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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Apr 21. 2024

제목은 정하지 못했지만 글은 쓰고 싶어서

너무 늦은 2023학년도 정산하기

'투싼에서 투싼을 타고'.

작년에 다녀왔던 미국 여행에 대한 기록을 호기롭게 남겨 보겠다고 결심한 뒤로, 몇 번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한 편의 글은 꼭 이렇게 시작하리라 미리 정해 둔 제목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투싼(Tucson)이라는 동네를, 지인이 몰고 다니는 투싼(Tucson)이라는 차를 타고 알아 갔으니! 이 얼마나 깔끔하고 재미난 제목이냐며, 스스로 얼마나 뿌듯해 했던지. 그렇게 일찌감치 만들어 놓았던 제목은 결국 지금까지 쓰이지 못했고(이렇게나마 겨우 언급되었다), 미국 여행기는 출국하는 것에서 끝나 버렸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마지막 글을 올린 뒤 공백기가 점점 더 길어지면서, 글을 쓰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핑계는 많았다. 학교 사정이 녹록지 않았고, 고로 심신의 상태도 좋지 않았고, 그 와중에 여러 일들이 있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얼마만큼을 글로 풀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나는 교육공무원이고, 흔히 말하듯 교직 사회는 아주 좁은데, 내가 속해 있는 학교의 현실과 그 구성원들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좀 무서웠던 것도 같다. 내가 느낀 답답함과 짜증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에, 점차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쪽을 택했던 듯하다.

   실은 이마저도 그럴 듯한 핑계임을 알고 있다. 학교 얘기가 아니더라도, 작년 한 해는 나에게 무수한 고민과 치열한 번뇌로 점철되어 있었기에, 내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쓸 수 있는 글의 소재는 아주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마음을 먹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에는 마음을 먹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였지만.

   그러다 오늘은, 기필코 오늘에는 다시금 글을 써 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어쩌면 그러고 싶었던 것도 같다.




   작년 5월 즈음부터 나는 경미한 우울감과 일종의 무기력감을 느꼈던 것 같다. 계기를 모른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스스로의 판단이 맞다면, 나는 작년 3월부터 시작된 학교생활에서 새롭게 개편된 부서 상황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학교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이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긍정적인 일로 덮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같은 사랑(추구)꾼에게 있어 누군가를 만나는 것만큼 확실한 터닝 포인트는 없을 것이므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보고자 했다. 마침 4~5월의 봄날이었고,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근거 없는 희망이 잠깐 머물다 가는 시기였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다사다난했던 과정 속에서 나는 상당히 지쳐 버렸고 어느 순간 누군가를 만나는 일과 관련하여서는 자포자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처져 있으면 안 된다마음의 소리가 나를 계속 채찍질했다. 나의 마음과 노력만으로 되지도 않고 수도 없는 것에 힘들어 하지 말고, 나의 마음과 노력만으로 어느 정도는 성취할 있는 것들에 집중해 보자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때 내가 의지했던 것이 바로 대학원 박사과정 진학이라는 목표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임용 시험을 끝내고 나서,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배움에 대한 갈증이 계속 일게 되면, 박사과정을 밟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중학생들을 가르치면서는 내가 배웠던 많은 것들을 활용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내 시야가 좁아서 적용 방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 배움의 축적물들이 빠르게 휘발되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아까웠고, 상당히 불안했다. 사실 교사로서 내가 성장해야 할 부분은 너무나도 많은데, 그런 부분은 차치하고 나는 내 스스로가 바보가 되어 가는 느낌이 극도로 싫었던 것 같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말고, 내 공부를 하고 싶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나는 사실 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저러한 생각 끝에 나는 더 늦기 전에 대학원 박사과정 진학에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모교에 지원했다면 조금은 익숙한 분위기에서 입시를 치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여차저차해서 타 학교의 박사과정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여름부터 오랫동안 손 놓았던 영어 공부도 다시 해야 했고, 국어교육 분야에서 그간 쏟아져 나온 논문들을 부랴부랴 살피며 입시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나의 부족함을 매 순간 통감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라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목표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꾸역꾸역 대학원 박사과정 입시를 완주해 내었고, 장렬하게(?) 불합격하였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대학원에 합격했다면 1년 정도 연수휴직을 사용했을 것이므로, 휴직 사유가 소멸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솔직히 있다), 도전해 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봄의 끝자락 즈음 시작했는데, 지나고 보니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그러고 나자 겨우겨우 눌러 두었던 울적함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고, 개선되지 않는 학교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나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일회성으로 TCI(기질 성격 검사), MMPI(다면적 인성 검사), SCT(문장 완성 검사)를 받으며 내 자신에 대한 이해와 스스로의 회복을 갈망하던 무렵, 마침 동료 선생님이 '교직원공제회'의 회원을 대상으로 제공해 주는 심리상담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처음으로 꽤 오랜 기간 동안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그사이 이 학교에서의 두 번째 제자들을 진급시켰으며, 무조건 다른 부서로 이동하기 위해 (일이 많아 모두가 기피하는) 타 부서로의 배정을 희망하였다. 추운 겨울이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작년 나의 한 해가 꽤나 암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살아온 지난 30여 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를 가져다 준 일들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방학 직후, 나는 시력교정술 중 하나인 렌즈삽입술을 받았다. 눈이 너무너무 나빠서 라식이나 라섹의 방법을 쓸 수 없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왜 이제야 받으러 왔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놀라며 타박하셨는데, 세상 겁쟁이인 나에게는 렌즈를 낄 만큼 껴서 눈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그때가 가장 빠른 때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술을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9개월이 흘러 지난 금요일에 정기 검진을 받고 왔다. 눈은 멀쩡하고, 이제는 1년 뒤에 오면 된다고 한다. 안경 없는, 렌즈 없는 삶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편하고 자유롭다.

   그리고 또 하나, 수능을 치고 나서 엄마의 권유로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면허를 취득한 이후 나는 장롱면허 보유자로 살아왔다. 그렇게 무사고(?) 경력이 10년을 넘어갔고, 운전 한 번 하지 않고 면허증도 갱신했었다. 늦은 밤이 아닌 이상 도로에 차량이 가득하고 주차 공간이 심히 부족하며,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더 빠를 때가 많은 서울에서의 삶이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차를 하나 새로 장만하시면서 기존의 차를 넘겨 주실 수 있게 되었고, 나를 운전학원으로 떠밀었던 용감한 우리 엄마가 다시금 겁 많은 나를 새로운 도전의 장으로 이끄셨다. 올해 2월 말 나는 바짝 운전학원에서 도로주행 연수를 받고, 부모님과 함께 운전 연습을 하다가 차를 끌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3월, 2024학년도의 개학일부터는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고 있다(물론 차의 꽁무니에는 왕초보 스티커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여전히 서울에서 운전하는 것이 무섭고, 도로 위에서 홀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초행길은 최대한 가지 않으려 하는 소심하고 겁 많은 초보이지만, 어느 순간 문득 운전하다가 해방감과 속 시원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새로운 세상에 진입했음을 피부로 실감한다. 그래서 이 도전을 끝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결국은 능숙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 부모님에게 받아 온 차는 투싼(Tucson)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투싼(Tucson)이라는 동네의 이름을 딴 그 투싼! 1년 전 안경 혹은 렌즈를 착용하고 지인이 운전하는 투싼을 타고 다녔던 내가, 이제는 안경도 렌즈도 없이 내가 운전하는 투싼을 타고 다닌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4~5월의 봄날이 돌아왔다. 어쩐지 마음이 붕붕 뜨는 것 같고 내 고민도 불안도 불어오는 봄바람에 소르르 풀어질 것만 같다. 찰나의 착각에 속아 보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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