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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 : 타인의 시선이 만드는 경계선

by 무비뱅커

<괴인>은 기홍(박기홍)의 이질적인 외모와 거친 경상도 사투리에서 오는 낯설고 불편한 감각으로 관객과의 첫 만남을 연다. 누군가는 이미 그를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 '괴인'으로 손쉽게 규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홍은 임산부를 세심하게 배려하거나, 자신의 차를 망가뜨린 하나(이기쁨)의 부상을 염려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다. 영화는 기홍을 통해 '괴인'이라는 존재가 겉모습이나 몇 가지 특이한 행동으로 쉽게 정의될 수 없으며, 보통 사람과의 경계 또한 불분명함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는 괴인은 누구이며, 그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는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사건 중심의 서사 대신, 관계의 본질과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탐구한다. 더 나아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성찰한다.

<괴인>은 전개를 예측하기 어려운 괴작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는 관객의 예상에서 벗어나 스토리의 연결이 의도적으로 단절된 장면들을 통해 구체화된다. 예컨대 낡은 주택 옥탑방에 살던 기홍이 정환(안주민)의 고급 전원주택으로 이사하는 과정은 영화 속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생략과 불친절한 연출 방식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결국 영화는 상식적인 설명을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오롯이 화면 속 인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 자체에 집중한다.

이러한 비논리적 전개는 인물들 사이의 연결과 미묘한 거리감으로 투영된다. 그들의 행동 또한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며, 다양한 얼굴로 타자의 삶 속에 침범한다. 예컨대 정환은 친절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집주인으로, 하나는 염치 있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민폐를 끼치는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는 관계의 이중성과 가변성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얼굴로 타자와 연결되거나, 때로는 분리되는지 포착한다.


영화는 관계의 본질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한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기홍은 자신이 우위에 있을 때는 큰소리를 치며 상대를 하대하지만, 높은 계급의 정환에게는 선을 넘지 않는다. 반대로 정환은 친절해보이지만 끊임없이 기홍의 사생활에 침범하며, 제안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지시를 내린다. 정환의 불편한 제안에 기홍은 잠시 주춤할 뿐, 결국엔 그 불편함을 수용하고 만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관계의 구도가 누구도 명확히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된 계급의식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순간마다 개 짖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린다는 점이다. 이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정환의 잠재된 내면에서 기홍은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괴인’이거나 ‘개(犬)인’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반대로 기홍 또한 자신의 허세와 욕망을 충족시킬 정환의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개(犬)인’인 처럼 됐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우리가 관계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권위를 행사하는 존재가 되거나, 때로는 무력한 존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결국 <괴인>은 타자와 맺는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되는 인간 본연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영화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과연 '괴인'은 누구인가? 영화는 포스터에 적힌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라는 말처럼, 누구든 타자의 시선에 따라 괴인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던 기홍이 점차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우리 자신이 가진 또 다른 자아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투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 중반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녀가 깊은 밤 산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흐릿한 장면이나 불분명한 전개처럼, 영화는 관객을 모호한 스크린 속의 구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처럼 모호한 서사 속에서도 분명한 것은, 백지에서 시작한 영화가 다시 백지로 돌아오며 관계와 시선의 끊임없는 가변성을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그들의 예측할 수 없는 관계는 새로운 연결을 통해 누군가를 다시금 괴인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바로 타자의 시선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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