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상사의 비애
오랜만에 지구별 교감협의회를 했다.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했는데 한 세 달 만에 만난 것 같다. 만나자마자 이야기의 봇물이 터져 나온다. 교감협의회는 특징이 있다. 교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학교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그래서 교감들끼리 모일 수 있는 교감협의회에서 그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각종 속상한 일들을 누구에게 질세라 서로 이야기하기 바쁘다. 한 사람이 이 이야기를 꺼내면 너도 그러냐 나도 그렇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온다.
교감자격연수 축하 자리에 간 적이 있다.
"교감되면 선생님들이 같이 안 놀아줘요!"
"교감은 교감들끼리 놀면 되죠!"
학교는 동학년 별로 돌아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동학년에 끼지 못하는 교감과 교장은 어디에도 낄 자리가 없다. 그래서 같은 교감들끼리 모였을 때 겨우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몇 년 전 학교에서 친목여행을 갔을 때 점심시간이 되자 모두 소속 학년 부장을 챙기기 바빴지 교감에게는 같이 식사하러 가자고 권하는 선생님이 없었다. 연세가 좀 있으신 선생님들은 그나마 같은 동년배이고 유교적인 전통을 따르던 시대에 사셨던 분들이라 그나마 교장, 교감을 먼저 챙겨주신다. 그러나 젊은 선생님들은 얄짤없이 자신이 속해있던 동학년의 부장교사만 챙기기 바쁘다. 바로 옆에 교감이 있어도 같이 식사하러 가자는 말도 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교장, 교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잘 모르다가 이렇게 학교를 떠나 친목여행이라도 갈 때면 확연히 드러난다. 교감, 교장이 왕따라는 사실이!
교감협의회가 끝나고 전에 같이 근무하던 교감선생님을 학교까지 모셔다 드렸다.
"요즘에 교장선생님이 자꾸 소리를 지르셔!"
"그러셔요? 왜 그러실까요?"
"코로나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러신가 봐!"
교감, 교장은 학교에서 같은 왕따이지만 교장이 호통치면 참고당해야 하는 건 교감이다. 같은 왕따이지만 조금 더 불쌍한 건 교감 쪽이다. 교장 눈치도 봐야 하고 선생님들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감은 짧게 할수록 좋다는 말까지 나왔다.
어느 자리인들 힘들지 않은 자리가 없겠지만 낀 상사인 교감 자리는 참 외롭고 힘든 자리임에 틀림없다. 교감인데 좋지 않냐고 하지만 학교에서 속내를 터놓을 사람 하나 없다. 겉으로는 고고한 척 교무실을 지키고 있지만 최전선에서 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교무실에서 중심을 지키면서 학교의 살림살이를 잘 돌아가도록 조절해야 한다. 교감을 맏며느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시어른에 해당하는 교장선생님과 선생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학교가 무탈하게 잘 돌아가도록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맏며느리의 일 센스와 후덕함,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모르는 척의 고단수의 능구렁이 기질까지 필요하다.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 치이고 낀 상사의 서러움, 아슬아슬 줄타기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