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_허리둘레까지 맞추어 사는 인생이란.
고백하건대, 나의 의류 리폼 역사는 중학생 때, 가난 때문에 시작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은 옷을 자주 사 주지 못했고 나는 철마다 거의 단벌패션을 선보여야 했다. 이런 나를 보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한마디 하였는데, 그 말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고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어야 할 때마다 우울감이 몰려왔던 것 같다. 그 말은 사춘기 시절 나의 재능을 꽃피우게 한 몇 마디 말 중 하나이다.
중학생 시절 아빠, 엄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친할머니가 우리를 돌보며 도시락을 싸 주시게 되었다. 할머니가 가장 맛있게 하는 음식은 무채 무침이었고, 그랬기에 늘 도시락 반찬은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점심 메이트에게 너희 집엔 무 채 반찬만 있냐~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에게 다른 반찬을 해달라 말을 차마 하지 못하여 그때부터 김치 볶음을 스스로 하기 시작하면서 내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이와 일맥상통하는데,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친구들을 만나야 했던 어느 날, "너는 그 옷을 참 좋아하나 봐?" 라던 친구의 말이 조롱으로 들린 이후, 나는 늘 입고 다니던, 언니에게 물려받은 낡은 옷 대신에, 현악부 단복인 검정 조끼의 단추를 다른 것으로 달아 뉴 패션을 선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설펐을 것 같은데, 여하튼 그때부터 자르고 붙이고, 나의 리폼 역사가 시작되었다. 피부가 아픈 아이를 낳고 나서는 환경이 나를 재촉하여 미싱을 배워본 적 없는 내가 미싱으로 아이의 옷을 만들어 입히는 정도까지 되었고. 그러니까 가난과 질병이 나의 한 가지 재능을 키운 셈이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남편의 청바지는 청치마로 변신했다. 체크무늬 셔츠를 잘라 모자라는 공간에 덧대고, 디자인을 고려해 같은 천으로 옆 트임을 넣었다. 무릎이 너무 늘어나서 만든 보람 없이 못난 외형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럭저럭 입을만한 청치마로 변신하였다. 이 청치마의 뽀인뜨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