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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May 09. 2023

꽃아저씨 찬스, 만원의 행복.

마흔다섯_행복이라 쓰고, 절반의 슬픔이라 기록한다.

 우리 동네엔 매주 수요일마다 꽃아저씨가 찾아온다. 꽃 시장에서 도매로 꽃을 한가득 떼 오시는데, 꽃 종류도 다양한 데다 꽃집에서는 상상도 못 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동네 여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거리에 개미 한 마리 찾아보기 힘들던 코로나 초창기에는 꽃 아저씨도 어쩔 수 없이 동네를 찾아오지 않으셨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차츰 꽃 아저씨의 인기는 코로나 이전 보다도 더 치솟았다. 커뮤니티를 통해 이웃 동네에까지 소문이 나면서, 답답한 마음에 눈이라도 환하게 해 줄 꽃을 찾아 여인들이 줄을 이었다. 급기야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그 많던 꽃이 동 나는 사태 이르렀다. 아마도 꽃아저씨가 훗날 이때를 회상해 본다면, '그때 참 좋았지...' 하실지도 모르겠다. 수요일마다 약국 근처 편의점 벽에 쌓아놓은 꽃 더미 옆으로 줄줄이 늘어선 여인들의 행렬이라니... 마스크 5부제를 하던 시절 하염없이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기다리던 때와 오버랩되면서 그 참...  그래도 코로나 덕보는 사람이 있네, 피식. 힘없는 웃음이 나왔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마침 아이 학교도 단기 방학을 맞이하였다.  친정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표를 예매고 보니, 수요일. 금요일에 기차를 탈 계획인데, 생화가 이틀은 충분히 버티지 싶었다. 나는 아침 일찍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꽃아저씨를 만나러 편의점을 향해 경보를 하였다. 코로나 '시즌'을 지나서 그런지 지난해만큼 긴 줄이 늘어서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기 3번은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꽃구경을 하며 마음속으로 어떤 조합의 꽃을 구매할지 결정하였다.

 두 종류의 카네이션이 있었는데, 빨간색 오리지널 카네이션은 작은 다발이 1만 원이었고, 분홍색 카네이션은 한 다발 7천 원, 그 옆에 하얀색 델피늄으로 보이는 꽃이 한 다발 5천 원이었다. 나는 분홍색 카네이션과 흰색 델피늄 한 다발씩 총 1만 2천 원어치를  구매했다.  



교회 구역모임에서 한 집사님이 팔순의 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함께 축하해 주시길 바라며 식사 자리를 마련하셔서, 선물용으로 꽃아저씨께 구입한 꽃의 반을 나누어 꽃 한 다발을 포장했다.

 

그리고, 친정엄마께 가져다 드릴 꽃다발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하나 포장하고, 늘 조화만 가져다 드리던 아버지 영정 앞에도 괜히 생화 하나 놓고 싶어서 코사지 크기의 카네이션을 하나 포장했다.


일전에 아들 초등학교 졸업식 때 꽃다발 값이 후덜덜 하게 비싸 엄마표로 만들어보겠다고 구입했던 꽃 포장지를 총동원했다. 그때 꽃 포장을 연습했던 보람도 없이 몇 개의 포장지를 구겨 버리고 나서야 그나마 보기 밉지 않게 포장을 할 수 있었다. 완성된 꽃다발을 보니 뿌듯했다. 만원의 행복이 따로 없었다. 정확힌 만 이천 원의 행복이지만.^^

 생신초대에 가는 길. 색종이로 카네이션 접기를 배워 꽃다발 케이스를 장식하고, 꽃다발을 담아 조심조심 들고 가는데, 괜히 가슴이 벅차고 기분이 좋았다. 이 꽃을 받으시는 분도 예상치 못한 꽃 선물에 한껏 기뻐해 주셨다. 두배로 행복했다.


 친정으로 내려가는 날엔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투명한 백에 꽃다발을 넣고, 그 위를 투명한 포장지로 둘러 꽃이 비에 맞아 무너지지 않게 애썼다.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짐가방, 그리고 꽃다발까지 야무지게 챙겨 들고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탄 두 시간여 동안 나의 관심은 오로지 꽃이 시들지 않게 하는데 초집중되었다. 그 결과, 꽃다발은 내리치는 빗발과 기차여행에도 싱싱하게 살아 친정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늘 돈 아깝게 꽃선물을 왜 하냐 잔소리하시던 엄마도, 웬일로 기분 좋게 꽃다발을 받으셨다. 꽃을 꽃병에 꽂으면서도 애써 한 포장을 풀어야 하는 것에 미안해하셨고, 꽃 덕분에 방 안이 환해졌다고 웃으셨다. 엄마가 웃으셔서 행복했다. 웃을 일 하나 없던 우리의 일상에 그래도 미소 지을 일이 생겨서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카네이션 코사지를 주인공에게 선물할 차례다. 엄마 방 선반에 놓여 있는 아빠의 영정 앞에 카네이션을 놓았다. 여전히 살아계신 것 같이, 믿어지지 않는 아빠의 부재. 너무나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아빠가, 시간을 나누어 겪어야 했을 아픔을 집약적으로 한 번에 겪고 떠난 아빠가, 애달프도록 보고 싶어 눈물이 툭. 터졌다.


그러고 보니 꽃 아저씨로 부터 얻은 내 만원의 행복은 절반의 슬픔이다. 아버지가 살아서 이 꽃다발을 받으셨다며 내 만원의 행복이 열 배, 백 배쯤은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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