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며 온라인 쇼핑몰 테무에 자주 들락거렸다. 순례길에서 한 번만 쓰고 버릴 자잘한 제품을 사는데 테무는 최적이었다. 다만 일정 금액 이상을 사야 무료 배송이 가능하고 보통 2주의 배송 기간이 소요된다는 건 단점이었다. 하지만 장점도 많았다.
소량 판매가 가능했다. 다이소도 비닐 손장갑을 10장, 20장씩 판매하지 않는다. 보통 100장 이상, 포장 케이스에 넣어 판매한다. 반면 테무는 노란 고무줄에 묶어 소비자가 원하는 양만큼 살 수 있다. ‘필요한 수량만큼 산다’ 미니멀리스트도 혹하는 컨셉이다.
다이소보다 쌌다. 뭘 사도 다이소보다 비용이 적게 들었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똑같은 생김새를 가진 제품도 테무가 저렴했다. 대체로 만족스런 쇼핑이었다.
“으이구 테무템”
순례길에서 j가 뱉은 탄식은 나의 자조와 비할 수 없었다. 테무템으로 장비를 꾸려온 내 자신을 탓한 들 무슨 소용이랴. 테무템이 진가를 아니 찢어지고 부숴지기 시작한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판초우의가 시작이었다. 우의가 다 똑같지 싶어 포장도 뜯지 않고 그대로 배낭에 넣었는데 불량품이 걸린 거다. 몸통을 고정하는 오른쪽 똑딱이 단추 2개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바람이 불면 그대로 우의가 내 면상으로 날라왔다.
소량 판매 한다고 좋아했던 지퍼락도 퀄리티가 아주 엉망이었다. 손가락 하나 잘못 긁으면 주욱 찢어질 것 같은 얇은 비닐은 그냥 비닐 그 자체였다. 오래 쓰고 다시 쓰는 지퍼락의 기능은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으이구 테무템” 내 입에서도 기어이 이 말을 내뱉고 말았다.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다시는 테무는 얼씬도 하지 말자.
어느 날, 새벽 함께 사는 j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새벽잠이 많은 j는 새벽에 가장 말이 없다. 그런 그가 텐션이 한껏 높아진 이유는 테무 때문이었다.
“나 테무에서 5만 원 무료 쿠폰이 들어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도 시작은 그랬지’ 테무가 미니멀리스트도 무너뜨렸는데 하물며 맥시멀 j 마음 속에 침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로선 j보다 내게 먼저 문을 두드렸다는 게 좀 놀라울 뿐이다. 테무가 인지하기를 내가 휴대폰으로 물건을 좀 더 많이 보는 사람으로 인지 되었나 보다. 실제로 나는 물건에 매우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반면 j는 몇 개의 전자제품 이외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새벽 운동을 가는 동안 j는 휴대폰을 내려 놓지 못했다. 순례길에서 시도 때도 없이 고장을 일으키는 테무템을 보고 내게 다시는 거기서 물건을 사지 말라던 단호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다행히 카드 결제 전, 체육관에 도착했다. 어두 컴컴한 새벽녘,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 테무의 공격을 받은 j가 트레드밀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 드디어 각성을 시작했다. 멀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난 뒤, 장바구니에 담은 10개의 테무템을 모조리 지워버린 것이다.
“내가 잠깐 돌았나봐. 그래도 대단하지 않냐? 20만 원 정도 할인해 준다는데 그거 다 없앴다고.”
‘실은 나도 그렇게 시작했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마 테무는 j가 어떤 사람인지, 그러니까 물건을 10개나 장바구니에 넣었지만 초인적인 결의로 삭제한 난이도 ‘상’에 해당하는 유저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니 테무는 열 번 혹은 스무 번 정도 j를 새벽마다 유혹할 테지. 테무는 이미 알고 있다. J의 판단력이 새벽 5-6시 사이에 가장 흐려진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