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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24. 2023

빅토리 노트

내 삶도 채 어쩌지 못하면서 부모가 되었다.

<빅토리 노트> 이옥선, 김하나 2022



나는 왜 이런 부모를 만나지 못했을까?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한 걸까? 좋아하는 작가들이 종종 자신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떻게 해서든 부러운 점을 찾아냈다. 한결같이 믿음을 주는 부모, 무엇을 하든 지지해 주는 부모.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그런 부모를 가진 것 같아 보였다. 부러웠다. 질투에 눈이 멀어 갔다.


‘너는 운이 좋아 그런 부모를 만나 지금의 네가 된 거야.’


나는 운이 나빠 이런 부모를 만나 자존감을 도둑맞고 나를 꽃피우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스스로를 얼마나 깎아내리고 학대했는지 모른다.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록 다른 이들의 부러운 점, 좋은 점의 단면만 보려했다. 아무래도 내가 안 되는 건 모두 엄마 때문이라고 밀어내고 싶었다. 엄마를 미워하면서 사랑했고, 원망하지만 인정받으려 온 에너지를 집중했다. 그토록 엄마를 원망하며 갈망했다. 나는 엄마로부터 받은 사랑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분명 내게도 어떤 사랑이 있었을 텐데, 내 머릿속엔 오로지 아들이 아니라는 질책과 부정당한 기억만이 또렷했다.


“네가 딸이라서 너를 지우려고 했어” 가 대표적인 에피소드. 초등학교 5학년에 처음 들은 이 끔찍한 이야기는 내 인생 전반을 뒤흔든 역사적인 트라우마로 자리 잡는다. 그 이후에도 종종 들어온 “너는 딸이라서 안 돼” 혹은 “네가 아들이었다면 달랐겠지”라는 평생의 꼬리표. 동시에 같은 여성으로서 자신과 다르게 살아가길 바라는 욕망을 끊임없이 투사했다. 내 취향과 기호는 전혀 상관없이 “입대해 보는 건 어때? 난 여군이 되고 싶었거든” 엄마가 건네는 말엔 언제나 내가 없었다. 몇 번을 묻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엄마,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뭔지 알아요?’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자상하고 완벽했다. ‘girls be ambitious!’라는 편지를 적어준 사람. 어린 날의 끝없는 야망을 지지해 주던 사람. 아버지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다. 내가 무얼 하든 무슨 말을 떠들든 그저 껄껄껄 웃던 사람. 그는 내가 열네 살이 되던 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했음을 먼 훗날 알게 되었다. 엄마와의 불화는 모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생긴 일이다. 엄마이자 동시에 아빠여야만 했던 그녀의 가냘픈 역사는 나의 방황과 절망으로 함께 흘러갔다. 그녀를 온전히 비난할 수 없는 이유, 우리의 가장 소중한 세계를 잃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엄마라서 저지른 폭력과 엄마지만 할 수 없었던 쓰라린 고통을 기억한다.


이십 대 중반이 되어 독립을 하며 그녀와 물리적으로 멀어지자 조금씩 애틋해졌다. 그녀를 죽어라 미워하며 오해하고 산 시간을 되짚고 싶어 그녀를 열심히 이해하러 다녔다. 그녀의 삶을 자꾸만 질문하고 젊은 날의 그녀를 상상했다. 그녀의 부모로부터 요구받았던 K-장녀의 삶, 동시에 받았던 모진 학대, 세 명의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억척, 하고 싶은 삶을 살아본 적 없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소명,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의 시집살이, 남편의 외도와 빚과 죽음, 상상조차 못했던 한부모 가정의 무게 같은 것들을 헤아리기엔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퍼즐 조각을 찾아 그녀의 이름에 하나씩 끼워 맞춰갔다. 그녀를 휘감은 여러 갈래의 끈적한 힘줄을 들춰내고 애써 감추던 과거를 전해 들으며 끊임없이 조각을 찾아갔다. 아직도 맞추지 못한 조각이 많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


“너를 낳고 몇 달을 쳐다보지도 않았어” 농담처럼 넌지시, 예고 없이 그녀가 건넨 말에 얼마나 속절없이 놀라고 무너졌는지 모른다. 어릴 적 그 말이 너무 아파 엄마는 분명 나를 미워하고 싫어했을 거란 오해가 있었다. 내가 받아들인 것은 단 한 줄이지만, 이제야 아는 것은 그 문장 속 그녀가 살아낸 시절이었다. '엄마가 나를 미워했구나'가 아니라 '불안했구나, 힘들었구나, 우리 엄마.'


나와 똑닮은 아이를 낳고 나는 새로운 조각을 꿰어 맞춰 갔다. 


“너를 낳고 이틀인가 삼 일 만에 목욕을 씻겨 다리를 보니 낫처럼 휘어있는 거야. 까무러치게 놀라 울면서 세브란스에 달려갔어. 얼마나 울었는지 의사가 달래면서 의학 교과서를 꺼내는 거야. 자, 이것 보세요. 책에도 이렇게 쓰여있지요. 신생아 다리는 원래 휘어있는 게 정상이라고요. 나는 네가 잘못될까 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얼마 전, 아이 오다리 문제로 그녀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갑자기 터져 나온 과거의 한 조각에 나는 새로운 퍼즐을 맞춘다. 신생아를 얼기설기 들춰 메고 달려가 초조하게 앉아있었을 가녀린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의 사랑은 내게 이렇게 온다. 사랑이 존재했음을 확인하는 것, 사랑받았던 기억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제법 살 만해진다.


나는 여전히 질투를 한다. 다른 이들이 부모에게 받은 사랑의 단서, 편지라든지, 일기라든지 너무나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형태를 발견할 때면 그렇게도 샘이 난다. 내게는 턱없이 부족한 것 같은 사회, 문화자본이 넘쳐나는 이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글을 마주할 수 있다. 세상의 다양한 사랑을 만나러 간다. 나는 그 사랑, 정확히는 사랑하는 방법을, 표현하는 언어를 배운다. 나는 노력한다. 나는 이해하려 애쓴다. 내가 모르는 방식의 사랑이 존재했을 거라고, 나는 끊임없이 그녀와 나 사이의 언어를 번역하고 통역해 다시 쓴다.


나는 아이에게 많은 것을 물려줄 것이다.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마음을 살뜰하게 보살펴 아이에게 전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과 아이가 받고 싶은 사랑의 모양은 다르다. 그녀와 나의 모양은 서로 달라 아주 멀리 돌아왔지만 내 아이에게는 아이가 알 수 있는 모양으로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계속 말할 것이다. 해인아 사랑해, 네가 이 세상에 온 것을 정말 환영해. 엄마는 항상 여기 있어.


내 삶도 채 어쩌지 못하면서 부모가 되었다. 우리의 길은 제법 혼란할 테지만, 나는 사랑과 위트를 전하는 부모가 될 것이다. 나의 한 걸음은 해인이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한 뼘이 될 것이다. 오늘도 그 사랑을 갈고닦으며 마음을 역전한다.   





<빅토리 노트>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 이옥선 작가님의 육아일기를 출간한 에세이로 김하나 작가를 낳고 5년 동안 쓴 일기라고 합니다. 친구로부터 이 책을 선물받고 읽으며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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