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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Mar 27. 2023

내 방의 작업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고민이 되는 밤이다. 무엇이라도 쓰고 싶어 워드를 켰는데. 밖에는 비가 내린다. 낮꽃향 티 한 잔을 내려 마신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마음으로 방에 작업실을 꾸렸다. 흰 이케아 책상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맥북 에어를 놓으니 제법 작업실 같다. 책상에 앉으니 조금 허전해서, 이전 작업실에 책상 위에 두었던 작은 스투키 화분과 제법 키가 큰 몬스테라 화분까지 가져왔다. 침대와 책상이 있는 공간을 분리하면, 조금이나마 더 작업실답지 않을까. 


내가 머무르던 지난 공간들을 떠올려 본다. 성내동 작업실에서의 11개월, 우이동 작업실에서 9개월. 공유 오피스에서의 3달. 나는 그 공간에서 무엇이 되고자 했던 걸까? 한 걸음 한 걸음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난 4년간 5권의 책을 냈다.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멜버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으며, 책을 내고 강연도 했다. 가방 하나, 유럽』의 첫 원고를 쓰던 건 네덜란드에서 체코 프라하로 가던 비행기 공항에서 처음 노트북을 꺼내들면서였다. 겨울 까미노 그림일기』의 그림 원고는 낮에 걷고 밤에 숙소에서 그렸다. 멜버른 드로잉은 호주의 셰어하우스 방에서였다. 셧다운으로 외출을 잘하지 못하던 그때, 처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건 정말로 즐거운, 설레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책 편집은 수많은 카페에서 했다. 강연 준비는 집에서 했고, 강동의 작업실 입주했을 때는 정말 너무나도 벅찬 순간이었다. 얼떨결에 공유 오피스도 잠깐 경험해 보고.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아는 작가님이 계시는 우이동 작업실에 연락을 했다. 그곳에 자리가 없다는 말을 들으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고, 집에 작업실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예술하는 습관이라는 책을 읽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자기의 집을 작업실 삼아 글을 쓰던 것을 보고, 감명이 깊기도 했다. 


스무 살 이후 성인이 되어서 나의 삶은 꼭 절반으로 나뉘는 것만 같다. 대학생 시절의 나와 작가가 되기 위한, 그리고 그로 활동한 나는 나의 20대를 절반씩 가져갔다. 그 두 시절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듯한, 완전히 다른 결의 시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출판으로 강의를 하며 강의 계획서를 짜고, 강의안을 만드는 것이 대학 시절에 배웠던 일이었다. 교안과 수업 계획서를 짜던 사범대생이었던 나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일이었던 것이다. 돌아 돌아, 아무것도 몰라 맨땅에 헤딩하던 ‘출판’의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와 출판을 교육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은 늘 내 적성에 맞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국어나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교육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고, ‘교육공학’이란 학문을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는 내내 HRD 전문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기업 교육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내내 생각했다. 어느 중소기업의 HRD 파트에서 일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취업을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내 어학성적은 충분히 좋았고, HRD 회사에서의 인턴십, 충분한 전공에의 호기심과 열정, 진실된 대외활동 등. 딱히 취업을 가로막을 일은 없었다. 나 자신 말고는 말이다. 


주변에 때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이 길까지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모든 건 나의 선택이었고, 굳건한 결심이었다. 책을 출판하겠다는 의지, 글을 쓰겠다는 의지. 이 길을 걸으며 돈을 벌겠다는 의지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순간순간 선택한 결과다. 책을 한 권 내고, 취업을 할까 고민하다가 또 다음 책을 낸다. 다음 책을 내곤, 또 취업을 할까 고민한다. 그러나 또 당장 돈 벌 수 있는 일로 돈을 벌고, 나는 또 책을 쓴다. 그러다가 결국 책으로 돈을 벌고, 책 쓰기를 가르치며 돈을 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오지 않을 행운이기도 하지만, 내 부던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는 지난날, 마음을 솔직히 들여다볼 용기가 없어서 돌고 돌아온 것 같다. 언젠가는 나의 일상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하고 자신이 없었다. 나의 기행담을 쓰는 건 누구에게나 호불호가 없을 이야기라 생각했다. 강아지 이야기 또한 말이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은 나의 욕구가 글에도 반영이 되었던 걸까? 어두운 글을 쓸 자신, 나의 이야기를 솔직히 내보일 자신. 


지금 다시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은 건지,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그렇지만 글을 쓰지 않으니 자꾸만 책무를 회피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노트북 앞에 앉아 무엇이라도 끄적이며, 글자수를 채우고 있다. 어느 작가는 하루에 7천 자를 적어야겠다고 스스로의 약속을 함으로써 놀라운 글쓰기 효율을 냈다고 한다. 때로 숫자로 된 목표가 효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 나에게도 그런 글자수 채우기로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단점은 자꾸 워드의 글자수를 확인하고 있다는 것 정도?


더 이상 외부의 공간을 눈 돌리지 않을 때 찾은 나의 작업실 안에서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써 내려가야겠다. 하루에 2천 자든 3천 자든. 그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오늘의 나를 기록해야겠다. 그렇게 모인 글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면 내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겠지. 팔리기 위한 글이 아니라 당분간은 내가 즐거운,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결국 글을 쓰다 보면,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다가도 지금의 나에게 돌아오곤 할 테니까. 


2022년 3월의 어느 날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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