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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12. 2023

우리 사이가 그 정도는 되잖아?

섣부르게 판단하고, 단정 짓고, 기대하는 버릇 버리기

새벽 3시, 시부모의 휴대전화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며느리. 남편과 오랜 불화를 겪었던 며느리의 쌓이고 쌓인 신세 한탄이 한 번에 폭발했다. 자다가 깨 전화를 받은 시부모의 황당한 상황을 겪은 건너 건너 지인의 사연이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두 가지 생각이 피어올랐다. ’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 시간에 전화를 걸었을까?’와 ‘내가 그 상황에 놓였다면 그 새벽에 전화를 걸었을까?‘. 당사자가 아니기에 앞뒤 상황과 깊은 속 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기준에) 세상천지가 뒤집혀도 그 새벽 시간에 전화를 걸지 못할 거라는 결론에 닿았다. 기어코 상대의 속을 뒤집어서 잠 못 자게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 새벽에 전화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 나라면 일단 진정하고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거 같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 새벽에 어떻게 전화를 걸 생각했을까? 의아함이 차올랐던 그때, 반전이 훅 치고 들어왔다.     


결혼 전, 어머니를 일찍 떠나보낸 예비 며느리에게 시부모님은 딸처럼 대할 테니 친부모처럼 편히 대하라고 했던 말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우리 엄마면 천불 나는 내 속 이야기를 다 들어줬을 거라는 며느리의 나름 ’ 합리적 추론‘에 입각한 행동이었다. 딸 같은 며느리, 친정 부모 같은 시부모라는 판타지가 낳은 의외의 결과였다. 우리 사이가 전화로 새벽잠을 깨워 신세 한탄하는 그 정도는 되잖아?라고 생각했던 며느리의 사연을 들으며 내 곁의 ‘사이‘들을 떠올려 봤다. 내가 ‘우리 사이가 그 정도는 되잖아?’라고 생각하는 사이, 그 틈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의 차이가 있을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리며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 괜히 부담을 주거나 야단법석 떠는 걸로 느낄까 주저하게 되는 사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 등등 마음의 거리에 따라 마음의 문은 물론, 전달하는 정보의 양도 달라진다. 내 상황과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의 먹먹한 반응에 당황하기도 하고, 예상치도 못한 사람에게 엄청난 위로나 응원을 받기도 한다. ‘우리 사이가 그 정도는 되잖아?’라는 말로 짐작하고 기대했다가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우리 사이가 그 정도는 되잖아?‘라는 생각은 오로지 내 기준이다. 상대방이 생각하는 ‘사이’와 내가 생각하는 ‘사이’가 같을 리 없다. 그 차이를 느낄 때마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게 1순위라고 해서 상대도 내가 1 순위리라는 법은 없다’는 말을 애써 끄집어낸다. 도배하듯 ‘우리 사이가 그 정도는 되잖아?‘라는 생각 위에 빈틈없이 그 말을 덮는다. 그래서 덜 기대하고, 덜 실망하려고 몸부림친다.


마음대로 머릿속에 결과를 정해두고, 상대의 반응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당황하지 않기! 요즘 내가 노력 중인 마인드 컨트롤 영역이다. 각자에게는 내가 모르는 100가지의 이유와 상황이 지금의 결과를 만든 걸 테니, 순간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대신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하는 것들에 집중하자. 상대의 반응은 순간일 뿐인데 그 여파를 안고 오래 끙끙 앓는 게 나한테 도움이 안 된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무엇보다 내 기분이 중요하니까. 내 기분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나니까. 우리 사이가 그 정도는 되잖아?라는 말로 섣부르게 판단하고, 단정 짓고, 기대하는 짓은 이제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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