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강박
작은 유튜브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고작 구독자 700명뿐인 누가보면 코웃음칠만한 아주 작은 채널이지만 이놈이 시간이 갈수록 내 자식같고 그렇다.
그도 그럴게 누구의 방해도 없이 완전한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기획도, 촬영도, 출연도, 편집도 다 나다 ㅋㅋ부장의 잔소리도 없고 회사의
사조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다 시도해 볼 수 있고 반응이 별로면 아님 말고~하고 버리면 그만이다.
나처럼 태생이 게을러 터진 인간이 글쓰는 것보다 한 100배는 더 품이 많이 드는 영상제작을 하겠다고 맘먹은 데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영향이 가장 컸다.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오래토록 남기고 공유하고 싶었다. 한편으론 미제라면 다 좋다는 우리네의 그 어떤 갈망을 이용하고 싶은 얄팍한 셈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손바닥만한 신생아 때 사진만 봐도 아련하고 아쉽고 그런데 동영상은 오죽할까. 아기들을 키우시는 분들께 사진도 좋지만 동영상을 꼭 많이 찍어놓을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무조건 가로로 ㅋ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결국은 다 기록을 남기려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애둘을 제왕절개로 낳고난 후에는 내 기억력의 휘발성이 더 강해져 기록에 대한 강박도 한층 강력해졌다.
암튼 이렇게 유튜브를 시작하려고 굳게 다짐한 후에도 한참을 망설인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유튜버=관종’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선입견에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관종이 아니라고!!을 외치고 싶었달까.
그러나 유튜버의 길을 걸은지 반년 남짓. 난 나를 관종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좀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유명해지고 싶다’는 의미로의 관종이라기보다는 ‘내 컨텐츠를 위해서라면 얼굴 따위 팔려도 상관없는’ 의미에서의 관종이랄까.
특히 나처럼 편집 초보들에겐 혼자 출연해서 주저리 주저리 내 생각을 말하는 영상이 제~~~일 편집하기 쉽다. 그냥 얼굴 쫌 팔리지 뭐...자포자기다. 연예인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ㅋㅋㅋㅋ연예인은 가만히 밥만 먹어도 조회수 몇백만이지만 나같은 사람들은 밥을 짓고 상을 차려도 조회수 100도 나오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니 주변에서 유튜브 한다하면 관종이라고 놀리지 말아주시길ㅋ실제 유튜버들의 영상제작을 위한 피나는 노력과 번뇌는 그 한마디로 싸잡히기엔 너무 지난한 과정이다 흑흑 ㅠ
아 또 너무 흥분했네. 본론으로 돌아가 다시 기록 얘기를 하자면 난 글과 영상을 넘나들며 기록을 남기고 싶은 소박한 갈망이 있다. 신문기자라 글에 더 익숙하고 사실 오랜 연차의 선배들 중에선 방송기자는 진짜 기자라고 할 수 없다고 은근 깔보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코로나로 마트가 텅텅 비어있는 상황을 암만 자세하게 글로 묘사해도 마트 사진 한 장 보여주는 것보다 임펙트 있을 순 없다. 반면 좋은 글귀는 줄치고 접고 두고두고 마음에 깊게 새기고 싶지만 영상물은 상대적으로 휘발성이 강하다. (물론 내 생각이다.) 둘의 영역이 다른거다. 결국 내겐 둘 다 소중하다.
어젯밤 봉골레 파스타를 만드려는데 파스타가 떨어져 간만에 밤마실을 나섰다. 주말 저녁 까만밤과 반짝이는 조명, 노오란 단풍의 콜라보는 정말 예뻤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단풍이 떨어지는걸 멍하니 쳐다보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냈다. 사진 1장, 영상 1개 ㅋㅋ 브런치랑 유튜브 엔딩으로 써야지~하면서 말이다. 이정도면 기록강박이 맞지 싶다.