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비뱅커 Aug 29. 2024

<괴인> : 타인의 시선이 만드는 경계선

<괴인>은 기홍의 특이한 외모와 거친 경상도 사투리가 주는 불편함으로 시작한다. 이미 누군가는 그를 영화 제목 속 괴인으로 속박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홍은 임산부를 배려하고, 자신의 차를 망가뜨린 하나의 부상을 염려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있다. 영화는 기홍을 통해 괴인은 겉모습이나 일부 행동으로 정의되기 어렵고, 범인(凡人)과의 경계 역시 모호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괴인은 어떤 사람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 영화는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사건을 쫓기보다는 관계의 본질과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주목한다.

<괴인>은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괴작의 성격을 띤다. 이는 예상에서 벗어나, 스토리 연결이 단절되는 장면들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기홍이 정환의 집으로 이사 가는 과정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불친절한 연출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며, 갑자기 전개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몰입하게 한다. 이처럼 영화는 상식적인 설명을 배제하고 화면 속 그들의 관계에 집중한다.

이러한 비논리적 전개는 영화의 핵심인 인물들 사이 연결과 미묘한 거리감으로 투영된다. 그들의 행동 역시 예상에서 벗어나며, 다양한 얼굴로 타인의 삶에 침범한다. 예를 들어, 정환은 친절하지만 묘하게 불편한 집주인으로, 하나는 염치 있는 척하지만 민폐 끼치는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는 이런 관계의 이중성 또는 가변성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얼굴로 타자와 연결되고 하찮게 분리되는지 보여준다.

영화에서 관계의 본질은 상황과 연결된 관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한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기홍은 자신이 우위에 있는 관계에서는 큰소리치며 하대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정환에게는 선을 넘지 않는다. 반대로 정환은 친절한 말투지만 늘 기홍의 사생활에 개입하고, 겉으로는 제안 같지만 지시하려 한다. 정환의 불편한 제안에도 기홍은 잠시 주춤할 뿐, 항상 그 불편함을 따른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이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계급의식에 의한 연결방식이라는 점이다. 그런 순간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흥미롭다. 이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정환의 시선 또는 내면에는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기홍의 존재가 괴인 또는 개(犬)인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기홍 내면에도 자신의 허세를 충족시킬 정환의 집에 살기 위해 스스로 개(犬)인처럼 됐을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권위적으로 또는 무력한 존재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괴인>은 타자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의 본질과 복잡성에 대한 영화다.

 처음으로 돌아가 영화를 본 지금, 괴인은 누구인가? 영화는 포스터의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라는 말처럼, 타인의 시선에 따라 누구나 괴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홍이 처음에는 괴인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 그에게 반영한 시선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 중반부 깊은 밤 자전거를 타고 산속에서 내려오는 흐릿한 장면과 불분명한 전개처럼, 영화는 우리를 모호한 스크린 속 구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모호함 속에서도 확실한 것은, 백지에서 시작한 영화가 다시 백지로 돌아와 관계와 시선의 가변성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그들의 예측할 수 없는 관계는 새로운 연결을 통해 누군가는 다시 괴인이 될 것 같다. 타인의 시선으로


작가의 이전글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