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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26. 2023

나와 제일 안 친했던 사람은 바로 나

처음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넌 왜 그래?

이 말을 들으면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몸과 마음이 냉동만두처럼 꽝꽝 얼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말이 없고, 친해져도 속마음을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 목적이 없으면 상대가 연락하기 전까지 먼저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 잘 움직이지 않고 대부분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사람. 예민하고,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사람. 놀랍게도 이 모든 성향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다.          


넌 왜 그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단단히 틀려먹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낯선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앞에서 나서서 뭔가를 척척 잘하는데 나는 그게 힘들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허둥지둥거리며 뚝딱이기 바빴다. 뭔가를 시작할 때 난 보통 사람들보다 오래 그리고 많이 마음의 예열이 필요한 사람이라서일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과 거리를 좁히는 것에 많은 시간과 마음이 쓰였다. 유리멘털에 유리 몸이라 금방 에너지가 바닥나는 내게 ‘넌 왜 그래?’라는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채찍이 되어 자신을 무섭게 다그쳤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넌 왜 그러냐?’고 물으니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생겨 먹은 건데 어쩌라고?‘ 뾰족하고 삐딱한 마음을 멋쩍은 웃음 속에 애써 숨기며 답했다.     


그러게... 나는 대체 왜 이럴까?


과거의 나는 나를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몰랐다. 남들이 가진 엄청난 것들을 부러워하기 바빴고, 정작 내가 뭘 가졌는지 모른채 살았다. 혀에 버터라도 칠한 듯 외국인과 프리 토킹하는 사람 옆에 서면 입에 본드 칠 한 인간이 됐다. 사진을 잘 찍는 친구 옆에 서면 난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이었고, 처음 본 시골 할머니 고쟁이 속 쌈짓돈까지 꺼내게 만드는 화려한 언변을 가진 사람 옆에 서면 바위처럼 자리만 차지하는 무뚝뚝한 사람이 됐다. 상대방의 실수를 조목조목 따지는 잘난 사람 옆에 서면 물러 터져서 제 몫도 못 챙기는 똥멍청이가 됐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그저 자존심만 센 사람. 안은 텅 빈 채, 쥐면 바스러질 얄팍한 허울로 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러니 누군가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에도 상처받았다. 그 응어리를 몇 날 며칠 품고 끙끙거리다가 결국 와르르 무너지곤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혼자만의 ‘열심‘이 수포가 되면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에게 다들 현혹된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몰라준다고, 열심에 배신당했다고 부들거렸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만 있다면 피해자 흉내에 열중인 그때의 나를 일으켜 먼지를 털어주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니 근데 말을 해야 알지.

사람들이 궁예도 아닌데 보기만 해서 어떻게 아냐고.

괜찮다는 말 뒤에 숨지 말고, 자신을 속이지 말고,

그냥 편하게 말해. 그래도 괜찮아.‘     


남들이나 세상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쉽게 친해지기 어려웠다. 먼저 선뜻 말을 걸지도, 다가 오가지도, 새로운 걸 시도하지도 않는 내향형 인간. 이런 사람이 세상과 친해지려면 외향인보다 곱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부분 그게 지치고 싫어서 되는대로 놔두는 편이었다. 먼저 다가와 주면 마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먼저 다가가진 않는 이기적인 사람. 그러니 나의 세계는 개미 콧구멍만큼 좁았다. 대체 ’왜 저럴까?’ 싶은 이해 불가 상황과 마주할 때마다 그들은 나를 통째로 흔들었다. 속에는 불만이 가득하지만, 선뜻 개선하려고 나서지는 않는 옹졸하고 비겁한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내가 친 벽에 내가 압사당할 위기에 놓였다. 자발적 고립이 만든 결과였다. 우물 안에 틀어박혀 누군가 자신을 꺼내 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개구리로 살 순 없었다.    

   

세상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과 친해져야 했다.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나를 웃게 만드는 건 뭔지, 늪 같은 우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뭔지부터 찾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남들만큼, 남들보다>라는 인생 모토에 따라 항상 밖으로만 향했던 시선을 180도 돌렸다. 관심의 시선을 내게로 향하게 만들었다. 남을 향해서만 맞췄던 모든 걸 나에게 맞췄다. 나와 친해지기 위해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책을 읽고, 산책하고, 여행을 떠나고, 글을 썼다.         


여전히 낯선 사람과 말하는 게 어색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굳이 피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새로운 사람과 대화 속에서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 사람의 세계를 탐험하는 일이자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타인의 생각들을 엿들을 기회로 생각하니 오히려 즐거웠다. 내 기준의 잣대를 남들에게 들이밀 필요도 없고, 내 선택을 존중받고 싶다면 누군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내가 사진 찍는 게 싫다고 해서, 인증샷 찍기 좋아하는 누군가의 즐거움까지 빼앗을 권리는 내게 없다. 어색한 표정이 담긴 인증샷을 모두가 나눠 가져도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내 사진 폴더에 저장하지 않아도 되니까. 오직 나를 위한 선택과 집중. 그거면 충분했다.        


나는 매일 나를 알아 간다. 어제보다 오늘이 한 뼘쯤 더 나를 알게 되고, 내일은 더 많은 나를 알게 될 거다. 평생 내 돈 주고 먹을 일 없다고 생각했던 고등어회를 처음 입에 넣고 비릿함 속에서 희미한 고소함을 느꼈을 때 알았다. ‘아! 이 맛 때문에 다들 고등어회, 고등어회 하는구나.’ ‘어차피 내려올 거 산에는 왜 올라가냐?’라고 말하며 산 아래에서 파전에 막걸리나 먹으며 기다리겠다고 했던 내가 이제는 꽃이 피면 꽃이 피어서, 단풍이 들면 단풍이 들어서, 눈이 내리면 눈꽃을 보러 산에 간다. 내 취향은 아니라고 등부터 홱 돌려 버렸던 것들을 일단 눈 딱 감고 해보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다. 아니 의외로 괜찮다. 저지르고 보면 분명 얻는 게 있다. 순간의 어색함을 이겨 내면 조금 더 또렷한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한없이 멀기만 했던 나와 가까워진다. 미우나 고우나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할 나와 친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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