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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뱅커 Jun 04. 2024

영화 <디태치먼트>

마흔에 읽는 디태치먼트와 쇼펜하우어

고슴도치 딜레마와 디태치먼트

“인간은 고슴도치와 같다. 너무 가까이하면 가시에 찔리고 너무 멀리하면 추워진다.”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슴도치 딜레마’이다. 이 영화 <디태치먼트>(토니 케이, 2014)가 끝나고  떠오르는 인물은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알베르 까뮈’ 도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드거 앨런 포’ 같은 작가가 아닌 ‘쇼펜하우어’다.

같은 의미에서 이 영화와 쇼펜하우어 사이에는 몇 가지 철학적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영화를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인간 존재 본질적 고통과 무의미함, 그리고 그 속에서 찾으려는 삶의 의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와 인간의 고통

헨리(에드리안 브로디)는 개인적인 트리우마와 교육 현장의 무력함으로 스스로 임시 교사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의 시선을 통해 사회적 무관심과 인간의 고통, 교육 제도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쇼펜하우어는 삶의 본질을 고통으로 보았다. 인간은 끊임없는 욕망과 의지 속에서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헨리의 삶 역시 이러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헨리의 개인적인 비극, 특히 어머니의 자살과 그 이유가 할아버지와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이유는 그가 느끼는 고통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이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삶은 고통이다'라는 명제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고통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모든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고통은 인간의 본질적인 조건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예술의 미적 관조'와 ‘타인에 대한 연민'을 제시했다. 영화에서 헨리는 고전문학과 글쓰기라는 예술적 활동을 통해 학생들 삶에 변화를 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암담했던 교실은 점차 변화하게 된다. 특히, 사진이라는 예술로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왕따 소녀 메레디스(베티 케이, 이 영화의 감독 ‘토니 케이’의 친딸이다)와 거리의 소녀 에리카(사미 게일)를 만나 연민을 느낀다. 헨리는 메레디스의 사진 속 세계관을 이해하고, 에리카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그의 연민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세상 모든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낌으로 이기심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것’과 일치하며, 고통 속에서도 인간 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동정심이야말로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비이기적 특성이며,
이기주의적 개인이 타자를 도우려
하는 것은 기적 같은 일로
찬사를 받아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는 틀렸다

헨리는 타인에 대한 연민을 통한 구원 과정에서 일종의 '지적 무관심'을 채택한다. 이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약간의 무관심과 냉정함을 통한 적당한 거리'와 일치한다. 헨리의 이러한 태도는 그가 마주한 절망적 현실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어느 하나에도 깊이를 느끼지 못했고, 스스로 격리되어 존재하는 느낌이다.(알베르 까뮈) 그 고립감은 학생들, 동료 교사들, 가정 내 소외감을 통해 더욱 부각된다. 이 영화는 개인들이 어떻게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감정적으로 단절되어 살아가는지를 깊이 있게 묘사한다.

이처럼 도입부에 언급한 고슴도치 우화에는 오류가 있다. 실제 고슴도치는 상대가 찔리지 않도록 가시를 눕힌다고 한다. 다른 고슴도치가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할 줄 알며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가시가 없는 머리를 맞대어 추위를 이겨 낸다고 한다.(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저, 178p)

결국 쇼펜하우어의 주장과 헨리는. 학교는. 우리는 실패했다. 그 적당한 무관심이 메레디스에게는 붉은색 의자로, 엄마에게는 붉은색 카세트테이프로, 학교에게는 붉은색 사물함으로, 에리카에게는 붉은색 벽으로 위험과 경고를 알린다.

무관심의 붉은색 벽을 넘어서

헨리는 자신의 고통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메레디스와 에리카와의 관계에서도 완전한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인간 존재의 비극과 그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디태치먼트는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인간의 고통과 무관심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헨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적 세계관을 경험하고, 인간 존재 본질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지루하고 어둡고 조용한 그해 가을. 구름이 천국에서 우울하고 낮게 흐를 때 말을 타고 기묘하게 두려운 시골길을 지났다. 우울한 어셔 가의 저택을 보며 저녁 이슬의 그림자 같은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저택을 보자 우울함이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곳의 피 흘리는 벽과 단순한 풍경을 보았다. 나의 우울한 영혼과 썩어버린 나무를 보았다.
그것은 구역질 나는 마음의 냉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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