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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

설명할 수 없는 예술의 기적

by 무비뱅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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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영화가 있을까? 영화는 문학의 서정성과 음악, 미술의 감각이 오롯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영화만이 가능한 예술'이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마술적 사실주의와 도시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관객을 낯설고도 아름다운 체험으로 인도한다. 도시를 감싸는 하늘과 바람, 일상에 녹아든 빛과 그림자는 조지아를 모르던 이들조차 사랑에 빠지게 할 만큼 매혹적이다. 영화는 감각적 체험이 예술로 번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영화가 예술로서 지닌 특성을 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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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첫눈에 반한 리자와 기오르기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곧 두 사람이 얼굴이 바뀌는 저주에 걸리며 초현실적 상황에 놓인다. 이 낯선 전개는 동화처럼 부드럽게 흘러간다. 화자의 내레이션은 현실과 비현실을 자연스럽게 잇는 통로 역할을 하며, "눈을 감았다 뜨라"는 말과 함께 스크린 위 인물은 전혀 다른 얼굴로 변한다. 이 장면이야말로 영화의 마술적 성격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러나 비현실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결코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는다. 도시 풍경은 언제나 그렇듯 변함없고, 기오르기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동료들은 냉혹한 현실의 무심함을 대변한다. 카메라는 기오르기를 나무 뒤에 숨기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그의 상실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축구공이 굴러가 유리잔을 깨뜨리는 장면에서는 얼굴뿐 아니라 그가 잃어버린 재능과 정체성,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고요히 깨져나간다.

이야기 곳곳에 스며든 축구는 단지 기오르기의 직업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일상과 정서를 연결하는 상징이다. 조용한 도시에 월드컵은 활력을 불어넣고, 메시가 두 골을 넣는 환상적 경기는 마치 현실처럼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주목할 점은 이 경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꿈꾸고 기대하는지 되묻는다. 훗날 실제로 메시가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이 영화를 본 관객은 문득 그 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바로 그때 영화는 예언적 체험의 유산으로 남는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도시 그 자체다. 카메라는 빛과 그림자를 품은 거리, 숲속 빵집, 그리고 인물의 피부를 스치는 바람까지 생명을 불어넣듯 포착한다. 특히 리자와 기오르기가 숲속 빵집을 방문하는 장면은 풍경과 대화, 음식의 냄새까지 어우러진 수채화 같은 순간이다. 이 장면은 단지 서정적일 뿐 아니라 관객에게 그들이 다시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기대감을 심어준다.

영화 내내 흔들리는 나뭇잎과 살랑이는 바람은 시청각을 넘어 촉각까지 자극하며, 영화가 진정한 종합예술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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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영화가 전통적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그것들이 전하는 감각은 오히려 더욱 깊고 진하다. "세상은 본디 이상한 일로 가득하다"는 영화 속 화자의 말처럼, 이 작품은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찰나들을 모아 하나의 시를 완성한다.

영화는 말한다. 세상에서 설명되지 않는 기적이 바로 예술이며, 그중에서도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장 아름답게 들려주는 예술이라고.

영화의 마지막,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 모든 감정을 정점으로 끌어올린다. 그 장면이 그렇게도 뭉클한 이유는 영화가 끝나도 계속될 삶의 시간, 이어질 사랑과 꿈, 기록될 일상의 한 조각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한 영화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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