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계획형 인간의 덫
잠들기 전, 잊지 않고 거행하는 사소한 의식이 있다. 눈을 감고 다음날 아침, 입을 옷을 머릿속으로 매치해 본다. 내일은 불패의 조합, 청바지에 연한 회색 맨투맨 티를 입어야지. 양말은 포인트로 따뜻한 겨자색이 좋겠다. 낮에는 해가 쨍하니 남색 야구모자를 쓰고, 밤에는 추우니 안에 얇은 티셔츠를 챙겨 입어야지. 집에 돌아오면 늦은 밤일 테고 그러면 따로 걸을 시간은 없겠군. 그럼 집에 올 때 세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야 하니 편한 스니커즈면 충분하겠네. 이런 식의 시뮬레이션이다. 빈약한 옷장에서 건진 몇 안 되는 아이템을 회전목마에 탄 것처럼 돌려 입는다. 단순히 시간을 잡아먹어서의 문제가 아니다. 아침 시작부터 삐끗하면 하루 종일 꼬이는 징크스 때문이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멋 낸 코디는 아니지만 이렇게 머릿속으로 미리 세팅해 두지 않으면 아침에 허둥거린다. 충분히 시뮬레이션하지 않았다가 막상 입어 보니 영 어울리지 않을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날 신중하게 옷을 고르고, 다음날 아침이면 고민하지 않고 지난밤 머릿속에 그려둔 착장대로 입는다.
아침 컨디션이 하루를 좌우하는 것처럼, 난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 사람이다. 미세한 각도라도 시작부터 빗나가면 마지막에 날 기다리고 있는 결과는 예상한 것과 달랐다. 첫 만남부터 묘하게 어긋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엔딩을 맞게 되고, 그 엔딩이 구질구질한 맛일 때가 많았다. 시작부터 삐거덕거리는 일은 마무리할 때까지 속을 썩였다. 뼛속 깊이 박힌 이 경험들이 날 부지런 떨게 만들었다.
솔직히 핑계가 필요했다. 내가 준비한 일, 관계, 상황이 어그러지고 부서질 때 책임을 떠넘길 무언가가 절실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판단하고 결정한 일이니 탓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시작점의 사소한 ‘어긋남’을 꼬투리를 잡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시작점의 변수는 아무리 준비해도 매번 예상을 벗어난다. 전날 눈 감고 시뮬레이션한 옷을 계획한 대로 입더라도 눈썹이 마음대로 안 그려지기도 하고, 배차 간격이 긴 버스를 놓치는 것처럼. 무선 이어폰 충전하는 걸 깜빡해 각종 소음에 시달리며 긴 출근 여행을 할 때도 있고, 간발의 차이로 코앞에서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것처럼. 평온한 나의 아침에 불쑥 던져진 크고 작은 ‘돌발상황’이 불쑥 내 발목을 잡는다. 어떤 엔딩을 맞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힘들게 쌓고 쉽게 무너지는 타입인 난 이럴 때마다 방향키가 고장 난 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 ‘열심’에 취해 현실을 원망하곤 했다. 이런 모습을 본 누군가가 말했다. 애초에 돌발 상황이란 예측할 수 없으니 네가 들이는 노력과 준비의 양을 줄여 보라고. 진짜 널 괴롭히는 건 돌발상황이 아니라 너 자신이라고. 변명할 여지가 없는 명확한 진단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또 책에서 수없이 봤지만 바로 곁에서 건넨 따뜻한 마음과 진심을 담은 말과는 차원이 달랐다. 강속구처럼 날아와 박힌 그 말을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주문처럼 읊조렸다.
날 괴롭히는 건 나 자신!
코로나19부터 이스라엘-하마스의 무력충돌, 단골 돼지갈빗집의 1인분 가격 상승부터 하룻밤 사이에 돋아난 콧등의 뾰루지까지... 거대하고도 사소한 불확실이 일상인 시대. 내게 주어진 날들을 어떻게든 선명하게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거렸던 나를 이제는 흘려보내기로 했다. 현실이 이 지경인데 이 흐름을 내가 바꿀 수 없다면 순응하는 수밖에. 나를 향해 밀려오는 ‘불확실’이라는 파도를 적당히 타 보기로 했다. 그렇게 파도를 타고 흘러가다 보면 어느 항구에는 닿을 테니 말이다. 나를 괴롭히는 일은 그만두고 언젠가 끝은 온다는 당연한 결과만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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