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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22. 2023

연락의 무게

너에게는 한없이 가볍고, 나에게는 한없이 무거운 이유

아담한 한옥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영혼의 짝꿍 같은 후배 A와 식도까지 차오르도록 밥을 먹은 후였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못 본 사이 켜켜이 쌓인 수다를 하나둘 풀었다. 경제, 문화, 사회, 정치, 예술, 연애, 연예, 요리, 하다못해 주식까지... 화수분처럼 끊임없는 수다를 떨다가 우리가 함께 했던 프로젝트의 팀장님 근황까지 닿았다. 오후 회의 때면 그날의 주식 시세가 투명하게 얼굴로 드러났던 팀장님. A는 갑자기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냈다. 끝난 지 5년도 지난 프로젝트의 팀장님께.  

   

"어떻게 지내시지?

팀장님 보고 싶네요. 선배."     


톡톡톡. 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누구시죠? “     


예상치 못한 반응에 실망할 A가 아니다. 입을 삐죽 내밀더니 특유의 넉살을 가득 담은 몇 번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끝에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차올랐다. A의 성향을 잘 아는 팀장님이 그 텐션에 맞춰 장난을 친 거였다. 한참 또 수다를 떨더니 조만간 사무실 근처로 찾아갈 테니 팥빙수나 사달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무겁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은 A의 유쾌한 연락. 지난번 홍대에서 흑맥주 한 잔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동료 B가 생각난다더니, 말릴 틈도 없이 전화를 걸었던 A. 잠깐 수다를 떨다 불쑥 나에게 전화를 건넸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아 들고 수년 만에 B와 통화를 하게 됐다. 어떻게 지내냐고, 보고 싶다고, 곧 자리 마련할 테니 시간 비우라고. 흔하디 흔한 대화를 주고받은 후 끊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우린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매일 얼굴을 보던 우리는 이제 일부러 시간을 내고, 약속을 잡아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애써야 하는’ 사이가 됐다. 각자 삶의 패턴이 명확히 달라졌다. 우리는 안다. 서로 보고 싶은 마음은 같다는 걸. 누구 한쪽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우리의 만남은 장담할 수 없다. 한 달 후가 될지 1년 후가 될지 아니 영영 못 만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인생의 짬’이 찼다.     


A에게 그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시간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 보고 싶은 마음,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이 모여 A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툭 연락한다. A를 알게 된 지 10년이 가까웠지만 그사이 먼저 연락하는 것도 늘 그녀다. 연. 락. 단 두음 절의 짧은 단어인데도 나와 A가 느끼는 ‘단어의 무게‘는 전혀 다르다. 내게 1톤짜리 쇳덩이라면, A에게는 민들레 홀씨 하나 정도? 딱 그만큼의 차이다. 3살 아이의 여린 입바람에도 멀리멀리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날아가 상대방에게 관심과 애정으로 닿는 A의 연락. 이런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A의 성격과 넉살을 훔치고 싶다. 훔칠 수만 있다면.    

 

‘연락‘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나는 A와 정반대의 성향이다. 굳이 용건이 없는데 안부 연락을 하는 세심함과 따뜻함이 나에겐 없다. 비겁하게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닳고 닳은 말 뒤에 숨곤 했다. 연락이 끊겼던 사람과 다시 연락해야 할 때, 꼭 하기 싫은 숙제를 떠안은 초등학생이 된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고, 하기 싫어 몸이 배배 꼬인다. 미루고 미루다 결국 데드라인이 닥쳐야 쓴 약을 삼키듯 눈을 질끈 감고 전화번호를 누른다.


갑자기 왜 연락했지?
뭐가 필요해서 연락하나?
다단계라도 권하려나?
보험 팔려나? 아님 옥장판?

전화기 건너 저편에서 이런 생각을 하진 않을까? 덜컥 겁이 난다. 실제로 속에 그런 마음이 있더라도 막상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다들 오랜만의 연락을 반가워해 주고, 잊지 않아 준 것 자체에 고마워한다. 나의 안부를 세심하게 물어주고, 잘 지내다 곧 얼굴을 보자며 웃으며 끝인사를 한다. 생각해 보면 얼굴도 어렴풋하고 이름도 가물가물한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을 때, 나를 잊지 않고 연락을 줬다는 고마운 마음이 먼저였다. 왜 연락했지? 무슨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나? 하는 마음은 한참 뒤였다. 잊지 않고 연락을 줬다는 고마워하는 마음. 그거 하나만 생각하면 되는데... ‘연락‘이라는 단어 앞에서 난 생각이 많아진다.    

 

주기만 혹은 받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언젠가 끝이 난다. 인간관계는 화분 하나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꼬박꼬박 물을 주고, 햇빛을 보게 해줘야 하고, 가끔 죽은 잎도 잘라줘야 한다. 그래야 관계가 싱싱하게 유지된다. 관심과 애정으로 세심하게 관리를 해야 유지되는 게 바로 ‘인간관계’다. 이 진리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연락’에 대해서만큼은 난 참 게으르다. 후~하고 민들레 꽃씨를 불듯 가벼운 마음으로 연락을 하는 A. 그녀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없다. 가볍게 던져야 가볍게 받는다. ‘연락’에 대단한 의미 부여하지 말 것. 그저 보고 싶은 마음.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 그걸 주고받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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