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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Feb 17. 2021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귀환 소감

1.

각설하고, 다시 서울에 돌아왔다.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내가 서울에서의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음을 깨달았고, (일과 함께 임용 시험을 병행하기에는) 고등학교에서 근무가 여러모로 낫겠다고 판단했으며, 그래도 임용 시험만을 위해 달릴 수 있는 몇 달의 시간은 필요하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런 모든 요소를 충족시켜 주는, 그러니까 서울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올해의 나는 6개월간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남은 3개월간 수험생으로 공부할 예정이다.


2.

내가 서울로의 귀환을 바라 왔다고는 하나, 집을 떠나는 과정에서 후련함과 즐거움만을 느낀 것은 결코 아니다. 수험 생활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민망스러움과 부끄러움은 둘째 치고, 좋든 싫든 본가에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그 안락함과 안정감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 역시 내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모순적인 존재인지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쩐지 고향에 대한 환상마저 다 잃고 돌아온 듯하여, 약간의 씁쓸함을 느낀다. 예전에는 서울 생활이 힘들 때 고향에 돌아가면 다를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고향에서 내가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고향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곳에서도, 이곳 서울에서도 이방인이 된 것만 같다.


3.

그렇지만 서울에서 살게 된다면, 근무하는 학교에 통근하는 게 적당히 괜찮다면, 가급적 이 근방에서 살고 싶다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는 나 홀로 특정한 동네를 애정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그 동네에서 나에게 만들어 준 많은 기억과 추억이 대체로 기분 좋고 즐거웠기 때문에 내가 돌아오고 싶어 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그러므로 나의 대학 시절은 결국 찬란했다고, 그 시간 속 우리들은 참으로 생동하고 살아 있었다고 떠올리게 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닿지 못할 감사를 전한다. 그렇다, 나는 다시금 내 대학교 캠퍼스 부근으로 돌아왔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서울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 동네에 돌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십 대도, 나의 삼십 대도 이곳에서 물들어 간다.


4.

요즘 같은 시기에 전셋집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월세로 매달 돈이 나가는 것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져 1월 말에는 어머니와 함께 상경하여 며칠간 전셋집을 찾아 헤맸다. 전세 매물이 거의 없어서 더 그랬겠지만, '집'이 아닌 '방' 하나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여정 속에서 느껴지는 복잡 미묘한 감정은, 정말이지 말로 형용하기가 참 어렵다.

  다행히 그 며칠간은 날이 따뜻해서 덜 서러웠고, 다행히 '그래도 이 정도면 살 만하겠다' 느끼는 전셋집을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울에 발 붙이고 살 '방' 하나를 구한 뒤 숙소로 돌아와, 어머니는 주무시는 늦은 시간에 TV를 틀었더니, JTBC의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 가수 '이무진'님이 부르는 <꿈>이라는 노래(가수 '조용필'님이 원곡자이시다)가 흘러나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후략)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곱씹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날, 이 노래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조용필 님은 어떻게 이런 노래를 작사, 작곡하신 것인지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5.

어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의 차에 온갖 세간(?)을 싣고 와 함께 옮겨 놓고, 부모님께서 바로 내려가시면서 나는 다시 1인 가구의 삶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자취방에 이사한 첫날에는, 그 방이 내 마음에 드는지 혹은 그 방을 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항상 어느 정도 울적함과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꼭 한 번쯤은 눈물을 찔끔 흘렸던 것도 같은데, 어제는 어쩐 일인지 그러지 않았다.

  서울에 산 이래로(대학교 기숙사에 살았던 것을 제외하면) '그나마' 가장 높은 층수에 살게 되어서일까. 창밖을 그저 내다보기만 해도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이 보였다. 밖으로 나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지 않아도 달이 그곳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사한 첫날, 나는 엄청난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밤마다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어제는 눈물이 나지 않은 것이려나.


6.

서울에 돌아온 나의 근황을 어디서부터 어디에까지 알려야 할까. 사실 지난 수험 생활 기간 동안 나는 상당히 선택적으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 왔다. 그것은 연이은 나의 불합격 소식에 따른 민망스러움을 감추고 싶었던 행동이기도 했고, 혹여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을까 봐 (지레 겁을 먹고) 나를 방어하기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지극히 나만을 생각한, 나를 최우선에 둔 이기적인 것이었다.

  한편 이러한 생각조차 나의 존재감(?)을 과잉 해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많이 흘렀고, 그만큼 많은 지인들은 각자의 삶을 치열하고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므로. 그 속에 나의 부재는 거의 없을 것이 자명하므로.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연락을 해 볼까 고민하다가, 다시 한 번의 수험 생활을 앞두고 있는 나의 상황이 역시나 부담스럽기도 한 요즘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올해도 아주 이기적으로 굴 것만 같다.


7.

그래도 역시, 올해도 나는, 선생님일 것이다. 이것이 올해의 나 또한 결국은 살게 할 것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 분명한), 서울의 익숙한 이 동네에서 지난 몇 년간의 익숙한 결과 대신 낯설지만 특별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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