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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기고가 강진우 Mar 11. 2018

#2. 그 남자와 그 여자의 빅뱅


1. 

결혼은 남자의 로망이었다.


외로움을 못 견디는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무엇보다 평생을 홀로 서 있기에는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퍼즐 조각처럼 여기저기가 움푹 파이고 불쑥 나온 남자를 완벽하게 둥근 원형으로 감싸 줄 또 다른 퍼즐 조각이 이 세상 어디엔가 살아 숨 쉴 것이라 여겼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사람을 만나 볼수록 이 생각이 오아시스 콤플렉스에 가깝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긴 했지만. 


여기에 결코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가 더해지자, 결혼을 인생의 중대한 목표로 잡았던 이 남자는 결국 결혼을 반 포기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세 번의 소개팅에서 프리랜서를 대하는 여자들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온몸으로 겪어 낸 뒤, 남자는 마침내 결혼을 단념하기에 이르렀다.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 씨발!”


호기로운 목소리와 달리, 남자의 눈가는 보슬비 머금은 풀잎처럼 한없이 촉촉했다.




2. 

여자의 로망도 결혼이었다.


열여섯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다. 스무 살 넘어가자마자 서울로 상경,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특유의 비글미 덕분에 친구들도 넘쳤건만, 우정 이상의 따스한 무언가에 항상 갈증을 느꼈다. 오롯이 내 편이 되어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단어의 팔로워가 됐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가, 어떤 이를 꽤 오래 만났다.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끝내 인연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여자는 다시 혼자가 됐다. 헛헛했지만 한편으로는 개운하기도 했다. 당분간 일에 집중하면서 살아보자 싶었다.


“남자야 널리고 널렸는데, 뭐!”


당당하게 외쳤건만, 원룸 벽을 때리고 돌아오는 공허한 메아리와 스멀스멀 파고드는 외로움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3.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만났다. 


열여섯 시간 동안 통화하고 난 뒤였다. 소개팅 전에 이토록 전화기에 불나게 통화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어려운 걸 둘이 해냈다. 그만큼 얘기가 잘 통했다. 새벽이 두 사람을 감쌌고, 그 시간 특유의 감성에 취해 온갖 사연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꺼내 놨다. 패 까고 화투 치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그게 약점으로 안 보였다. 서로 눈치를 살살 보면서 적절하게 내주고 따기를 반복했다. 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청바지를 입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여자는 남자의 키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너 참 예쁘고 귀엽다!”


구워진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 내내,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수작을 부렸다. 여자도 적극적인 남자가 내심 괜찮았다. 삼겹살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열 시간 넘게 통화하고도 못 다한 이야기가 남았는지, 두 사람의 대화는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고도 모자라 내일 또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남자와 여자는 떨어져 있는 몇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느꼈다는 점이다. 남자는 잊고 지내려 노력하던 또 다른 퍼즐 조각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 남자’와 ‘결혼’이라는 단어 사이에 ‘=’를 넣어 보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우주에서 내 짝이 될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다는, 막연하기 그지없지만 또한 확신에 찬 운명론이 두 사람 마음속에 깃들었을 따름이다.


다음날,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손깍지를 꼈다. 둘만의 소우주가 빅뱅을 이룬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처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주고받기 시작했다.


“오빠,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야?”

“글쎄, 어쨌든 너랑.”

“음, 나도 어쨌든 오빠랑.”






글_강진우(feat. 오규란)

그림_오규란



자유기고가 강진우

blog.naver.com/bohem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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