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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Oct 14. 2022

UX writing과 공감

내가 좋아하는 UX writing(3): 넘겨짚지 않고 공감하기

UX writing의 화두, 공감


요즘 UX writing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인간적인 글쓰기'입니다. 'UX writing을 인간적으로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적절한 답을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고(물론 인간인척 말투를 흉내 내거나 구어체를 쓰는 게 진정한 인간적인 글쓰기는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해두고 넘어갑시다.), 오늘은 '인간적인 글쓰기'의 한 요소로 일컬어지고 있는 공감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사전에서는 공감(共感, sympathy)을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또는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감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인정 욕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내 감정의 정당성과 정상성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니까요. 이 감정을 알아주고 또 비슷한 것을 경험해 보았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상대에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유대감과 친밀감을 느끼곤 하지요. 바꿔 말하면 공감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기 때문에 두 존재를 가깝게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열쇠와 같은 감정입니다. 그래서 서비스의 보이스와 톤을 정립할 때 우리 서비스에서는 사용자에 대한 '공감'을 표시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만약에 공감을 드러낸다면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공감은 사용자의 마음과 지갑을 여는 꽤나 효과적인 도구니까요.


사용자들은 이제 '공감'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HCI 분야에서 공감을 이야기하자면 그 옛날의 엘리자(ELIZA) 선생 이야기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엘리자는 1966년에 Joseph Weizenbaum이 만든 초기 자연어 처리 컴퓨터 프로그램이었죠. 지금 보면 굉장히 단순한 수준의 대화였음에도 Weizenbaum의 비서를 비롯한 사용자들은 엘리자 선생을 엄청 좋아했고, 선생에게 굉장히 의지했다는군요. 심지어 그의 비서는 자신과 엘리자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상사에게 방에서 나가 달라고 했다고 하네요.(모두 나가주세요, 우리 엘리자 샘 하고만 있고 싶어요...)


리자 언니... 언니 거기  있는 거 맞죠...?


위 대화를 보면 엘리자는 상대방의 말을 기준으로 계속 질문을 던지거나, 상대방의 감정 표현에 대해 맞장구쳐주는 전략으로 끝없이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실제 상담을 받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심리상담사의 대화 전략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보통 상담자들은 내담자의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바로 말하지 않아요. 대신 '(오은영 선생님 말투로) 그래, 그랬구나, 너는 그런 감정을 느꼈구나, 많이 힘들었지? 많이 어려웠지? 그럼 그 감정에 대해서 더 말해볼래?'와 같은 방식으로 상담을 이어나갑니다.

당시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았던 이용자들은 엘리자에게 정신과 의사에게 하듯 예의를 갖췄다고 하네요. 아마 그를 진정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지금 보면 살짝 영혼 없어 보이는 공감 표현과 추임새에서도 큰 감정적 지지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두 아시겠지만 이런 방법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1966년으로부터 60년이나 지났고, 이런 류의 룰 베이스 챗봇 대응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진심 없는 공감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눈치채버리니까요. 요즘 AI 챗봇을 표방한 서비스를 몇 개 써봐도 피상적인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인간이 진실되게 보여주는 다이내믹한 감정 표현을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엘리자가 썼던 얄팍한 말꼬리 이어가기나, 상대방이 방금 한 말을 소재로 되묻는 방식은 현대 사회에서는 영혼 없는 리액션 공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겠죠.


비슷한 맥락에서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억지로 공감하는 척하려고 하면, 그 역시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만약 공감이 어렵다면, 상대의 마지막 말을 똑같이 따라 하면서 물음표를 붙여서 상대방의 말에 흥미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세요!'와 같은  엉뚱한 팁 같은 것을 따라 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미진 씨 도망쳐! 이 사람 많이 이상해!



'많이 불편하셨죠?' 스타일의 공감 표현



이런 알림을 받으면 마음속에서 '아니, 아닌데?'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는 사람이 꽤 많을 겁니다.


이런 류의 공감 표현은  UX wrting에서도 역시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감정 넘겨짚기 의문문같은 거 말이죠. 누군가 위와 같은 노티피케이션 메시지 스타일을 인간적인 글쓰기, 좋은 UX writing 사례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곤 합니다. 물론 개인 취향이 반영된 반응이지만 누가 진지하게 이것이 정말 좋은 공감 표현 전략인지 제게 묻는다면... 음 글쎄요... 저는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네요.

시중에 나와 있는 프레젠테이션 실전서나 자기 개발서, CS 고객 대응 지침서 같은 것을 보면 '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질문하라, 사용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문문으로 드러내라'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들을 보고 저런 스타일의 메시지를 쓰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으시는 킨너렛 이프라의 마이크로카피 책에도 이런 말이 있긴 해요.


질문을 던지면 대화가 오고 가는 느낌을 만들 수 있다. 누군가는 묻고 다른 누군가가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다...(중략)... 이런 질문 형식의 문장은 사용자의 행동을 촉구하기도 한다. 인간은 대답할 수 있음에도 답하지 않은 채 질문을 남겨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킨너렛 이프라, 마이크로카피, p76)


그런데 제가 보기엔 이런 질문형 공감 표현은 몇 가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 실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은 사용자가 시니컬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겁니다. 대략 이런 상황 말이지요.


 서비스: 고객님, 그동안 이렇고 저렇고 해서 불편하셨죠? 그래서 저희 ** 서비스가 고객님에게 딱 맞는 상품을 마련했...
사용자: 아니, 안 불편했는데요?

(정적...)
서비스:...아...불편은...안 하셨구나...


고객의 경험과 감정에 정확하게 타게팅하지 못하고 섣부르게 공감 의문문을 제시했다가 '아니? 난 아닌데?'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제일 뻘쭘합니다. 유효한 대상에 적절하게 타게팅되지 않은 경우, 엉뚱한 질문을 받은 사용자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요. 심하면 '어허, 서비스가 건방지다!'와 같은 거친 생각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내 감정을 함부로 예단당했다는 느낌은 꽤나 별로란 말이죠. 그래서 이런 의문문은 예외 대상이 거의 없는 경우에만 쓰는 게 좋습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는 성인의 말씀을 잊지 맙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알고 있는 척하지 말라는 거 안 배웠냐고


둘째로 기본적으로 의문문 자체가 사용자의 피로감을 매우 높이는 문형이라 사용자 감정선을 건드리려는 상황에 별로 적합하지 않다는 겁니다. 저 위에 킨너렛 이프라가 말했듯 인간은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을 대답 안 하고는 견디지를 못해요.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대답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읽는(듣는) 순간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UI 텍스트의 의문문은 사용자를 대답하게 만들 수 있고 행동을 촉구해서 동인하게 만들 수는 있을지 언정, 그 과정이 사용자에게 유쾌, 상쾌, 통쾌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킨너렛 이프라도 저 위에 인용한 문단 바로 뒤에 '질문을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진 빠지게 하는 인터뷰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물음표(?)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인간의 에너지를 앗아갑니다. 그래서 사용자의 행동을 촉구하겠다고 또는 사용자에게 공감을 표시하겠다고 서비스 전체 텍스트의 상당수를 의문문으로 만들어버리면 정말 개피곤한 서비스가 됩니다. 


여러분, 사용자를 좀 편안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겠습니까? 서비스 이용이 정신 노역이 되면 곤란하잖아요.  요즘 너도 나도 UI 텍스트에서 의문문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생각 없이 책에 나온 대로 사용자를 내맘대로 움직여 보겠다고 의문문을 잔뜩 써서, 우리 고객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진 맙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가벼운 가이드(~해주세요, ~해보세요) 문장에 따라 시키는 대로 따라갈 때가 더 좋을 때가 많아요. 요컨대, 전체 서비스 내에서 의문문의 빈도를 적정 수준에서 조절하시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감정 공감 표현의 경우는 더더욱 의문문의 빈도를 낮게 가져가는 게 좋습니다. 물음표 범벅을 만들면 사용자가 편하게 공감을 느끼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리고 솔직히 의문문으로 공감 표현을 시작하는 거... 사실 좀 후지고 유치한 느낌이거든요. 제가 주현영 기자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녀가 희화화한 '제가 질문 하나 (paused)... 드려도 되겠습니까? 앵커님은 ~~~를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와 같은 말하기 방식이 아주 대표적으로 미숙한 물음표 공감 몰이의 예입니다. 의문문으로 화제 제시하기, 질문하며 분위기를 환기하기 같은 스킬은 어린이 초급 글쓰기를 가르칠 때 많이 알려주는 방식입니다.


고객님~ 통장이 아예 없는데 비밀번호가 두 개 노출되어서 많이 놀라셨죠?  네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다 믿으셔서 저희도 많이 놀랬습니다아~

 

세련된 공감 표현의 한 방법: IKEA 매장의 UX writing


사실 이제부터 이야기 본론인데, 위에 짤만 넣다가 글이 끝나게 생겼네요. (뭐야 이게...)

개인적으로 글을 세련되게 쓰는 기업, 공감을 구태의연하지 않게 표현하는 기업, 좋아하는 서비스 보이스로 IKEA를 꼽는다고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글로벌 기업이니만큼 강력한 현지화 전략을 수행하고 있는데, 한국어 번역에서도 본인들이 갖고 있는 Tone of Voice를 잘 살려서 기업의 정체성을 훌륭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특히 IKEA 오프라인 매장의 UX writing을 참 좋아합니다.  IKEA에 갈 때마다 상품과 글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에 어딘가에서 주웠는지 기억이 안 나는(...) 2016년도 IKEA의 tone of voice 문서를 올려둘게요. 그리고 몇 년 전에 자료 조사차 찍어둔 IKEA 매장 사진 몇 장도요.

제가 올린 사진에는 위에서 말한 엉성한 공감 물음표가 없죠?

물론 IKEA가 모든 매장 텍스트에서 의문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꽤 적은 비율로 쓰고, 사용자 감정을 예단하는 용도로는 거의 쓰지 않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지금 IKEA 한국어 사이트에 들어가 보아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텍스트 말이죠.

시간 여유가 있다면 IKEA Tone of Voice 문서도 한 번 훑어보시고, 아래 사진 속 텍스트도 찬찬히 읽어보시면서 넘겨짚지 않고 공감을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IKEA 스타일의 공감 UX writing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저를 사로잡은 한 커머스 앱의 버튼에 대해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직도 본론으로 못 들어간 거 실화냐...)



이런 IKEA의 목소리와 말하기 방식은 어떤 느낌을 주나요?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용자와 공감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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