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를 읽고
학원 원장이나 임대인이 약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선생님이나 임차인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우연히 이 책을 읽을 때 겪게 되어 유독 인상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p.97).
이직과 실직을 회사를 나온 이후 흔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스스로 놓였지만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단련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준만큼 떠나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됐을 때 여파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경험(p.237)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동의한다. 경력단절이란 상황이 아니라 사건의 시작이다. 그 이후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하다. 흥미롭게도 40세 전후로 전문직 여성 다수가 프리랜서가 되거나 덜 영리 추구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이직(p.247)했다는 사실이 과연 그들의 온전한 선택인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이직과 실직은 일자리의 불안을 야기한다. '불안'이 왜 생길 수밖에 없는지 궁금했던 시기가 있었다. 아무래도 스스로 불안을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단련시킨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다양한 연령대의 성장 서사(p.277)에 나를 투영했던 시기와 겹치는 것 같다. 나는 불안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계약 해지를 경험하면서 아무래도 실력 없음에 대한 불안이 존재한다고 느끼게 됐다.
아직도 불안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이 단어를 만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 궁금하다. 여기서는 불안을 누군가에게 전이하고 싶은 감정이라고 한다(p.149). 나 혼자만의 불안이 아니라 모두의 불안이 되어버리면 혼자 낙오자가 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어쩌면 '길들이기'를 하는 마음은 불안을 전이하고 싶은 감정일까. 나는 실력 없음의 불안을 누군가에게 전이시키지 않는다. 스스로 불안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동안 불안을 전이시키는 행동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회사에 다닐 때 당시에는 몰랐던 '길들이기'가 얼마나 나의 마음상태를 지옥으로 만들어 공황이 오게 했는지 다시 떠올랐다(p.161). 지속되고 반복되었을 때 장점이 없다고 느끼는데 아직도 의도적 괴롭힘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길들이기'가 없는 직장을 만들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가 궁금해진다. 직장 내 조직문화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요즘 머릿속이 온통 새로운 일을 생각하다 보니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가 아니라 반짝이는 조각들의 사회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