유지보수 기술이 2030년에 무인화를 하겠다며 정말 인텔의 길로 가려고 했던 경영 전략은 수정되어야 한다. 임원이 될 부서와 되지 않을 부서가 극명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연구개발과 생산의 기여에 대한 임직원의 시선에서 이해가능한 배려가 마진이 없는 현재, 그나마 가능한 방식이다. 사내에서 기술 분야에서 평등과, 사내 외의 갑을이 없는 수평적 자세가 요구된다. 삼성의 서비스 마인드가 없음도, 과연 내부사람들은 보고에 열중해 왔는가, 고객 만족을 하는 것에 가중치를 부여해 왔는가에 수렴된다.
비명문대 출신들의 임원비율이 가장 높았던 삼성이 어느 틈에 '학벌'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똑똑하신 분들의 실력은 알겠지만, 천재가 득실거리면, 뾰족하기만 하다. 천재는 있겠지만, 결국에 반도체 현장을 끈덕지게 만드는 이들은 숙련된 개발자, 생산자, 노동자들이다. 반도체의 품질은 작은 나사하나에, 조그마한 정전기의 순간에 벌어진다. 애도가능성을 침해하는 다시금 억압이 몰려든다. 삼성이 위기라서 40대 이상의 인원들을 희망퇴직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가 사실무근이라며 지워졌다. 내부자들은 알고 있다. 간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이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권오현의 시대 그렇게 잘 나갔던 회사가 갑자기 왜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는가? 임원이 아니더라도 그 분야에 실력자들이 이곳저곳 숨겨져 있거나 숨으려 한다. 그 성공의 시대는 지금 과장이상의 사람들의 피땀눈물이 아니었는가? 왜 장기고용과 조금 높은 급여가 퇴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리더가 되지 않은 이들을 '뒷방늙은이' 취급하면서 그들의 사려 깊은 노하우는 왜 흡수하지 않으려 하는가? 그러려면, 반도체 산업 내 임금체계부터 조정해서 이직가능한 어떠한 회사와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지 않는가? 이들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쓸까 싶지만, 이 이야기가 이후에 경영학의 Cast Study로 어떻게 활용될까, 먼 미래에 그때를 조망하는 내용을 쓰고 싶지는 않다. 산업인류학자로써 미시적인 내용을 바라보며, 조금씩 추적해보고자 한다. 단순히 삼성이 망해야 한다는 주장은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자가 아니라 삼성에 속한 이름 없는 얼굴들을 봤을 때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의 불안이 작은 것에부터 시작해 큰 틀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길 빌며, 애도할 수 있는 이들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그간의 불가피한 정신승리를 없애고, 임직원, 산업계를 선순환할 수 있는 시간으로 기록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