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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15. 2023

나의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때

칼이 된 말에 대처하는 자세

좀 심각한 표정의 친구가 말을 꺼냈다. 지난번, 대화 중 마음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조심스럽게 되짚었다.           

“그때 네가 했던 말, 처음에 듣고 좀 놀랐어.

물론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어떻게 들으면

듣는 사람은 상처받을 수도 있는 말이었거든."         

  

갑작스러운 고백에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숨기며 문제의 그날로 기억의 시계를 되감아 봤다.           


”아직 때가 아닌가 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내가 건넨 말은 이거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전한 말이었다. 비슷한 상황에 있을 때,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아직은 시기가 덜 영글었을 뿐이고 지금은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말. 뒤틀린 의도나 불순물 없이 오직 위로와 응원으로만 꽉꽉 채운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친구가 힘을 내길 바랐다. 하지만 내 의도와 달리 듣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온도로 다가갔다.    

   

”그 말은 어쩌면 ‘아직 네가 배가 덜 고프구나?’로도 들릴 수 있어. “          


처음 들었을 때는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생각 끝에는 그 말이 이렇게 결론이 난다고? 고개가 갸웃했다. 설령 그런 마음이 1g이라도 들더라도 감히 내 입으로 꺼낼 깡이 없는 인간이 바로 나인데 어떻게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아했다. 그 말을 어떻게든 마음속으로 소화시켜 보려 했지만 한동안 체한 듯한 기분을 안고 살았다. 상대방에게 나는 그런 이미지구나 싶어서. 남의 가슴에 못 박으면 내 가슴에 대못 박힌다는 믿음으로 살았다.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고 살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 노력과 별개로 현실은 다른 결론에 닿는다. 이렇게 내 의도와 상관없이 정반대의 결과가 내 손에 쥐어질 때 나는 몹시 당황하다 못해 입과 머리가 동시에 굳어 버린다. 이렇다 저렇다 따지거나 변명하지도 못한 채 상황이 종료된다. 그렇게 쌓인 오해는 나를 입으로 칼을 휘두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닿을지 조심스러워 신중하게 던진다. 그 신중함을 담아 건넨 말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이렇게 한 번씩 짚어 줄 때,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점점 더 말하기 어려워지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날의 상황, 흩어졌던 말들을 곰곰이 돌이켜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비슷한 결론이 나진 않았을까? 하는 못된 마음도 든다. 어떤 말이든 내 입을 통해 나온다면 상대방을 찌르고, 베고, 자르는 말이 될 테니까. 출발점이 순수했건 불순했건 내 의도는 나만 알 뿐이고 상대방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볼 테니까. 내가 동그라미 모양의 말을 던져도 상대방의 마음과 머리에 엑스자 틀이 준비되어 있다면 결국은 엑스자 모양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에도 생길 수밖에 없는 생각의 차이.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까? 하루아침에 정답이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질 수 없는 일. 예전이었다면 이 구역의 제일가는 도어 슬램 장인답게 ‘관계의 셔터’를 훅 내려 버리고 말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러지 않기로 다짐했으니 행동도 변해야 한다. 내 생각과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면 의도는 설명하고, 오해는 풀고, 마음은 전하기로 한다. 내가 가는 방향이 옳다면 가는 동안 좀 헤매고 흔들리더라도, 원하는 목적지에 분명 닿을 테니까. 설령 무언가를 잃는다 해도 내가 부끄럽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했다면 그 결과는 온전히 내 책임이고 또 내 몫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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