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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May 12. 2023

정유미는 아니지만, 나도 김밥왕이 될 거야~

마흔다섯_아들의 봄소풍 도시락을 준비하는  자세

 얼마 전 tvn에서 방영한 '서진이네'에서 김밥을 담당했던 배우 정유미는 김밥을 말며 이런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나는 김밥왕이 될 거야~". 그 노랫말이 나에게도 저절로 노동요처럼 불린 날이 있었으니 바로 아들의 소풍날 새벽이다.



 코로나가 사실상 엔데믹에 이르면서 아이들의 봄 소풍도 재개되었다. 오랜만에 소풍다운 소풍을 가게 된, 올해 중1 아들이 기어이 도시락을 싸가겠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현장에 가서 사 먹는 아이들이 효자라던데...) 그래, 소풍에 김밥이 빠질 순 없지. 아들의 완벽한 봄소풍을 위해 나는 오랜만에 김밥을 말기로 했다.


 막상 김밥 도시락을 만들어 주기로 하고 보니, 어떤 김밥을 만들어 줄지 고민이 되었다. 과거에 만들어 준 도시락 사진을 찾아보았다. 코로나 때문에 초등 6년 동안 소풍을 세 번 밖에 가지 못했더라. 그중 2학년 때 도시락 사진은 없고, 두 번의 소풍 도시락 사진만 핸드폰에 남아 있었다.

 첫반째 도시락_초등1학년  아들을 첫 소풍에 보내고, 걱정& 초조한 맘을 남은 재료로 꾸미기 놀이를 하며 달랬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_아들의 최애 반찬이지만 평소 잘 먹이지 않는, 스팸으로 만든 김밥과 미니언즈 캐릭터로 아들맞춤 도시락을 만들었다.


 초등 저학년 때야 귀여운 캐릭터 김밥이면 되었지만 중학생이 된 아들의 도시락에 꿀벌이며 병아리를 장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반 김밥을 말아주기엔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자녀는 소중하겠지만, 많이 아팠고, 여전히 아프고,  온갖 힘겨움을 헤쳐 온 우리 아들은 정말 소중하니까 김밥 하나도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너무 아기스럽지 않고, 스페셜하면서도 까다로운 아들의 입맛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김밥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구절판 김밥이 생각났다. 그래, 바로 그거야!


 소풍전날 간단히 장을 보고 김밥 재료를 사두었다. 최소한 9가지의 재료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8종류밖에 준비하지 못했다는 걸 밤늦게 미리 재료를 손질해 놓으려다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다. 되든 안되든 일단 고고! 단무지, 오이, 노랑 흰색 달걀지단, 당근, 어묵, 햄, 맛살을 얇게 채 썰고 볶을 것들은 미리 볶아 두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한 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누웠는데, 일찍 못 일어날까 봐 잠을 설쳤다. 오전 6시에 "삼겹살 김밥을 싸려는데 장 볼 때 샀던 깻잎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혹시 깻잎이 있냐"는 뒷집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얘는 자고 있음 어쩌려고 이 시각에 전화를..." 투덜거렸지만 덕분에 잠에서 확 깼다.  뭐, 새벽기상이야 소풍 도시락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기본자세 아니겠는가. 부랴부랴 어제 초벌구이 해 놓은 재료들을 프라이팬에 데우고, 김밥용 김을 잘라 김밥 말 준비를 하였다.


 구절판 김밥은 얇게 채 썰어 놓은 각각의 재료를 4 등분한 김에 말아야 한다. 그런 다음 2등분 한 김에 밥을 얇게 올리고, 김옷을 입은 각각의 재료를 올려 다시 돌돌 말아주면 된다. 9개가 아닌 8개의 재료만으로 김밥 속을 채우려다 보니 혹여 빈자리가 생겨 못난이 김밥이 되지는 않을까, 나는 온 힘을 다해 꾹꾹 누르며 김밥을 말았다. 그런데!


 단 몇 개의 김밥을 말았을 때, 나는 큰 위기에 봉착했음을 깨달았다. 바로 김밥의 김이 너무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구매한 김밥 김은 달랑 10장. 오 마이갓, 왜 이걸 생각 못했지? 아직 슈퍼는 문 열 시간도 아니고 어쩌나.  나는 급하게 싱크대 식료품 칸을 열어 김 비슷한 것이라도 있나 찾아보았다. 그러다 유통기한이 아슬한, 쓰다 만 김밥김을 발견했다. 오예! 

깊숙한 도시락통에 3층으로 김밥을 담았다. 입 짧은 아들이 과연 이 적은 양의 김밥을 다 먹고 올까? 기대하며 아들의 최애 과일인 메론을 후식으로 넣었다.


 그리하여 아들의 김밥통에 담을 수 있을 만큼의 김밥이 말아졌다. 칼에 참기름을 바르고 김밥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잘랐다. 알록달록 예쁜 모양의 김밥을 보니 뿌듯했다. 사실 꼬투리 김밥이 너무 많이 나왔고, 도시락통에 넣을 수 있을, 맘에 드는 김밥은 몇 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먹는 양이 많지 않은 날씬이 아들이 배불리 먹을 정도의 양은 만들어졌다. 시간도, 김도 예상보다 많이 필요했다. 2시간여 정성 들여 김밥을 말고 나자 아들이 씻고 밥 먹을 준비를 했다.


"굳이 왜 그런 김밥을 만들어?"


"뭐?"


"아니 난 엄마가 고생하니까 그러지..."


 아들의 무덤덤한 반응에 몇 시간의 노력이 쓸데없이 느껴졌다. 내가 이 아이를 잘못 키웠나... 이렇게 공감력이 없나... 온갖 생각이 삽십간에 밀려왔다. 흑, 아들 그러기야... 


엄지 척.


 엄마의 분위기를 살피던 아들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듯 애교 섞인 표정으로 엄지 척을 해 주었다. 그제야 마음이 스르르... 에잇 모르겠다. 특별한 도시락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예쁘고 맛있고 그런 도시락을 떠나 도시락에 담긴 정성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뭐 도시락하나에 무슨 의미씩이나 부여하냐 하겠지만, 아들의 소풍 도시락을 준비할 때마다 내 마음의 자세는 그러했다. 온 맘을 다해 키운 아들이다. 그 아들이 먹는 도시락은 엄마의 정성최고로  담긴 것이었으면 했다. 어느 엄마의 그것보다도 사랑이 듬뿍 담겨있는 도시락. 그래서 매번 소풍 도시락을 준비할 때마다 없는 솜씨 다 부리고, 정성을 가득 담아 도시락을 만들었던 것이다. 도시락을 먹는 그 순간, 아들이 엄마의 사랑을 못 느끼더라도 어쩔 수 없지. 그래, 그냥 맛있게만 먹어준다면 그걸로 된 거다.



 소풍을 다녀온 아들의 가방을 열자, 도시락 통에 두 점의 김밥이 굴러다녔다. 너무 맛있었지만 배가 불러서 다 먹지 못했다며 아들은 미안해했다. 김밥 12알도 다 먹어내지 못하는 날씬이 아들의 좁은 위가 아쉬웠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니 피로가 싹 달아나는 것 같았다. 보람되었다. 마치 내가 김밥왕이 된 기분 들고 말이다.

 상기된 얼굴로 돌아와 씻기 무섭게 곯아떨어진 아들을 보니 오랜만에 간 소풍이 꽤 즐거웠나 보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가득 먹었으니, 푹 자고 쑥쑥 크렴.

 내년 소풍엔 어떤 도시락으로 정성을 팍팍 담아볼까? 내일도 김밥왕이 되고 싶은, 엄마의 고민은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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