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이 영화 <장손>(오정민, 2024)을 보고 나면 부정할 수 없는 공감에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두부 공장을 가업으로 하는 가부장적 집안의 장손 성진(강승호)이 본가를 찾은 여름부터 할머니(손숙)의 장례를 치르는 겨울까지, 가족 간의 갈등과 숨겨진 비밀을 다루며 가족의 본질을 파고든다.
영화 속 가족들은 그들이 만드는 두부처럼 쉽게 부서지고 변질되는 듯한 성질을 보인다. 영화는 이를 통해 전통적 가족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해체되고 재정의 되는지를 탐구한다. 달리 말해 가족은 언제나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장 깊은 내면의 상처 역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 속 어디에도 선악의 대립이나 악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가족에게 받는 상처와 갈등은 보여주지만, 요란스럽게 누가 옮고 틀리다 판단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컨대 자신을 끔찍이도 아꼈던 할머니의 죽음에도, 성진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자신도 의아한지, 장례식장 밖에서 억지로 울어보려고 노력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때 성진이 울음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할머니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나쁜 손자라서가 아니라, 각자의 슬픔이 가지는 질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할머니가 염을 하는 동안 상심하는 할아버지 옆을 지키는 것은 성진뿐이다. 이 장면은 철부지 막내에서 한 가족의 장손으로 성장한 성진을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인상 깊은 플롯이 하나 더 있다. 사라진 고모의 통장에 대한 진실이다. 영화는 끝내 고모의 주장에 대한 진실은 밝히지 않는다. 영화는 가족 각자의 진술과 입장만 존재할 뿐, 명확한 진실은 밝히지 않는다. 다만 사건 자체보다 물질적 가치와 오해가 어떤 과정으로 갈등을 발화시키는지 담아내며, 애써 외면해 왔던 우리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가족의 의미를 질문한다. 이만큼 또 가깝고 푸근한 존재가 있나 싶다 가도 때로는 원수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가족의 이야기에 웃고 울게 된다.
영화는 서사뿐만 아니라, 시각적 아름다움 또한 돋보인다. 조용한 농촌의 여름, 가을, 겨울 풍경을 카메라는 목도하듯 따라간다. 영화에서 계절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인물의 감정선과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여름에는 밝고 유쾌한 가족의 모습을, 가을과 겨울에는 점차 냉소적이고 정적인 분위기로 변화하면서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직면한 인물들의 내면 변화를 기록하듯이 따라간다.
결국, <장손>은 관객이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가족의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성진이 마주한 가족 갈등과 관계의 틈은 관객에게 낯선 경험이 아니라 익숙한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지만, 때로는 가장 치명적인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결코 간단하지 않은 가족의 본질을 묻는다. 이 영화의 힘은 바로 그 질문에 있다. 영화는 단순히 갈등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가족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할아버지가 산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세대가 교차하고 변모하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묻어 나오는 고요한 정서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에게 가족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그 안에 얽힌 감정의 결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장손>은 그러한 여운을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의 복잡성과 무게를 되새기게 만든다. 때로는 버거운 짐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할 수 없는 존재가 가족임을 영화는 잔잔하게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