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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뱅커 Jun 14. 2024

영화 <로봇드림>

Do You Remember?

외로워서 죽을 것 같았다. 그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들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때를 시체시절이라고 기록한다. 매일 술에 취해 멍하니 걷다가 목구멍에서 뜨거운 고통이 올라오는 날의 연속이었다. 서럽고, 외로웠다. 겨우 숨이라도 쉬려면, 살아있는 생명체의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다. 그 시절 나는 우리 ‘깜비’를 만났다. 여기서 깜비는 사랑스러운 반려견의 이름이다. 깜비는 윤기 흐르는 검은 털과 앞가슴과 다리 아랫부분, 볼과 눈 부분은 갈색 털 포인트를 가진 작은 체구의 미니핀 견종이다. 사랑스러운 외모와는 다르게 꽤 까칠한 성격의 여자 아이다. 반려동물은 주인 성격을 닮는다고 하더니, 완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깜비와 나는 어차피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나는 매일 술취해 집 근처 애견샵 쇼윈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리고 한참을 서서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구경하는 게 하나의 진통제였다. 어느 날 (나와 닮은) 잉글리시 불독 한 녀석이 눈에 띄었는데, 녀석에게 ‘뚱스’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나는 매일 저녁 뚱스를 보러 애견샵에 갔다. 한 번은 가게주인이 들어와서 보라고 하길래, 별생각 없이 뚱스를 안아 보기도 먹이를 줘보기 했던 게 하루일과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 녀석을 매일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고민하다 뚱스를 가족으로 맞을 결심을 하고 샵에 갔지만, 뚱스는 이미 다른 외로운 누군가의 단짝이 되고 난 뒤였다. 상심하는 나에게 주인은 다른 녀석들은 보여줬지만 눈에 들어 올리 없다. 나는 반려견이 좋은 게 아니라 뚱스가 좋았단 말이다. 그 통통하고 우락부락한 외모에 느릿느릿한 동작이 딱 나를 보는 거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유독 큰 검은색 치와와 녀석이 나에게 와서 안기더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우리 인간은 참 이상하다. 살아있는 대상은 어떤 종이든 이름을 붙이려는 무의식이 있나 보다. 나는 녀석에게도 ‘깜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또 밤새 녀석 생각을 하다 결심한다. 다음날 다시 샵에 갔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 인지, 깜스도 그 짧은 하루를 참지 못하고 다른 집으로 간 것이다. 나와 강아지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싶어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제일 구석에서 슬프게 창밖을 보고 있는 깜비를 봤다. 녀석의 눈이 너무 슬퍼 보여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그렇게 이 슬픈 눈을 가진 녀석이 내 인생에 들어온 것이다. 깜비라는 이름은 까매서 ‘깜’과 슬플 ‘비(悲)’라는 의미다. 나의 서러운 외로움과 세상에 나오자 말자 어미와 이별한 깜비의 슬픔이 이 관계의 연료가 되었다. 아마도 나는 뚱스도, 깜스도 아닌 깜비를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영화 속 도그(개를 의인화한 주인공 캐릭터)와 로봇(반려견을 로봇화)을 보고 그때 나와 깜비를 연관시킨다면 무리일까? 다행히 나는 그들처럼 깜비와 헤어진 적은 없지만, 그들의 이별에 대한 상실과 관계의 깊이는 느껴진다. 그리고 이상하게 코 끝이 시큰하고, 마음이 찡해졌다. 사실 영화는 사람과 반려동물과의 관계보다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속성에 대해 다룬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헤어짐이 주는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의 아련한 감정말이다. 그 감정이 과거로 회귀되는 것보다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성숙한 관계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교감을 하고, 마음을 나누는 데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풀어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우선 영화는 음악은 나오지만, 일종의 무성영화처럼 대사가 없다. 요즘 세상에 대사가 없는 영화라니, 이상하다 싶겠지만, 오히려 점, 선만으로 그려진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수많은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침묵과 표정, 행동을 통한 교감과 소통이 더 깊은 인상을 준다. 좌절한 친구에게 말없이 건네는 따뜻한 라떼 한잔, 실패를 경험한 후배의 등을 두드려 주는 선배의 다정한 손길, 멋진 성과를 낸 동료에게 던지는 손하트나 엄치 척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반려인들은 공감하겠지만, 인간과 다른 종들도 감정에 교감할 능력이 있다. 내가 힘든 날 깜비는 조용히 내 옆에 앉아 앞발로 조심조심 내 허벅지를 쓰다듬는다. 내가 기분이 좋은 날엔 자기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짧은 꼬리를 쉬지도 않고 흔들고 (정말) 웃는다. 이렇게 말없이도 마음에 공감할 수 있고, 순간순간 울컥 눈물도 올라오는 것이 관계의 미학 아닐까.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나도 언젠가는 도그와 로봇처럼 이별에 대처해야 한다. 우리 깜비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될 날이 오면, 깜비도 처음 만난 그날의 내손길과 마음에 연결된 감정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같이 한 날들이 행복했다고, 사랑한다고 눈빛으로 말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만날 또 다른 깜비와의 행복을 빌어 주었으면 한다.

Do You Remember? 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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