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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평범한 악’의 구역질

by 무비뱅커

슬프지만 메마른 시선으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조나단 글레이저, 2024)의 시작은 암전과 침묵 속에서 마치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어 공간을 파고드는 기괴하고 불편한 소리와 대비되는 한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아내며, 영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을 무심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이 영화는 피해자의 시선이 아닌 가해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며, 기존의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 고통받는 희생자의 이미지나 수용소 내부의 학살 장면 없이, 영화는 수용소 담장 밖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루돌프(크리스티안 프리에델) 가족의 평온한 일상만을 담아낸다.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듯 무심하게 말이다. 이는 나치를 정당화하거나 그들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다만 카메라는 사건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듯, 고정된 프레임과 자연광을 활용해 슬프지만 건조한 시선으로 그들의 일상을 비추며 묵묵히 지켜본다.


'평범화된 악'의 윤리적 방어막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영화 속 루돌프와 가족들의 행동은 단순한 ‘무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자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악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담장 밖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 연기, 불빛을 철저히 외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아이들은 피해자의 금니를 장난감 삼아 놀고, 아내(산드라 휠러)는 피해자의 유품을 빼돌린다. 그들에게 이 지옥 같은 공간은 오히려 평생 꿈꿔온 이상적인 왕국처럼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루돌프 가족과 그들의 정원을 통해 나치의 생태주의적 광기를 반영하며, 타인의 고통과 자신들 사이에 놓인 담벼락을 일종의 윤리적 방어막처럼 설정하려는 태도로 나타난다.
결국 그들의 저택과 정원은 누군가의 착취와 죽음으로 만들어진 '의도된 악’을 상징한다. 즉, 그들은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과는 다른 궤적을 그린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는 스크린 너머에서 들려오는 불편한 소리에 익숙해진 관객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다시 말해, 영화 속 루돌프 가족에게 담벼락이 윤리적 방어벽이 되듯, 관객에게도 스크린이 하나의 방어벽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며, 무감각해진 감정의 본질을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시청각을 통한 강렬한 영화적 체험

영화는 내내 불편한 음향과 차가운 색감으로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중간에 눈에 띄는 시각적 변주를 시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한 소녀가 유대인 강제노역 현장에 희생자들을 위해 몰래 사과를 숨겨놓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강조되며, 이전의 차가운 장면들과는 달리 사람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연출된다. 이 소녀는 폴란드 출신의 실존 인물로, 감독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를 그녀에게 헌정한다고 밝혔다. 또한 화면 전환 시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흰색과 붉은색의 강렬한 대비는 나치의 폭압 속에서도 자유에 대한 의지와 인간성을 지키려는 소녀의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가 위치한 폴란드와 그곳에서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추모하는 상징적 의미를 더한다.
이처럼 강렬한 시각적 체험에 이어 영화는 청각적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기며 관객의 감각을 더욱 자극한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펜하이머>(크리스토퍼 놀란, 2024)를 제치고 음향상을 수상해 큰 화제를 모았다. <오펜하이머>를 통해 ‘음향’이라는 새로운 영화적 감각을 경험한 관객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작품상이나 감독상에 가까울 것 같던 영화가 음향상을 수상했다니, 그 소리가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사운드 디자인이다. 불편하고 날카로운 소리는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화면 밖의 고통과 불안을 더욱 깊은 감각으로 전달한다. 그런 끔찍한 일들이 얼마나 쉽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쉽게 일어나는지 섬뜩한 생각을 하게 한다. 이처럼 청각적 요소를 통해 이미지를 넘어서는 연출은 재현의 윤리에 대한 결연한 태도를 드러내며, 새로운 영화 언어를 제시한다. 요컨대, 이 영화는 보이는 이미지보다 들리는 소리를 통해 그 상황과 고통을 관객이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영화적 체험은 단순히 극장을 나서면 사라지는 얕은 감정이 아니라, 구역질이 날 정도로 깊고 오래 남아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감각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각을 통해 역사를 체험하게 하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역사와 현재를 잇는 감독의 용기 있는 메시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악은 자신이 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가면 뒤에 숨는다." 그의 말처럼, 영화의 마지막에서 루돌프의 구역질은 자신의 행동이 악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으로, 이는 무사유에서 비롯된 ‘악의 평범성’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악을 상징한다. 결국 그는 지하로 하강하며 자신의 추악함을 감추려 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박물관이 된 현재 수용소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지 않은 역사와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는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비극과 잔혹한 역사에 대한 장엄한 연결을 연상케 한다. 그렇게 영화는 다시 한번 침묵 속 암전으로 돌아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마무리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과거의 비극이 단순히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전장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과거의 상흔이 여전히 인류의 무의식 속에서 되살아나고, 현재의 고통 속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에서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감독은 아카데미 장편국제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는 우리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반영합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비인간적인 비극입니다”라고 밝혔다. 가자를 공격한 이스라엘군 중에 아우슈비츠 희생자의 후손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유대인인 감독의 이 수상 소감은 평화를 위한 거창한 계획보다는 마음속 진실에 귀 기울이는 용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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