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원문 번역
2023년 12월 17일 오전 7시 00분
제시 제제브스카 스티븐스, 소설가 및 비평가
2023년 8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개최된 제9회 “국제 탈성장 컨퍼런스(International Degrowth Conference)”는 도발과 함께 시작되었다. 기조연설자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신임 부의장 다이애나 우르게-보르사츠(Diana Ürge-Vorsatz)는 청중들에게 두 가지를 요청했다. 첫 번째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데는 전 세계적인 노력이 필요한 만큼 모든 정부와의 협력 방법을 찾을 것, 두 번째는 "더 좋은 단어를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일 수 있는 탈성장을 학문적으로 논의하는 안방과도 같은 곳에서 하기에는 거의 신성모독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유럽의 증가하는 소수 좌파들에게 "탈성장(degrowth)"은 그들을 지루하게 만들기보다 매력적인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 배너 아래 존재하는 다양한 기후 운동은 학계, 청년 활동가,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유럽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 5월 제2회 “성장을 넘어 컨퍼런스(Beyond Growth Conferecne)”를 개최했는데, 이번에는 선출된 의원들로부터 역대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주최자이자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한 필리프 람베르츠(Philippe Lamberts, 벨기에 녹색당)는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에 "거물급 실세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의회 건물은 7,000명에 이르는 활동가와 NGO, 학자 및 선출 관리자들로 가득 찼고, 자그레브에 모인 사람들은 브뤼셀의 이러한 노력을 놀랍고도 중요한 변화라고 규정하였다. 로잔 대학에서 기후 변화의 사회, 경제적 영향을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줄리아 스타인버거(Julia Steinberger)는 "그리고 그들은 젊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에너지는 탈성장 운동으로 이어져, 여러 베테랑들이 말하길 탈성장 운동은 초창기의 초라한 시작을 넘어섰다고 한다. 2014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한 자생적 모임에서는 참가자들이 직접 식사를 준비했던 반면, 올해 회의는 자그레브시가 공동 후원하고 시장과 IPCC 대표들이 참석하였으며, 비건 카나페가 전문적으로 제공되었다.
직접 민주주의와 반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탈성장 운동은 전후 경제학의 핵심 교리, 즉 탄소 배출량 증가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GDP 증가가 사회 및 개인 복지의 진전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도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비판의 함의는 각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요구를 훨씬 뛰어넘는다. 탈성장론자들에게 기후 위기는 사회적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히 부유한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사회경제적 질서를 재설계하는 것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이 급진적인 프로그램에 갑자기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유럽이고, 왜 지금일까?
답은 분명한지도 모른다. 자그레브에서 회의가 열린 2023년 8월 말은 지구 전체적으로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 기록을 갈아치운 시기였다. 최근 탈성장 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탈성장 운동의 주요 인사들이 나흘간 반복해서 강조했듯, 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후 변화의 미래 영향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진 청년층이다.
현 상황은 이 젊은 지지자들에게 환멸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한 결과다. 기조연설에서 우르게-보르사츠가 BAU(business as usual) 시나리오 하에서 2070년까지 인간이 살기에 부적합하게 될 지구의 비율을 보여주는 열지도(heat map)를 그려 보여줬을 때,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이 특별한 청중들은 이미 이전에 본 적이 있는 데이터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좋은 단어를 찾아보라."는 제안은 비웃음을 샀다.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탈성장은 단순한 유토피아적 슬로건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도발하는 환경적 필요성이며,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다.
정책 목표로서의 경제 성장을 포기하라는 이러한 급진적인 요구와 함께, 많은 경제학자들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저절로, 그리고 주류의 정치적 의지에 반하여 자본주의가 둔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해 왔다. 이러한 경향을 '세속적 침체'라고 부르는데, 이는 (더 매력적인 용어를 찾으려는 우르게-보르사츠의 제안을 충족시키지 못하지만) 고도로 발전한 경제에서 가까운 미래에 성장 정체가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한다.
디트리히 볼라트(Dietrich Vollrath) 같은 경제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 저서 <완전 성장(Fully Grown)>에서,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부유한 선진국에서 1인당 GDP의 전년 대비 성장률 둔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성장 둔화에는 불평등의 증가가 수반되며, 이는 좌우 양극화 심화에 기여한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로 인한 재난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출산율 감소로 인해 노동 인구의 연령 분포가 한쪽으로 치우쳐 복지 시스템에 더 큰 부담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출산율 감소의 원인을 부유한 국가에서 아이를 낳는 데 드는 비용 상승으로 돌리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유럽연합에서는 부모에게 제공하는 관대한 혜택(예를 들어 헝가리는 최근 30세 미만 산모에게 개인 소득세를 면제하는 등 친가족 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도 이러한 흐름을 뒤집지 못했다. 어떤 순간이 되면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에 있는 부유한 사회는 더 이상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결과, 20세기 중반 이후 처음으로 이곳 자그레브에 모인 젊은이들처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의 젊은이들은 부모보다 더 잘 살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불안한 배경은 탈성장에 대한 관심의 증가가 사실 유럽의 경제 성장 부진과 임박한 환경 파괴의 또 다른 징후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는 전 세계 부유한 국가들이 생태적 쇠퇴와 국내 불만 증가를 관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일반적인 해결책인 급속한 성장이 경제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는 더 큰 역사적 그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탈성장이 불가피하다면, 탈성장론자들은 매우 다른 이유로 탈성장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관리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리고 유럽이 불안과 절망 이외의 다른 것으로 이 시기를 맞이할 수 있을까?
국제 탈성장 컨퍼런스의 개막일 밤, 자그레브 현대미술관 로비에서 열린 리셉션에서는 68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학술 연구를 진행한다는 명목으로 참석자 통계를 수집하는 설문조사가 최소 두 번 이상 진행되었다. 신발 가죽(shoe-leather) 접근 방식은 좋은 추정치를 제공하는데, 참가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가자들이 압도적으로 백인이고, 젊고, 건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획일성 안에는 상당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탈성장은 대학원생, 활동가, 마르크스주의자, 페미니스트, 탈식민주의자, 그리고 최근에는 유럽연합의 그린딜(Green Deal)이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에 새겨진 '녹색 성장'의 약속에 환멸을 느낀 선출직 정치인까지 모두를 포괄한다. 따라서 학문 분야나 지적 교차점, 정치 운동, 또는 그 다재다능한 특성을 고려할 때, 문화적인 것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Decroissance(데크와성스)”라는 용어는 1970년대 자원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던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로마클럽(Clunb of Romme)은 1972년, 환경 분야에서 여전히 가장 논란이 많은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인구와 자원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한 세대 안에 지구의 수용 능력을 초과하여 복지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너지 보존에 대한 자연과학들의 이해(수요와 같은 추상적이고 이론적으로 무한한 변수에 대한 경제학자의 이해와는 대조적으로)에 큰 영향을 받은 이 보고서는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there is no infinite growth on a finite planet).”는 생각을 대중화시켰다. “다가오는 우주선 지구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the Coming Spaceship Earth)"이라는 에세이의 저자인 케네스 볼딩(Kenneth Boulding)은 1973년 지구 생태 상황에 대한 토론에서 의회 증언을 통해 이 개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유한한 세상에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거나 경제학자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로마클럽 보고서는 주류 분석가들에 의해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이들은 다음 세대는 오히려 더 부유해지고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보고서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개발도상국)의 인구 증가에 대한 서구의 인종차별적 두려움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순수한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1972년 연구가 틀린 것보다 옳았다는 자연과학자들의 연구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생태학자들은 우리는 이미 거주 가능한 행성을 정의하는 9개 지표 중 4개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경고한다.
프랑스어에서 번역된 오늘날의 탈성장에 대한 강조는 인구 증가에 대한 맬서스적 관점을 거부하고, 대신 1인당 소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에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 신진국)의 퇴폐가 그 원인이다.
반소비주의, 반광고, 탈식민주의의 정신을 수용하여 부유한 경제를 패권주의적인 GDP 성장 추구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아이디어는 무모한 성장 추구의 또 다른 결과로 여겨졌던 2008-09년 금융 위기와 그 여파로 인한 긴축 조치 이후 프랑스와 남유럽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탈성장 운동의 초창기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작가, 조직가인 빈센트 리게이(Vincent Liegey)는 오늘날 탈성장은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하고 웰빙(well-being)이라는 개념으로 21세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로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진 나흘간의 대화에서는 '유쾌함(conviviality)', '검소한 풍요로움(frugal abundance)', '웰빙'과 같은 단어와 용어들이 선호되었다.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인 조지 칼리스(George Kallis)의 책은 '탈성장, 새로운 시대를 위한 어휘’란 제목을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주변적인 것 이상이다. 하지만 직접 민주주의와 지방 자치에 대한 호소는 물론, NGO와 유럽의회 의원들의 진지한 참여도 마찬가지이다.
이데올로기적 강조점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마티아스 슈멜처(Matthias Schemelzer), 아론 반신트잔(Aaron Vansintjan), 안드레아 베터(Andrea Vetter)는 저서 <미래는 탈성장이다(The Future is Degrowth)>에서 이 운동을 여러 가지 '흐름'으로 분류하는데, 그중 두 가지 지배적인 학파는 다음과 같다. 시장 메커니즘, 조세 및 규제와 같은 친숙한 도구에 의존하여 성장과 제도를 지구적 한계에 맞게 조정하는 녹색 자유주의 경제 개혁(green-liberal economic reform)과 분배와 소유의 근본적인 변화(소비에트 러시아나 마오주의 중국이 실행한 마르크스주의 생산주의와 구별되는)에 더 중점을 두는 '성장 없는 사회주의(socialism without growth)'가 그것이다.
자연 과학자들도 현실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자그레브에서 반복되는 가장 일반적인(그리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으로 들리는) 목표 중 하나는 "풍요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Scientists’ Warning on Affluence)"라는 제목으로 널리 회자된 2020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논문을 떠올리게 한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경제학자 조르고스 칼리스의 정의를 바탕으로 탈성장이 "생산량(GDP와 밀접하게 연결된 경제의 에너지 및 자원 흐름)의 공평한 축소와 이에 수반되는 복지의 확보"를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우르게-보르사츠는 또한 '계획된 노후화'를 금지하고 소비재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의회에서 제안된 지침 초안과 같은 최근의 탈성장 관련 법안과 연계된 새로운 모멘텀을 "정말 흥미로운 발전"이라고 환영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작년에 발간된 제6차 IPCC 평가 보고서는 "기후 목표를 추구하려면... 웰빙을 측정하는 방법을 포함한 총체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문헌의 "핵심 통찰"을 인용하며 탈성장을 처음으로 거론했고, "생태적 한계 개념에 대한 진지한 고려"를 언급했다.
국제적인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일본 철학자 사이토 고헤이(Saito Kohei, 자그레브 행사에도 참석)는 2020년 출간된 그의 저서 <인류세의 자본(Capital in the Anthropocene)>이 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일본과 전 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회의가 열린 주에는 '탈성장 공산주의' 철학으로 뉴욕타임스에 소개되었으며, 독일어 번역본이 <더 슈피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리게이는 현재 출간된 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코노미스트나 파이낸셜 타임즈 같은 정책 잡지들도 탈성장을 경제 재앙으로 몰아붙이기 위해서기는 하지만,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승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의 급증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주최자와 연구자들이 탈성장 자체의 의제에서 구체적인 제안을 인용하지 않고, 오히려 오래된, 전후 패러다임의 폐해를 언급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말 그대로 차트에서 벗어난 기록적인 기온 상승을 예로 들었다. 이들은 팬데믹을 예로 들며,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일에 대한 대중의 상상력을 넓혀준 급격한 사회 변화의 실험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엔데 겔렌데(Ende Gelände),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탈성장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청년과 대학원생 등 젊은 세대의 활동가들이 보여준 에너지를 꼽았다.
자그레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한 참석자는 모국인 프랑스에서 녹색 성장 이야기와 정당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탈성장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얼마나 많은 것이 선전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컨퍼런스 센터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워크숍과 학술 발표의 불협화음을 향해 손짓하며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주류 채널에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후 "많은 사람들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인정했다.
현재 세계 상황에 대한 비관론과 그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정치적 해결책의 약속이 결합되어 유럽의 탈성장 운동에 매료된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탈성장은 이러한 해결책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또는 비관론을 관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탈성장 운동이 선진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유럽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탈성장론자들은 유럽 대륙의 오랜 좌파 조직화 전통과 자본주의의 과잉을 견제하는 문화적 개방성을 지적한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스타인버거는 "유럽에서는 주류 경제학과 성장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자유가 더 많습니다. 편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해고당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혐오감을 일으키지도 않죠.“"라고 말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한 후 고향인 도쿄로 돌아와 현재 도쿄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사이토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유럽연합 국가들이 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규제하여 다른 것, 비상업적 활동을 위한 다른 공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절반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며 비슷한 논조로 말했다.
그러나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아지는 데에는 잠재적으로 더 광범위한 문화적 배경이 있을 수 있다. 프랑스(그리고 녹색당/유럽자유연합 정당 그룹)를 대표하는 유럽의회 의원인 그웬돌린 델보스-코필드(Gwendoline Delbos-Corfield)는 자신과 대화하는 젊은이들이 유난히 비관적이라고 말하며, "여학생들은 지구에 해를 끼치므로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라고 까지 말했다고 한다.
현상 유지에 대한 젊고 과장된 비판은 유럽 정치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태도는 1960년대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학생 시위와는 다른 느낌이다. 델보스-코필드는 "절망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서구의 녹색 혁명가들 사이에는 항상 반물질주의, 반자본주의 성향이 있었지만, 탈성장은 1970년대 환경주의를 상징하는 백투더랜드(back-to-the-land) 또는 히피 영성주의와는 별개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그레브에서 보여진 주요 동인은 세계가 매우 실제적인 생태적, 시민적 불안에 빠져들면서 나타나는 경제적, 환경적 불안이다.
리게이는 "그들은 우울한 정보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이 운동에 참여하며 운동을 재편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길 방법은 없습니다." 우르게-보르사츠도 그의 평가에 동의한다. "유럽의 기후[정책]만 놓고 보면, 유럽이 훌륭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낙관할 만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더 넓은 정치 지형에 관해서는 유럽이 새로운 정치적 비전을 필요로 하는 "위기가 계속되는 위기의 시대"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가 실제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비관론에 대한 주장은 글로벌 사우스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에 대한 요구와 함께 비평가들이 탈성장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앤드류 맥아피(Andrew MaAfee)나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와 같은 자칭 '테크노 낙관주의자(techno-optimist)' 사상가들은 어느 정도 자의식적으로 탈성장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기후 목표와 관련하여 이러한 사상가들은 더 많은 성장을 요구하며, 특히 이러한 성장과 물질적 자원 사용의 증가를 분리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의 자칭 낙관론은 이러한 탈동조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며, 새로운 기술과 현명한 정책을 통해 이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크노 낙관론과 녹색 성장론, 탈성장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의견 속에서도 모두가 한 가지에 동의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최악의 기후 미래를 피하려면 경제의 물질 및 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 취하는 태도는 이보다 더 다를 수 없다.
실제로 20세기 중반부터 상대적 디커플링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가 있지만, 지금까지는 부분적으로만, 그것도 부유한 국가들에서만, 그리고 자원 사용이 엄청나게 강화된 후에야 진행되었다. 또한,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 20세기 중반 정점을 찍은 탈물질화의 초기 증거는 아직 인도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다.
또한 이러한 부분적인 추세가 부유한 국가들의 물질 집약적 제조업의 해외 이전을 제대로 설명하는지, 아니면 상품과 서비스의 더 효율적이고 "비물질화된" 생산이 소비 증가로 바로 이어져 생태학적 이득을 즉시 상쇄하는 소위 반등 효과를 설명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탈성장론자들은 절대적 디커플링은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라고 주장하는데, 이 또한 성장론자들이 탈성장을 비난하는 것만큼 위험한 생각이다.
디커플링이 마술적 사고에 해당하든 아니든, 현재 데이터를 고려할 때 디커플링 시나리오만으로 경제 활동이 행성의 경계와 티핑 포인트에 부합할 것이라고 믿으려면 매우 낙관적이어야 할 것이다. 즉각적인 해결책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경기 둔화가 불가피하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망상 아니면 절망일까?
우리가 경기 둔화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무너지는 국가 재정, 경기 침체, 경기 전환은 특히 소득이 가장 낮은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혼란을 안겨준다. 그러나 경제적 고통과 불만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장률 수치를 부풀리는 것은 정치인들이 급격히 상승하는 파도가 모든 배를 띄운다고 약속할 수 있었던 시대의 잔재처럼 보인다.
전 세계 불평등이 전쟁 이전 수준에 도달한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20세기에 축적된 부의 재분배에 최소한 동등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는데, 이는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을 점점 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제 및 환경적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부유한 세계에서 지난 세기의 호황기 성장률이 여성의 노동력 진출, 세계화, 정부 부채의 금융화, 제국주의 무력 사용과 같은 비선형적이고 재현 불가능한 사건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더욱 이해가 된다.
어쩌면 테크노 낙관론자들이 예측하듯, 인공지능은 또 다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20세기 스타일의 급격한 성장을 가져올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인공지능이 인간 제작자를 대체하는 잠재적 비용이 수반되며, 이는 경제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선진국 경제의 구성이 변화함에 따라 정책의 초점도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 전환이 필요하다.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 전 미국 재무장관은 2020년에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 의견서에서 "자연과학 이론과 사회과학 이론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자연과학 이론은 타당하다면 모든 시대와 장소에 적용되지만, 경제 이론의 타당성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더 많은 대중에게 이 점을 설득하는 것이 탈성장 운동의 임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자는 아이디어에 브랜딩 문제, 즉 정치적 문제가 있다면 탈성장 운동의 누구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제가 자그레브에서 만난 사람들 중 "더 나은 단어를 생각해 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언어와 대중적 호소력 문제가 컨퍼런스를 뒤덮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쉬는 시간에 두 아이의 엄마이자 마케팅 경력이 있는 크로아티아 현지 자원봉사자 한 분이, 여기 모인 학자들이 어떻게 탈성장을 더 많은 청중에게 전달할 계획인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녀는 최근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집에 돌아와, 더 이상 중고품 가게에서 쇼핑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했다. "탈성장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을 때, 탈성장하는 것은 매우 다르게 느껴집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점심시간에 (비건) 렌틸콩 볼로네제 요리를 먹으며 자그레브 출신의 20대 자원봉사자이자 지역 여성 환경단체의 회원이도 한 또 다른 자원봉사자는 학술 세션을 직접 참관하고 느낀 점을 공유했다. 그녀는 가상의 '에코 페미니스트 도시'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들었는데, 그녀 역시 어휘와 폭넓은 호소력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녀는 "[발표자들의] 대화 상대인 우리 환경 단체의 여성들은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당신의 청중은 누구인가(Who is your audience)?'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고 말했다. 해당 에코 페미니스트 도시에 대한 초록을 참고해 보면, 저자의 제안이 실질적이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참조에는 "공간 및 일시적 인프라의 구성" 및 "여성주의적 시간 정치"와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원봉사자의 질문인 "당신의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가?“는 매우 적절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이 운동의 일부는 실제로 대중의 관심을 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토에 따르면 탈성장의 주요 목표는 ’자본주의‘와 ’전통적인 사회주의 또는 마르크스 생산주의’의 밖에서 공간을 뚫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의사 결정을 지나치게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고, 마오주의 중국이나 소비에트 러시아에서의 생태적 기록이 마찬가지로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이 주류가되는 데 더 큰 위협이되는 것이 "공산주의"또는 "탈 성장"이라는 단어인지 궁금해했지만, 더 많이 물어볼수록 사이토와 같은 탈성장주의자들에게 "공산주의"는 고전적인 경제 계획보다는 지방 자치주의와 복지 국가의 확장 (아마도 제국주의와 경제 성장을 모두 거부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재정이 지원되는)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이토는 기후위기 시대를 위해 마르크스주의 원칙을 업데이트에 대해 "저는 이를 '커먼화(commonification)'라고 부릅니다."라고 말한다. "공통의 것을 공통의 부로 만드는 것입니다. 시장 논리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기본적 욕구의 공통화에 기반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대화하는 모든 사상가들은 민주주의에 헌신하고 일당 체제를 거부한다. 사이토는 시장 메커니즘의 여지를 쉽게 본다. "당연히 시장에서 사과나 오렌지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과가 꼭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것이야 하나요요?"라고 반문한다. 보편적 의료, 교육, 대중교통, 주택과 같은 사회 서비스를 확대와 함께, 주당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보장에 대한 추가적 논의에 대한 약속이 있다. 사람들은 덜 사고 덜 일할 때 에너지와 자원을 덜 사용한다.
사이토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자본주의 밖에서 생각할 의지만 있다면" 탈성장이라는 용어 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도발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종종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탈성장은 정확히 시장성이 없는 용어로, "지속 가능성", "녹색 성장", "탄소 발자국" 같은 용어에 닥친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예상하고 만든 용어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탈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치인들이 이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이토는 급진적인 용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진보를 위한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는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버니 샌더스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같은 정치인이 등장하면서 금기가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한다.
반면, 과거에 금기시되던 것들이 정상화되는 것은 양극화가 심해지고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는 신호일 뿐이며, 우파에서도 금기가 빠르게 해제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긴장된 정치 환경 속에서 탈성장 운동은 좌파 활동가나 학자라는 기존의 역할을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정치인, 즉 타협을 해야 하는 사람처럼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운동이 분열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진영이 우세한지는 분명하다. 소셜 미디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활동가이자 학자인 줄리아는 마지막 패널에서 대중과 정치권력 중심부 사이의 연대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녀는 "과학은 우리에게 탈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라고 말하며, "하지만 정치인들이 이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돕지 않는다면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선출직 관리들에게 데이터를 제시했지만, 그들은 그 의미를 설득할 방법이 없다면 손이 묶여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은 당신과 기자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니요, 우리는 할 수 없고 기자들도 하지 않으니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류 경제학과의 연결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운동에 대한 자연스러운 동맹도 존재한다. 탈성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탈성장 지지자들이 혼자서 이 일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상기 내용은 포린폴리시(foreignpolicy.com)에 실린 "The Relentless Growth of Degrowth Economics" 기사를 인공지능(DeepL) 번역 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옮긴 것임을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