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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Dec 23. 2023

9. 경제성장 말고, 탈성장!


탈성장이란 용어는 1970년대 자원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던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자본주의의 한계 넘어 새로운 문명을 모색하는데 일생을 바친 생태주의 사상가 앙드레 고르스(André Gorz)는 당시 "지구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질적 생산에 있어서 무성장, 나아가 탈성장이 필요조건"이라고 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1972년은 *로마클럽에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란 환경 분야의 대표적인 고전을 출간하기도 한 해입니다. '성장의 한계'는 전 세계 인구와 자원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100년 이내에 경제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이 보고서는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there is no infinite growth on a finite planet)”는 생각을 대중화시키며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로마클럽은 1970년 세계 25개국의 과학자와 경제학자 등이 창립한 민간단체인데요, 1968녀 이탈리아 로마에서 처음 회의가 열렸기 때문에 로마클럽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실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란 숫자로만 대표되는 경제성장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아시겠지만 GDP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량만을 측정할 뿐이어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같은 사회적 비용을 포함하지 않거든요. 사람들에게 아무리 좋은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더라도 금전 거래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역시나 계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로버트 케네디가 말했듯, GDP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의 생산량만을 측정할 뿐입니다.


이어 1987년 유엔 산하 세계환경개발원회(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는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하며,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용어를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 정의하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당시 위원장을 맡고 있던 노르웨이 브룬트란트 수상의 이름을 따 '브룬트란트 보고서'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탈성장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일들이 모두 프랑스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다른 유럽 지역으로 번져나갔다는 것인데요. 2001년 즈음 지속가능발전에 명시적으로 대항하는 용어로서 '지속가능한 탈성장(décroissance soutenable)'을 프랑스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어 대표적인 탈성장 이론가이자 경제학자인 세르주 라투슈(Serge Latouche) 등이 적극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1회 국제 탈성장 컨퍼런스(International Degrowth Conference)'라는 이름의 첫 회의가 개최되었는데요. 같은 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탈성장은 본격적으로 설득력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국제 탈성장 컨퍼런스는 이후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그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고, 2023년인 올해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9번째 국제 탈성장 컨퍼런스가 개최되었습니다. 2024년에는 스페인 폰테베드라에서 개최될 예정이고요. 하지만 여전히 탈성장에 대한 논의는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학술 분야나 시민사회운동에 국한해 일어나고 있어 그 존재감은 여전히 미약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는 건 바로 2022년 나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에 탈성장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보고서는 앞서 말씀드린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의 탈동조화(역시나 성장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한 녹색성장을 포함하여)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경제 성장에 종속되지 않는 번영의 대안으로 탈성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IPCC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와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유엔 차원의 문서로 수 백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여 치열한 논의를 통해 작성되는데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와 같은 협상 과정에서 근거자료로도 활용이 되는 만큼, 이러한 보고서에 탈성장이 언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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