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고
책은 전반적으로 미국 정치 제도에 대해 생소해 단어가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큰 맥락을 잡기엔 잘 쓰였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통해 전혀 알지 못했던 역사를 알게 된다. 마치 이번에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게 되어 해외에서 우리나라 4.3 사건을 알게 되듯이 말이다. 사실 큰 역사적 흐름은 여러 목소리가 담긴 작은 역사를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작은 역사를 알게 됐고 비교적 적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러 변화를 만들 수 있고 실제 그런 사례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위안이 된다. 때마침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동진 평론가의 유튜브에 미국정치와 관련된 영화 소개가 있었는데 보고 나서 책을 읽었더니 도움이 많이 됐다.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로 >https://youtu.be/P2k8uTZKOBI?si=8KuSYDNullq_ftOP)
미국의 대선제도는 우리나라와 너무 이질적이기에 이해하기가 힘든 구조다. 선거인제도가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폐지되어 어떤 나라도 시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었다. 얼마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변하지 않는 법이 얼마나 썩어버리게 되는지 적나라한 설명에 책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도 헌법이 바뀌기 어려운 환경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상원의원 제도나 우리나라 국회의원 할당, 다른 나라도 비슷한 도시화 과정을 통해 겪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도시와 비도시 사이의 인구 비례에 따르지 못해 어떤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비도시의 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경유착을 낳게 된다. <전라디언의 굴레>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큰 노력 없이 표를 얻어가는 기득권 정치인과의 야합이 점점 지방소멸화를 부추기고 있는 문제가 있다. 지역 정치인은 그 지역을 대표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데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너무 바쁘다.
미국에서는 투표하기가 힘들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동 제도가 떠올랐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서는 행정과 연관된 정치권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 적었던 내용을 옮겨 적어봤다. 아래 내용 외에도 주민등록이나 반상회 등 행정구역을 세분화해서 행정 서비스가 구석구석 이뤄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덕분에 투표권 행사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미국과 비교해서 행운이라는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미 한국에서 태어나 생활한다면 너무 당연한 동사무소가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이라고 하면 정치권력과 뗄 수 없는 사이다. 행정구역과 선거구역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선거구를 인구 비례로 할 것이냐, 영토 비례로 할 것이냐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문제(p.71)다. 행정구역을 정하는 행위가 권력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후 서울을 어떻게 나누어 통치하느냐로 통치술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간다. 통치술에 대해 더 자세히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쉽긴 하지만 결국 돈과 연결되었다는 부분 또한 흥미로워요. 바로 중앙정부의 교부금(p.276)을 받기 위해 지자체의 인구가 많아야 한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인해 사람들은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 이번에 나온 연상호 감독의 <지옥 2> 인터뷰를 보니 괴물은 스스로의 두려움에서 기인한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두려움보다 불안에 좀 더 흥미가 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두 가지가 결국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도 내 것을 빼앗기는 두려움 때문에 법을 바꾸고 혹은 바꾸지 못하게 하는 행동을 한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애매모호한 태도가 가장 악질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이야기도 한다(p.64).
어쩌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 스스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현상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의견을 보태기 힘들다는 점은 생각해보지 않아서다.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질 수 없다. 생각하기를 중단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을 외주화 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지옥 2>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맡겨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온다. 주인공 역시 그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결말로 끝이 나서 이번 미국 대선뿐만 아니라 <지옥 3>가 기대된다.
애매모호함을 넘어가면 침묵하게 된다.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p.343)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어쩔 수 없이 지금 같이 읽고 있는 책 내용과 연결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돼버린다. <권력과 진보>라고 이번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책이다. 인간이 만든 기술과 법, 제도가 인간의 발목을 잡고 목줄을 쥐고 흔들고 있지만 결국 인간에 의해 다시 재구성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 침묵은 안된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라도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고 다투고 화해하면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인간들의 목소리로 채워야 한다. 그러기에 나도 계속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세상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