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Sep 20. 2023

내가 나에게 불친절할 때

남을 향한 친절을 아껴 나에게 친절하기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냉큼 픽업대로 향한다. 쟁반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컵 속의 내용물을 확인한다. 내가 주문한 커피가 맞다. 커피를 들고 돌아서기 전, 직원에게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하루에 내 입에서 나오는 ‘감사합니다’는 몇 번이나 될까? 혼잡한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내게 먼저 가라고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눈인사를 건넨 사람에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열림 버튼을 눌러준 사람에게도 고맙다고 말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쓰는 이메일도, 업무 메신저도 맺음말은 늘 ‘감사합니다’로 끝난다. 일과를 마치고 바닥난 에너지를 박박 끌어모아 향한 요가센터. 한 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과 헤어지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떡진 머리와 몸을 이끌고 이대로 그냥 집에 가긴 뭔가 억울해 보상 거리를 찾아서 들어간 편의점. 무알코올 맥주를 사고 계산을 마친 후 카드를 받으며 아르바이트생에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내가 하루에 제일 많이 쓰는 말을 따져 보면 아마 2위는 ‘고맙습니다’, 1위는 ‘감사합니다’가 아닐까?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로봇처럼 사회생활의 기본인 감사의 인사를 내뱉는다.         


타인에게 친절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에너지를 가불해 쓴다. 한정된 에너지를 미리 당겨 쓰고 나면 정작 나에게 친절할 힘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손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을 만큼 지쳤다는 이유로, 나를 불친절하게 대한다. 냉장고에 가득한 반찬을 꺼내고 국을 데워 제대로 차려 먹기보다는 라면을 끓여 냄비째 흡입하며 급하게 허기만 지운다. 분명 밖에서 밥을 먹을 때는 상대방 수저에 냅킨까지 깔아주는 매너를 뽐냈으면서 말이다. 방에 들어서면 겉옷을 벗어 행거 위에 휙 던진다. 어제 입었던 바지 위에 그대로 안착한다. 행거 위에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 같은 옷더미가 쌓여 간다. 동시에 방은 어제보다 더 엉망이 된다. 커피 브레이크 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가 먹은 잔을 착착 정리해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네며 깔끔 떨었으면서 말이다. 씻을 힘도 없을 만큼 지쳐서 밖에서 입은 옷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그러지 말고 얼른 나와 과일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됐어’라고 날카로운 톤으로 대답을 했다. 아까는 분명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줬으면서 말이다.       


온종일 남에게 친절하느라 정작 나와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불친절하다는 걸 느낄 때 자신에게 정이 뚝 떨어진다. 뭐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무슨 큰일 한다고 이따위로 사는 건가 싶어서.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의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종종 나를 뒷순위로 미룬다. 이게 습관이 되면 내가 나를 쉽게 하대한다. 그런데 자신조차 막대하는 사람을 세상 누가 존중해 줄까?           


남을 향한 영혼 없는 기계적인 친절을 아껴, 나에게 친절하기로 한다. 거창한 친절이 아니라 내 상태를 헤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습관적으로 4샷 대용량 커피를 사려고 카페로 발걸음을 옮길 때, 생각한다. 링거 사이즈 커피가 당기는 걸 보니 뭔가에 쫓겨서 불안하구나. ‘오전에 이미 마셨는데, 커피를 또 마시네, 그것도 대용량으로‘라고 자책하기보다는 ’ 오후에는 물을 더 많이 마셔서 희석하고 몸에서 얼른 배출시키자.’라고 마음 상태를 파악하고, 덜 해롭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어차피 마실 커피라면 죄책감이나 눈치를 주기보다 나를 친절하게 대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 우와 그걸 어떻게 했어요? 멋져요!‘ 누군가를 향해 습관적 칭찬을 했다면, 돌아서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자신을 칭찬한다. ’ 그걸 알아채다니, 눈썰미 대박! 잘했다 나 자신!‘ 이런 식이다. 평생 누군가의 칭찬에 목말라했던 나는 스스로 칭찬해 주는 데 익숙한 ’ 셀프 칭찬의 달인‘이 됐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던가? 곳간에 변변한 것도 없는데 빚내서 인심 내다보니 심신이 피폐해진다. 당사자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남에게 친절을 퍼주기 전에, 일단 내 곳간부터 친절을 채우는 게 중요하다. 여전히 서툴고, 뚝딱이고, 우당탕탕 거리는 내 꼴이 못마땅하지만 일단 눈을 딱 감고 나에게 상냥하게 대하기. 요즘 내가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일이다. 잠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기보다는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나를 보듬고 도닥이는 중이다. 남을 향한 친절을 아껴 나에게 친절하기는 언제나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숙제다.                




호사 작가의 신간 <먹는 마음>이 궁금하다면?

YES24  알라딘 교보문고 영풍문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