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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뱅커 Jun 11. 20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평범한 악’의 구역질

슬프지만 메마른 시선으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조나단 글레이저, 2024)는 <언더 더 스킨>(2014) 이후 10년 동안 준비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신작이다. 이 영화는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및 올해 3월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상과 음향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은 암전과 침묵으로 3분간 이어지는 묵념의 시간을 제공하며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기린다. 이어서 한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아내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을 슬프지만 건조한 시선으로 표현한다. 영화는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의 시점으로 관찰하며, 기존의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그 결을 달리 한다. 희생자들의 등장 한 번 없이, 담장 밖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루돌프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만을 보여준다. 이는 나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그들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카메라가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관찰만 하겠다는 선언처럼, 고정된 프레임과 자연광을 이용해 객관성을 유지한다.

루돌프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

'평범화된 악'의 윤리적 방어막

얼핏 보면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의 개념을 떠올리게 하지만, 감독은 이를 넘어서서 루돌프 가족이 담장 밖의 불편한 비명소리와 검은 연기, 불빛을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오히려 그 지옥 같은 공간을 자신들이 평생 꿈꿔온 왕국쯤으로 생각한다. 영화 속 아이들은 피해자의 금니로 장난을 치고, 아내(산드라 휠러)는 피해자의 유품을 빼돌리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이는 루돌프 가족과 정원으로 대변되는 나치의 생태주의 광기를 반영하며, 타인의 고통 사이에 존재하는 담벼락을 윤리적 방어막으로 설정한다. 그들의 저택과 정원은 누군가의 착취와 죽음으로 생성된 '평범화된 악'을 상징하며, 영화는 나치를 규탄하는 대신, 관객에게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때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스크린을 넘어 들려오는 불편한 소리에 무뎌지지 않았는지 자문하게 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가?
우리는 자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는가?
희생된 유대인의 모피를 입어 보는 아내

화면을 뚫고 나온 소리와 온기

영화는 시종일관 화면과 불일치되는 불편한 음향과 차가운 색감으로 진행되다, 인상 깊은 시각적 전환을 시도한다. 한 소녀가 유대인 강제노역 장소에 사과를 숨겨 두는 장면을 열화상 카메라로 강조하며, 감독은 이전 화면들과 대조되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한다. 이 소녀는 폴란드 출신의 실제 인물로,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 시 영화를 소녀에게 헌정한다고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그리고 두 번에 걸쳐 스크린을 뒤덮는 흰색과 붉은색의 전환 연출은 나치의 폭압 속에서 자유를 향한 의지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이 소녀와 아우슈비츠가 위치한 폴란드 국기를 상징한다.

앞서 말했듯, 아카데미에서 <오펜하이머>(크리스토퍼 놀란, 2024)를 누르고 음향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오펜하이머>를 통해 '음향'이라는 경이로운  영화적 언어를 경험한 나로서는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받아야 할 영화가 '음향상'이라니 그 소리가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사운드 디자인이다. 이 영화를 통해 이미지가 아닌 사운드의 재현이라는 새로운 영화적 언어를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의 불편한 소리들은 외화면이라고 하는 영화언어의 진수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보는 거보다 들으면서 그 상황들과 고통을 온몸의 신경으로 느낀다. 이 엄청난 영화적 경험은 극장문을 나오는 순간 휘발되는 얕은 체험이 아니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길고 깊은 경험이다. 이 영화를 지금 극장에서 봐야 될 이유이다.

사과를 숨겨 두는 소녀를 담은 열화상 카메라

역사와 현재를 잇는 감독의 용기 있는 메시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악은 자신이 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가면 뒤에 숨는다 “ 마지막 루돌프의 구역질은 자기 행동의 악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의미이자, 무사유에서 생긴 ‘악의 평범성’ 아니라 악한 마음에서 시작된 '평범화된 악'이라고 영화는 규정한다.  그리고 현재 수용소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지 않은 역사와 아픔을 담아낸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욕구를 위해 마음속 깊은 양심을 지하에 묻고, 영화는 다시 한번 침묵의 암전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마무리된다.

구역질 하는 루돌프

감독은 아카데미 장편국제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는 우리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보여준다.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상황은 지금도 진행 중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비극”이라고 말했다. 가자를 공격한 이스라엘군에는 아우슈비츠 희생자의 후손도 있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대인이기도 한 감독의 수상 소감은 유대인을 위해 사과를 놓아둔 폴란드 소녀의 마음과도 같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마음속 목소리에 따르는 용기이자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다.

이 영화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깊은 사유와 동시에 고통을 주는 이유는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와 과거에 살았던 그들이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감정을 다루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조나단 글레이저 - 아카데미  국제장편상, 음향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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