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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Jun 12. 2024

20.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를 읽고

얼마 전 김누리 교수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를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대체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을 교육을 계속해서 대물림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저희 세대는 다를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경쟁교육은 오히려 학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신분질서와 맞물리며 더욱 가속화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쩜 이렇게 쉼 없이, 멈추는 법도 모르고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걸까요?


김누리 교수님이 책에서 언급한 한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을 '사랑'하는 국민이라는 사실입니다. ..."보다 평등해져야 한다"는 대답이 24%인 반면 "더 차이가 벌어져야 한다"는 대답이 무려 59%였습니다. ...미국도 평등이 30%, 불평등이 36%의 선호도를 보였습니다. ...독일의 경우 우리와 정반대의 경향을 보였습니다. '평등' 선호도가 58%, '불평등' 선호도가 16%였습니다. ...그런데 6년 뒤인 2020년 조사 결과는 더 참담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평등해야 한다는 수치가 반 토막 났습니다. 겨우 12%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더 차이가 벌어져야 한다"에 찬성한 이는 무려 65%에 달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을 사랑하는 국민이라니요. 나만 살면, 나만 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건가요?


80여 년 전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던 그 시절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바라던 세상은, 앞선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누구나 평등한 세상'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 '능력주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능력주의에 대한 김누리 교수님의 실랄한 비판에 크게 공감을 하였습니다.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이 3루타를 안다'는 유명한 말처럼 재능에 더해 노력을 있는 여건(환경)조차도 천차만별 운에 좌우되는 세상에서, '공정'한 경쟁만으로 사람을 나누고 차별한다는 건 정의롭지 않습니다.  


능력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과 함께,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공정하다는 착각>도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능력주의가 이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사회라면 자연스럽게 사회 계층 간 이동이 활발해야 하겠지만, 한국은 그 반대입니다. 2020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조사한 글로벌 사회 이동성 지수를 보면 한국은 25위(미국은 27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들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전통적인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이죠. 어떠신가요? 뭔가 직관에 반하지 않나요?


2020년 세계경제포럼 글로벌 사회 이동성 지수 순위


아니,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우리는 불평등을 사랑하는 민족인 만큼 겉으로는 능력주의와 공정으로 환경을 긍정적으로 포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누구도 능력주의가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 것이죠. 사회적 이동성이 결여된 불평등한 세상을 원하는 겁니다. 적어도 지배층, 기득권층은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책에서 인용한 것처럼, 지금도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거죠.


모르긴 몰라도 능력주의가 이렇게나 극단적인 형태로 우리 사회에서 활개를 치게 된 이면에는 역시나 '성장만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성장에 대한 강박적인 끈을 끊어내야만, 우리는 정말 제대로 된 쉼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우리 경제가 경제성장이라는 새롭고 급진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경제가 매년 성장해야 한다면, 새로운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은 여러분과 내가 똑같은 시간 안에 점점 더 많은 것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 1880년대 이후 삶이 10년마다 점점 빨라진 결정적 이유 중 하나 ...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일 때 ... 많은 사람은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몇 세기 만에 처음으로 온 세상이 다 함께 경주를 멈추고 정지한 것이었다.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중에서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 또한 코로나19로 정지된 세상에서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 많은 사람 중 하나였기에, 코로나19는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온 세상이 저는 마냥 기쁘고 반갑지가 않습니다.


한국 대학생의 80%가 고등학교 시절을 '사활을 건 전쟁터'로 기억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책을 읽은 지가 꽤나 오래 되었는데도 김누리 교수님의 다음 질문이 머리 속에서 잊히질 않네요. 


학창 시절 불행을 내면화한 아이들이 과연 어른이 되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번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 아이가 과연 성인이 되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이대로는 미래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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