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같은 악몽, 악몽 같은 현실
영화 <드림 시나리오>(2024, 크리스토퍼 보글리)는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예측 불가 상황을 그려낸다. 또한 꿈이라는 무의식의 영역이 어떻게 일상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영화는 꿈이 갖는 무의식적 힘과 그로 인한 사회적 반응을 통해 우리가 가진 이미지의 본질을 묻고,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인식하는 나의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심리를 흥미롭게 담아낸다.
나락 가기 쉬운 세상
얼마 전, '개통령'이라 불리던 유명 반려견 훈련사의 갑질 논란이 화제가 되었다. 사건이 터지자 대중은 그의 과거 행적을 하나씩 끄집어내며 ‘개통령’을 나락으로 몰아갔다. 이 영화 속 폴(니콜라스 케이지)도 비슷한 상황을 맞는다. 소심하고 존재감 없던 대학교수 폴은 갑자기 모든 사람의 꿈에 등장하며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얻게 되지만, 그 꿈이 곧 그의 추락의 시작이 된다. 이 영화는 진실보다 자극에만 몰두하는 현대인의 군중 심리와 구조적 폭력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허영심과 인정 욕구라는 보이지 않는 속박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을 통찰력 있게 드러낸다.
관종과 집단군중심리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는 현상은 마치 소셜미디어에 같은 음식, 같은 여행지, 같은 브랜드 제품 사진들이 해시태그로 도배되는 모습과 닮아있다. 현대 사회에서 소셜미디어는 정보와 의견을 순식간에 확산시키며 누구나 하루아침에 유명해질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실수나 부적절한 행동 역시 순식간에 확산되고 대중의 비난을 받을 위험을 내포한다.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은 더욱 공격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기 쉽고, 이러한 군중 심리는 결국 현대판 마녀사냥과 캔슬 컬처로 이어진다.
영화는 진실에는 무관심한 채, 자극과 추종에 몰두하며 타인의 삶을 근거 없이 난도질하는 군중 심리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영화 속 폴의 지인은 “사람들이 진짜 교수님 꿈을 꾼다고 생각해요?”라는 말로, 스스로 주목받기 위해 군중의 심리를 악용하는 관종적 개인과, 익명성 뒤에서 남의 삶을 함부로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동시에 비판한다. 영화는 이렇게 익명성에 기대어 무책임하게 전가하는 불만과 추종 심리의 허상을 예리하게 그려내며, 소셜미디어 시대의 집단 심리를 신랄하게 조명한다.
미움받을 용기
영화 속 폴은 학자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있다. 이는 타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폴은 자신의 연구나 글로 직접 평가받기보다는, 과거 동료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달라 부탁하고, 쓰지도 않은 책을 출판해 줄 에이전시를 찾아가며 허황된 욕망을 꿈꾼다. 이는 자신의 실력과 진짜 모습보다는 타인의 평가에 기대어 인정받고자 하는 허영심의 표출이다.
쇼펜하우어는 타인의 인정에 대한 희망이 허영심이라면, 반대로 자긍심은 자기 자신의 평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자긍심이란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며, 허영심을 버려야만 진정으로 자신답게 살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폴은 타인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잘못된 욕망에 매달려,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또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정 욕구와 허영심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개의치 않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미움받을 용기’인 것이다. 이 영화는 폴의 사례를 통해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것이야말로 허영심과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니콜라스 케이지, 죄절감으로 승화하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 경력의 니콜라스 케이지와 그의 연기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MZ세대에게 그는 진지한 배우보다는 인터넷 밈으로 더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실제로 그는 <드림 시나리오> 대본을 보고 자신이 밈화 되었을 때 느꼈던 혼란과 좌절, 자극의 감정을 폴 매튜스라는 캐릭터에 투영할 수 있겠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고백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현상과 배우의 정체성이 유머러스하게 맞물리며, 영화의 서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이는 고흐의 그림이나 베토벤의 음악을 감상할 때 그들의 굴곡진 삶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처럼, <드림 시나리오> 속 폴의 모습은 실제 니콜라스 케이지 자신일지도 모른다.
케이지는 자신을 조롱하는 밈으로 소비되는 일부 대중문화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만의 진솔한 감정과 연기로 스크린을 채운다. 그의 연기는 단순한 유머와 자극을 넘어 인간의 내면을 비추고, 삶의 희로애락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배우로서, 그를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드림 시나리오>는 케이지의 연기 경력 속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순간이다. 단순히 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넘어, 예술가로서의 케이지가 자신의 상처와 고뇌를 어떻게 연기에 담아내는지를 보여주며, 그 속에 숨겨진 인간적 깊이를 재조명하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의 마침표는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명배우의 재도약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