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더라도 몇 가지 책에서 내가 얻은 힌트는 다음과 같다. 1과 2는 제현주님이 지은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에서 보았고, 3은 신형철님이 지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가져왔다.
1. 생물학적 필요는 이제 화폐가 있어야만 충족된다. 과거의 노예, 장인, 귀족 중 누가 하던 일을 하던, 그 일로 화폐를 벌어들여야 먹고산다. 결국 모든 일이 '노동'으로 수렴하고 우리는 모두 노동자가 되었다. 노동은 화폐로 환산되는 한에서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가치가 높아야 자신과 가족의 배를 채운다. 그러나 밥벌이야말로 귀하다지만, 누구든 밥만으로 인생을 채우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을 둘러싼 모순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한 욕구(노예)를, 창조하고픈 욕구(장인)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귀족)를 일 하나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2.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일과 나를 서로 분리할 수 있었다. 직장과 가정은 서로 다른 사일로(silo)로 서로를 침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돼 사일로들이 서로 연결되고 나서 부터는 그 경계가 없어졌다.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업무의 365일 24시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3. 얼굴에서 음성으로, 음성에서 글자로, 당신은 축소 조정돼왔다. 그러면서 당신은 쉬워졌다. 이 변화의 와중에 당신이 뭔가를 점점 잃어왔기 때문이다. 아, 이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하면서 느끼게 되는 바로 그것, 그 '다름' 말이다. 철학 책에 자주 나오는 용어대로라면, 타자의 타자성 말이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타자의 타자성을 본의 아니게 점차 축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온 것처럼 보인다. 이제 나는 당신을 만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음성조차 듣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라는 글자와 대화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직장에서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과거와는 달리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노동, 작업, 행위(인정) 세가지 모두를 일 하나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이 최근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심화돼, 나를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경계(일과 가정의 분리) 마저 사라지게 되었고, 이제는 타자의 타자성에 취약해져 '다름' 자체로 인해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뭔가 말이 된다.
2010년 이전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의 내 직장생활과 비교해 봐도 그렇고; 스마트폰을 없애버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