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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May 28. 2019

퇴사는 못해도 퇴사론은 꼭

퇴사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Photo by Stanislav Kondratiev on Unsplash


퇴사 전문가가 직장 적응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지난 17일 진행한 ‘사회초년생 카페_미생과 완생 사이’에 대해 한 지인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퇴사 전문가, 장려가라는 선입견 덕에 나온 오해 섞인 웃음이었다.



‘사회초년생 카페’는 직장인 명작 드라마 <미생>을 함께 보는 소셜 워칭 행사다. 미생 속 신입사원에게 공감해보고, 참여자 자신의 상황과 비교해 스스로의 문제를 돌아보도록 구성했다. 신입사원 조기퇴사 증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반영된 행사였다. 최근 1년간 신입사원을 채용한 기업 416곳 중 74.8%에서 입사 1년 미만 사원의 퇴사가 발생했고, 이 중 조기퇴사자 비율은 31.4%(2019년 5월 ‘사람인’ 조사)였다. ‘입퇴양난'의 시대, 퇴사 후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퇴사 고민은 이제 청소년기 사춘기처럼 직장인 대부분에게 친숙한 주제다. 타칭 퇴사 전문가로서 퇴사를 장려하지 않지만, 퇴사 고민은 장려한다. 한국은 퇴사해도 괜찮지 않은, 부실한 사회안전망의 나라다. 퇴사자에겐 주거난민의 불안함과 신용불량자의 공포, 대안 없는 미래라는 악몽이 친해지자고 달려든다. 그럼에도 퇴사를 선택했다는 것은 용기다. 퇴사 대신 죽을 것 같은 직장에서 버티는 선택 역시 마찬가지다. 그 용기에 대해 나는 축하할 뿐이다. 동시에 ‘나의 선택이 한국 사회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이 정리를 익명으로 공개한 글을 나는 ‘퇴사론’이라 부르는데, 퇴사론을 쉽게 쓰기 위한 질문 키트를 준비 중이다. 큰 틀에선 아래 네가지로 나뉜다. 


1. 퇴사 고민: 당신의 퇴사 유발자/요인은? 

2. 입사 선택: 이 회사를 다닌 이유, 기대했던 회사 생활은?

 3. 나만의 기준: 퇴사 고민 과정에서 알게 된 일/조직/삶의 기준은? 

4. 사회의 기준: 당신이 선택한 업계와 한국 사회에서 3번은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지?



4번은 최근에 추가한 질문이다. 2년 전 <월간퇴사>를 기획할 땐 퇴사론 저자들에게 1~3번을 상세하게 써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나는 누구나 퇴사론을 통해 회사에서 생긴 심리적 상처를 자가 치유하고, 자신만의 일철학을 갖추길 바랐다. 또한 이를 통해 자신의 문제적 패턴을 알아차리리라 기대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2030은 급하게 회사에 들어가 퇴사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 이전과 비슷한 회사에 들어가는 등, 자신을 괴롭히는 행동을 반복한다. 퇴사론을 쓰고 나면 이를 기준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후 온라인과 출판시장에서 나타나는 퇴사론 경향을 보며 부족함을 느꼈다.



퇴사론의 범위는 확대돼야 한다. 개인적인 이유뿐 아니라 사회적 맥락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퇴사에 대해 총체적인 이해와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직문화가 일차적 퇴사 요인이라면, 그 회사가 어떻게 그런 구조로 지금까지 운영될 수 있었는지 전체를 봐야 한다. 퇴사 한풀이 혹은 찬양글로는 내가 처한 문제를 이해하기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어렵다. 더 깊숙이 들어가자. 퇴사를 고민하게 만드는 조직의 문제와 업계의 구조, 사회에 대한 회고를 더 보고 싶다. 퇴사 후 창업과 이직이란 성공적인 생존기 대신 ‘퇴사 못 한 퇴사 고민생들의 직장 내 생존/분석기’를 더 보고 싶다. 퇴사 담론의 내용과 깊이가 확대돼야, 퇴사해도 괜찮은 사회가 가까워진다. 오해 말길. 퇴사 장려 운동은 아니다. 


[한겨레칼럼/2030리스펙트] 퇴사는 못해도 퇴사론은 꼭 / 독립출판 <월간퇴사> 제작자 곽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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