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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May 09. 2023

낡은 남편의 청바지로 치마를 만들었습니다.

마흔다섯_허리둘레까지 맞추어 사는 인생이란.

 주야장천 청바지만 입던 남편이, 더 이상은 회생불가라며 무릎이 나올 대로 나온 청바지를 재활용에 버려달라고 던져주었다. 목 부분이 너무 닳아 매장에 가져가 as를 하기에 창피한 수준의 남방도 버려졌다.

 청바지도 셔츠도 살 때는 비싸게 산 옷들이다. 그냥 버리기엔 아까워 심심한 어느 날 판 한번 벌여 보았다.                                                                              


고백하건대, 나의 의류 리폼 역사는 중학생 때, 가난 때문에 시작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은 옷을 자주 사 주지 못했고 나는 철마다 거의 단벌패션을 선보여야 했다. 이런 나를 보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한마디 하였는데, 그 말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고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어야 할 때마다 우울감이 몰려왔던 것 같다. 그 말은 사춘기 시절 나의 재능을 꽃피우게 한 몇 마디 말 중 하나이다. 


 중학생 시절 아빠, 엄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친할머니가 우리를 돌보며 도시락을 싸 주시게 되었다. 할머니가 가장 맛있게 하는 음식은 무채 무침이었고, 그랬기에 늘 도시락 반찬은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점심 메이트에게 너희 집엔 무 채 반찬만 있냐~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에게 다른 반찬을 해달라 말을 차마 하지 못하여 그때부터 김치 볶음을 스스로 하기 시작하면서 내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이와 일맥상통하는데,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친구들을 만나야 했던 어느 날, "너는 그 옷을 참 좋아하나 봐?" 라던 친구의 말이 조롱으로 들린 이후, 나는  늘 입고 다니던, 언니에게 물려받은 낡은 옷 대신에, 현악부 단복인 검정 조끼의 단추를 다른 것으로 달아 뉴 패션을 선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설펐을 것 같은데, 여하튼 그때부터 자르고 붙이고, 나의 리폼 역사가 시작되었다. 피부가 아픈 아이를 낳고 나서는 환경이 나를 재촉하여 미싱을 배워본 적 없는 내가 미싱으로 아이의 옷을 만들어 입히는 정도까지 되었고. 그러니까 가난과 질병이 나의 한 가지 재능을 키운 셈이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남편의 청바지는 청치마로 변신했다. 체크무늬 셔츠를 잘라 모자라는 공간에 덧대고, 디자인을 고려해 같은 천으로 옆 트임을 넣었다. 무릎이 너무 늘어나서 만든 보람 없이 못난 외형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럭저럭 입을만한 청치마로 변신하였다. 이 청치마의 뽀인뜨는 바로~ 

 요 자전거 탄 사람~ ㅎㅎ 이 상표가 뭐라고, 버리기 아까워 리폼을 결정했다지.

그런데, 청치마로 변신한 남편의 청바지를 가만 바라보다가 헉하고 놀란 지점이 있었으니, 바로 청바지의 사이즈다. 결혼 전에 비해 20킬로그램 증량된 남편의 몸무게에 걸맞은 32 사이즈의 청바지! 그것이 결혼 후 15킬로그램 증량된 내 골반에 딱 맞았던 것이었던 것이었..... 끄응.


 몸매까지 닮아 갈 필요는 없는데... 너의 눈~ 코~입~ 어느 하나 좋은 게 없는데 왜!!! 발맞추어 살이 찌더니 허리 사이즈까지 닮아가는 것인지.  이 허리를 도대체 워떻게 해야 할는지. 리폼한 청치마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체크무늬 치마 아래로 보이는 퉁퉁한 발로 시선이 향했다. 살찐 내 몸이 미워졌다. 나는 애써 리폼한 청치마를 돌돌 말아 옷장 깊숙이 넣어 버렸다. 그리고 버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허리 사이즈가 남편을 닮아서 그런 걸까? 청치마 말고, 남편을 버리고 싶은 건 아니고? 헛. 


 어쩌다 보니 허리둘레까지 맞추어 사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왕 맞추어 살 거라면 날씬하게 맞추어 살자. 청바지 리폼은 난데없는 다이어트 욕구를 불러일으키며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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