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잘 쉬고 있습니까?
몇 해 전, 어깨 통증 때문에 시작한 요가. 유명하다는 병원, 한의원 순례해도 효과는 진료할 때뿐이었다. 치료를 멈추면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어깨 통증이 또 돌아왔다. 고민 끝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요가센터 문을 두드렸다. 시설 이용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초보가 그나마 따라잡을 수 있다는 난이도 하 중의 하, <힐링 요가> 시간이었다. 형형색색 매트 위에서 능숙하게 몸을 푸는 수련자들이 보였다. 쫄면 100그릇쯤 먹은 듯 졸아든 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조심스럽게 매트를 깔았다.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슬쩍 주변 수강생들의 몸 푸는 모습을 보며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내게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고무고무’ 유전자가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몸이 유연했다.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아도 몸을 폴더처럼 접어 발끝을 잡는다거나, 일자로 다리 찢기 같은 게 쉬웠다. (대학 새내기 시절, 알코올 쓰레기인 난 맥주 500ml를 먹고 취해 다리 찢기로 재롱을 부리고 얻어먹는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사랑했다.)
얼마 후 모델처럼 꼿꼿한 자세에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의 선생님이 들어와 수업을 시작했다. 초반은 간단한 명상과 호흡으로 온종일 헝클어졌던 몸과 마음을 요가하기 좋은 상태로 만든다. 선생님의 카운트에 맞춰 숨을 내뱉고, 쉰다. 여기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사람이니까 평생 숨을 쉬고 살긴 했는데 선생님이 리드하는 호흡 속도에 비해 나는 짧은 숨을 쉬고 있었다. 뱃속 가득 차게 공기가 들어오도록 코로 긴 호흡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내장 구석구석의 찌든 때처럼 박힌 잔 숨까지 토해 내도록 긴 호흡으로 숨을 내뱉었다. 이건 뭐 황새 가랑이 사이에 낀 뱁새처럼 호흡부터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그래 숨은 뭐... 나는 동작은 따라갈 수 있을 테니 어서 지루한 호흡 부분이 끝나길 기다렸다.
내 바람대로 곧 선생님이 동작 시범을 보이고 회원들이 따라 하는 본격 수업이 시작됐다. 팔, 다리, 몸통, 척추를 세세하게 굽히고 펴고, 접고, 늘리는 동작이 이어졌다. 1800X640 사이즈 요가 매트를 벗어나지도 않고 동작을 했을 뿐인데 숨이 턱턱 찼다. 동작을 더 깊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호흡’이 필수였다. 동작을 따라가기도 바쁜 초심자에게 호흡은 사치였다. 평소대로 들쑥날쑥 입을 벌려 짧은 숨을 쉬고 내뱉었다. 평생 쉬고 내뱉어 온 숨조차 제대로 컨트롤되지 않는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불타는 고구마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씩씩거리며 속으로 말했다.
‘여기저기 다 고장 난 것도 모자라 숨 하나도 제대로 못 쉬는 인간이 됐네.
젠장 숨은 대체 어떻게 쉬는 거야’
내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갔는지 타이밍 좋게 선생님이 말했다.
“숨 쉬세요. 숨!! 숨 쉬는 거 잊지 말고 길게 후~~”
당장 눈앞에 목표에만 집중하다 보면 제일 중요한 호흡을 까먹는다. 자세에 성공하겠다는 욕심에 호흡을 잊는다. 호흡을 무시한 결과는 몸에 바로 나타난다. 근육이 뭉쳐 쥐가 나고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은 목각인형처럼 딱딱하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초보의 팔다리를 보다 못한 선생님은 곁으로 다가와 핸즈온(손으로 자세를 교정해 주는 방법)을 하며 함께 호흡을 카운팅 했다. 차분하고 길게 호흡을 늘려서 들이마시고 내쉬면 우주 끝처럼 까마득하게 보였던 몸의 곳곳이 닿는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팔을 등 뒤로 넘겨 몸통을 감싼 후 배꼽에 닿았을 때의 희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처음에는 분명 닿지 않았다. 선생님의 리드로 차근차근 호흡을 늘여 몸 안에 채우니 안되던 동작이 되기 시작했다. 희한하게 겨우 손끝만 닿았던 손이 이제는 손끝은 물론 팔목을 잡고 발을 걸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빨리빨리. 뭐든 빨리 끝내야 직성이 풀렸다. 느긋함은 게으름이 되고, 여유는 사치였다. 생각의 속도는 삶의 속도를 결정하고 삶의 속도는 몸의 속도를 조종한다. 몸의 속도는 호흡이 지배한다. 뭐든 빨리빨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던 몸은 마흔이 되기 전에 여기저기 고장 났다. 두 발로 걸어 다닐 뿐 송장처럼 핏기 없이 삐거덕거렸다. 병원을 돌고 돌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두드렸던 요가센터에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속도로 살아왔는지, 그 빠른 속도가 몸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알게 됐다. 여유 있게 숨 쉬는 게 나태하고 태만하게 사는 것 같아 셀프 채찍질하는 게 습관이었다. 남의 속도나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내 속도 대로 살아도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고 요가는 말했다.
방금 보낸 수정 파일은 최종 버전으로 보낸 게 맞을까? 처음 손발 맞추는 사이인데 날 부족하다고 보진 않을까? 그때 내 말 한마디에 상대방의 표정이 일그러지던데 내가 실수한 걸까? 오늘 평소보다 밀가루 과식했는데 내일 몸이 띵띵 붓는 거 아니야? 하루에도 수없이 습관성 불안증이 벌컥 문을 연다. 그럴 때는 요가 수업에서 배운 호흡을 한다. 닥스훈트 허리만큼 길게 들이마시고 한참 내뱉는다. 나쁜 기운과 헝클어진 기분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내뱉고, 신선한 공기와 상쾌한 기분을 차곡차곡 모으듯 들이마신다. 뭔가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는 의식적으로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호흡은 교통사고 현장에 파견된 능숙한 교통경찰관처럼 피폐한 몸과 마음을 차근차근 정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